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없는 이별. 그 後
아빠가 돌아가셨다.
생각지도 못한 사고였다.
언젠가는 그래 언젠가는, 이라고 생각은 했었다.
"아빠, 그러니까 믹스커피 좀 줄여"
"당뇨에는 탄수화물을 피해야 한다고"
늘 상 하던 둘째 딸의 잔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뒤돌아 몰래 믹스커피를 홀짝이며 천진난만하게 웃는게 아빠의 매력이었다.
아빠가 당뇨약을 드시기 시작한게 언제부턴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빠의 병 소식을 듣고도 크게 개의치 않던 나이였으니
'내가 부모님을 챙겨드려야 한다 '라는 개념이 아주 없었던 시절인 것 같다.
그 긴 세월을
특별한 절제 없이 담배에 뭐에 드시고 싶은거 다 드시는 아빠에게
"아빠가 술까지 먹었음 벌써 저세상 갔어" (체질적으로 술은 못 드신다)
라는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뱉을 정도로 아빠는 근엄 진지와는 거리가 먼 편안하고 어수룩한 사람이었다
한편으로는 안부려도 될 고집을 부리기에 자식들 속이 썩어 났는데
국가건강검진이라도 한 번 받아보시자 하면
남들은 2년에 한 번씩 하는 그 검진이 뭐라고, 묵히고 묵히고 고사 하셨다.
행여나 짐이 될 큰 병이 나올까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야 왜 모르겠냐만은
시한폭탄 마냥 외면하고 있자니 자식들의 걱정은 쌓여만 갔다.
그런데 왠일? 그런 아빠의 ‘먹고 싶은건 먹어’ 지론에 힘이 실린 결정적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아빠가 건강검진을 받고 오신것이다.
"내시경 했는디~ 아주 깨끗하디야! 의사가 보더니 담에 결과 보러 올 것도 없다고! 뭐 한나 없이 너무 깨끗 혀!"
뼛속까지 충청도인인 아빠가 나서서 뭘 자랑하는 일이 없는데
아빠의 건강상태는 '양호' 를 떠나 '최상'이었던 거다!
그리고 이 사건은 아빠의 건강 염려에 종지부를 찍으며
우리가 이런저런 잔소리를 할 때마다 "나는 위와 장이 깨끗 혀!"라는 최고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운동삼아 동네를 걷는 걸 좋아하셨다.
고관절 수술로 격한 운동이나 등산을 할 수 없는 아빠가 유일하게 하는 자기 관리.
풍경 보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곳에 호기심이 많았던 아빠는
늘 이곳저곳 구경하며 걸어다니기를 매일 하셨다.
그리고
사고가 났다.
집 앞 횡당보도에서.
약한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지팡이 처럼 들고 다니기 좋다며
좋아하는 보라색 장우산을 들고 횡단보도를 몇 걸음 넘기지 않아
무심한 버스 한 대가 그를 덮쳐버렸다.
나는 우리의 운명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확실한 건
딸들의 잔소리에도 지지 않고 꿋꿋하게 지켰던 단편적 행복들이
소복이 가슴에 내려앉아 나를 위로하고 또 위로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아빠,
잘했네.
아빠처럼 사는 게 맞았네.
나는 이제 그 소소한 행복이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음에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고 또 아프다.
아빠가 좋아하는 믹스커피를 아빠의 묘비위에 올려둔다.
엄마 몰래 숨어 피셨던 담배도 놓아 드린다.
부끄러운듯 반쪽 웃음을 힐끗 보이며 호로록 하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