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안되더라. 너라고 쉽게 되겠니?
저도 저와 잘 지내고 싶습니다.
요즘 잠이 늘었다. 늦게 자는 것도 아닌데,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참 힘들다. 아침이 되면 사투가 시작된다. 곁에서 본 나는 이런 모습이 아닐까?
네모난 물건이 존재감을 진동으로 드러내며 날 깨운다. 이때 나와 내가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렬하게 느낀다. 정신은 희미하게 보이는 불빛을 쫓아가고, 몸은 무거운 이불이 강하게 짓누르고 있다. 희미한 불빛의 끝에는 휴대전화가 반짝인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글이 있는데,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간이야. 이 화상아!"가 반짝인다. 거미줄처럼 불편하게 얼굴에 붙은 잠을 떼어내고 뒤 돌아보니, 안온한 침대에 누워있는 네가(?) 아니 내가 보인다.
약하디 약한 정신은 내 멱살을 잡고 흔들지만, 옅은 미소만 보이고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몇 분 뒤. 휴대전화는 아직도 일어나지 않은 나에게 소리치며, 정신 차리라고 한다. 마지못해 몸이 일어나 다리를 움직인다. 폭신한 베개를 보며 다니 누으려는 몸에게 정신이 따귀를 때리며 더 늦기 전에 샤워실로 가라고 소리쳤다.
매일 아침 난 날 잘 달래서 겨우 일어난다. 이럴 때마다 난 나와 싸운다. 몸은 내 정신은 거부하고, 정신은 내 몸을 항상 다그치는 관계. 아침마다 조금씩 내용을 다르지만 그 플롯은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아침에 일어나는 일만 일까? 아니다. 글을 쓰는 일도 나와 나는 싸우고, 운동하는 일에도 나는 나와 싸우기도 한다.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일본의 그림책 작가이자 수필가인 사노 요코 선생님이 하신 말이 있다. 정말 시크한 분이다. 내가 그분을 만난 건 그녀가 삶의 끝에서 쓴 두 권의 책이다. 하나는 <죽는 게 뭐라고>, 다른 하나는 <사는 게 뭐라고>. '시크한' 할머니다. 아니, '시니컬한' 할머니다.
잠깐. 옆길로 잠시 빠져보자. 시크는 프랑스 단어 chic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패션 분야에서 쓰던 단어인데, 멋진, 스마트한, 세련된,라는 뜻을 가졌다. 한국에서는 조금 의미가 묘한데, 쿨하다, 도도하다, 까칠하다가 더해져 있다.
가끔 나와 다툴 때마다, 사노 요코 선생님의 시니컬한 목소리로 약간은 비딱한 웃음을 지으시며 아래와 같은 말을 한다.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스스로와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다. 그것도 60년씩이나, 나는 나와 가장 먼저 절교하고 싶다. " <사는 게 뭐라고> 사노 요코.
뒤이어 이런 말을 하지 않으셨을까?
"나는 잘 안되더라. 너라고 쉽게 되겠니? 그래도 한 번 노력해 보렴. 그럼 난 이만."
아침에 일어나는 일도, 나는 나에게 소리치고, 멱살을 잡아 드잡이를 해야 한다. 몸과 정신에 모두 좋은 운동을 어떤가? 몸이 정신을 지켜주고 정신이 맑게 해 주는 운동은 더 극렬한 반대에 부닥친다. 이때는 미래를 손으로 짚으며 정신 차리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윽박질러야만 움직일 수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야식은 어떤가? 마법의 도구인 휴대전화로 몇 번 쓱쓱 누르면 내 앞에는 치킨이, 어느 날에는 떡볶이가 놓인다. 느긋하게 자고, 운동을 피하며, 야식을 먹고 나면 나도 나와 절교하고 싶어 진다.
글을 쓰며 어깨가 불편하다. 스트레칭을 해야 하는데, 차라리 누워 자는 게 낫지 싶다. 정신이 목을 가다듬고 몸에게 한 소리 하려고 준비한다. 아! 요코 할머니가 뒤에서 깔깔 걸리시며 웃는 소리가 귀에 쟁쟁거리는 것 같다. "거봐 안되지?"라고 말이다. 60 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으니, 한번 해볼까 싶다. 마음으로 다음 문장을 되뇐다. "나도 나와 잘 지내고 싶다."
우선 따스한 웃음을 지으며 몸에게 다가가야겠다.
"나야 안녕? 우리 스트레칭 짧게라도 해볼까? 2분이라도 말이야."
추천드리는 분
- 자신과 잘 싸우는 분.
- 자신과 잘 지내고 싶은 분.
- 나와 먼저 절교하고 싶은 분.
#나 #절교 #화해 #에세이 #시크
덧붙임
다들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쉬우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