온실에 핀 꽃송이가 지지 않도록
나의 아버지는 조선시대로 말하면 '한량' 이솝우화의 '베짱이' 같은 분이었다.
있는 집안에서 나고 자라, 돈벌이에는 관심이 없고 돌아가실 때까지 노래 부르는데 진심인
정 많은 사람이었다.
(전국 노래자랑 트로트 전에라도 한번 나갔어야 하는데, 방구석 가수였던 점은 참 아쉽다)
자식들이야 그런 아빠를 다정하고 귀여운 아빠로 기억하지만
그 뒤치다꺼리는 늘 엄마의 몫이 되곤 했다.
사람 좋고 모질지 못해 남 좋은 일만 하고 다니니 속이 터지는 날도 셀 수 없이 많았을 거다
(내가 아는 건 빙산의 일각일 테니 그 속을 열어보면 이미 새까 많게 재가 되어버렸을지도)
그런 와중에도 엄마는 온실 정원의 한송이 꽃 같았다.
아빠를 대신해 경제활동을 시작하고 궂은일을 이어갔지만
항상 아름다웠고 억새풀이 되지 않았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엄마의 온실은 바로 아빠였다.
경제적 풍요를 주진 못했어도 엄마는 늘 아빠의 사랑 안에 있었다
아빠가 자주 하던 말이 있다
"늬 엄마한테 물어보고~" "늬 엄마 바꿔줄게"
( 전화 통화할 때)
"엄마 입에 넣어줘"
( 과일 깎았는데 엄마가 설거지할 때)
"늬 엄마가 좋아하잖아" -
(무언갈 살 때)
아빠는 엄마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좋아하셨다.
엄마가 미스터 트롯에 빠져서 '임영웅의 팬' 이 되자
아빠는 그가 나오는 모든 프로를 엄마와 함께 보셨다!!
그리고 몹시도 행복해하시는 거다 "늬 엄마가 임영웅에 아주 빠졌다니까! " 뿌듯하게 웃으시며.
엄마의 행복이 아빠의 행복이 될 때
엄마는 시들지도 꺾이지도 않았다.
사고 날,
울리던 그 전화에 아빠가 아닌 낯선 119 대원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지 감히 헤아려지지 않는다.
아빠의 상태가 위중하여 지역 병원에서는 받아주지 못하고
한 시간이 걸리는 천안으로 이송된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는 까무러칠듯한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엄마는 곧장 버스터미널로 갔고
천안으로 출발하는 버스가 1분 뒤에 있었기에 그 버스에 올라탔으며
첫째 딸에게 전화를 걸었겠지
약한 비가 강해졌고 엄마는 두려움에 발을 동동 굴렀다
"저 그냥 기지시에서 내릴게요"
출발 후 10분 정도에 후에 잠시 정차하는 구역이 하나 있다
엄마는 참을 수 없음에 택시를 타야겠다고 생각하셨던 거다
"아주머니, 그냥 이거 타고 가세요, 제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릴게요.
비도 오는데 여기서 택시를 타나 버스를 타나 차이 없어요. "
운전석에서 엄마의 통화내용으로 사정을 짐작했던 버스기사의 따뜻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는 잠시 사라졌다가 우황청심원을 사 가지고 와서는 엄마에게 건네주었다.
괜찮을 거라는 말과 함께.
약속대로 안전하게 도착한 천안에서 택시 타는 곳까지 안내하고 돌아섰다고 한다.
이제 홀로 응급실을 찾아가 사고로 성치 않은 아빠를 마주 했을,
아, 가엾은 우리 엄마.......
그 장면은 보지 못하였고 떠올리고 싶지 않다
뒤 이어 응급실에 도착한 언니는
아빠 옆에 주저앉아 있는 엄마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빠의 찢어진 옷가지가 담긴 검정 봉지를 들고,
그 장면들과 그때의 냄새는 언니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 사이
언니보다 먼저,
홀로 도착한 엄마를 보듬어 준 두 번째 은인을 만났다고 했다.
젊은 담당 의사는 엄마의 팔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머님, 이제까지 고생 많이 하신 거 같은데 이제 그만 편하게 해 드려도 돼요.
아버님은 지금 고통 없이 계신 거예요~
보세요! (아빠 가슴을 쳐서 확인시켜주며) 전혀 느끼지 못하죠?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엄마는 기억하고 계셨다.
인생 가장 큰 절벽에 홀로 서있을 때 손을 잡아준 사람.
마치 가족처럼, 아들처럼 그 슬픔을 함께 느끼며 전력을 다해 위로하려고 하는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더란다.
아빠의 장례가 끝나고
처연히 앉아 엄마는 말을 이어가셨다.
"
생각해보면, 아빠였던 것 같아.
온 힘을 다해 엄마를 지탱해주려고 했던 그 손길이,
마치 아빠 같았어
아빠가 내려준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