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갈 수 없는 아픔에 순수한 의문이 부딪혀 온다.
셜록이 마이크를 찾은 것은 그로부터 약 3일 뒤였다. 처음에는 최근 근처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사건 때문에 병동 근처에서 우연히 마주쳐 인사하는 게 전부였으나 이후 존의 행방에 대해 가끔씩 물어보며 그를 압박하더니, 급기야는 직접 사무실에 들어서는 3일째에 다다랐다. 그간 존은 자신의 속내를 마이크에게 털어놓으며 어느 정도 진정이 되어가고 있었고, 이는 의학적인 부분을 들먹이지 않아도 마이크와 존 둘 다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존은 마이크에게 자신의 일에 대해 털어놓기 이전에 이 일에 대해 절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아 줄 것을 부탁했고, 행여 존이 그런 것들을 부탁하지 않았더라도 마이크는 그런 파렴치한 짓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다만 일이 조금 골치 아파졌다. 매일 혹은 매 시간마다 이따금씩 건네받는 존의 문자나, 존의 상담 같은 것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문제는 셜록이었다. ‘혹시 존이 어디 있는지 아나?’ ‘존이 보이지 않는데 혹시 같이 있어?’ 같은 문자였고, 때마다 마이크는 열심히 둘러대기 바빴다. 그리고 주로 그런 문자들은 마이크와 존이 사무실에 앉아 한참 이야기를 털어놓던 때에 날아왔고 불과 3일 만에 이런 문자가 30통이 넘기에 이르자 처음에는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존도 무척이나 미안해하며 애를 먹었다. 그 모습에 마이크는 새벽까지 셜록이 조금씩 따지는 조로 존의 행방을 물어왔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이 정도라면 차라리 존이 자신과 같이 있는 걸 알고서 지독한 장난이라도 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가 바츠에 검시를 위해 영안실은 베이커가처럼 들락거린다 한들 마이크의 사무실 위치는 관심도 없었다는 점이다. 알지 못한다기보다는 알 필요 없는 것으로, 그로부터 존을 소개받은 뒤로부터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막말로 그의 부모나 그의 형이나 존이 신장에 어떤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말이다. 하지만 안심할 것도 잠시, 이번에 셜록은 직접 마이크를 찾아왔다. 그가 잠시 급한 차트를 정리하러 존을 남겨두고 사무실을 나서려던 찰나, 문 앞에 걸어오고 있는 익숙한 롱코트의 남성이 그를 알아채고는 신경질적인 미소를 뗬다.
“오, 셜록.” 그는 자신도 모르게 사무실의 문을 닫으며 그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야?”
“정말 몰라서 묻는 거 아니지?” 셜록은 여전히 그 미소에 담았던 신경질을 어조에 담아 말하였다. “존, 여기 있는 거 알아.”
“음….” 마이크는 입을 비죽이다가 말하였다. “전혀, 그러고 보니 오늘 진료 본다고 하지 않았나?”
“마이크, 마이크…” 셜록이 고개를 뒤로 빼며 말했다. “재미없다니까. 병원 출근 기록도 없고, 스코틀랜드 야드의 방문기록에도 없고, 심지어 디오게네스 클럽에도 없어. 다음은 아프간에라도 가봤어야 하나? 밀린 대금인지, 해리엇의 전화 때문인지, 오, 그래… 그것도 있군, 군인연금 문제로 얼마 전에 상담원과 치고받고 싸운 거. 그거 때문인가?” 언제나 하던 빠른 투의 말을 쏟아내며 셜록이 마이크를 노려보았다.
“대체 무슨 소리야?” 마이크는 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안심했다. 셜록은 존에 대해 대부분의 사항을 꿰고 있으면서도 실제 존이 어떤 심정으로 자신을 대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아니, 차라리 지금 셜록이 나열한 문제들 중에 하나라도 집어서 그것 때문에 상담이라도 왔다고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셜록의 귀찮은 연락을 받지 않아도 되고 말이지… 마이크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셜록이 그를 밀치려 했다. “이봐, 무슨 짓이야!”
“존!” 마이크가 막자, 셜록이 뒤로 물러서 외쳤다. 순간 병동 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마이크는 정말이지 창피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곳은 그의 근무지이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의 입장에 있는 그로서는 이런 정신 나간 촌극에 참여하는 일이라곤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 시간 학생들을 가르쳐오면서 이런 일이 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존 왓슨… 대체 무엇을 믿고 자신에게 이 정도의 일을 떠넘긴 걸까. 아니, 셜록이 제정신이 아닌 걸까. 아니면 둘 다 제정신이 아닌 걸까. 생각이 미치고 있는 와중에, 문 반대편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밀린 대금 때문도, 해리엇의 전화 때문도, 군인 연금 때문도 아냐.” 마이크는 진땀을 빼며 존을 바라보았다. “존, 대체...” 마이크가 존에게 뭔가 말하려 했으나 존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 점잖게 그를 제지했다. 존은 자리를 나서고 문을 열고 나왔지만 결코 셜록을 안으로 초대하지는 않았다. 방금 전까지 존을 외쳐대던 포악한 얼굴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다시 말끔한 얼굴이 된 셜록이 존을 바라보았다. “자네 대체 요즘 왜 이러는 거야? 지금 이럴 시간 없어, 당장 검시 결과를 들으러...”
“지금은 불가능해.” 존의 그 말에 마이크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셜록의 두 눈이 커졌다. 생각보다 강한 반응에 마이크도 놀라고 있었다. 그러나 존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불가능하다고…?” 셜록이 눈썹을 위로 올리며 물었다. 왠지 모르게 병동 사람들의 관심이 더 쏠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마이크는 그 와중에도 당황해서 셜록과 함께 존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건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야?"
“자네에게 말해줄 수 없는 것뿐이야.”
“자네가 나한테 말해줄 수 없는 게 대체 뭔데?” 자칫 어린애처럼 느껴지는 질문에 웃을 법도 했지만 오히려 존의 눈빛은 더욱 진지해지고 심각해졌다. 마이크는 그간 자신이 셜록에게 받아왔던 수많은 문자를 상기해 내고, 그다음에 존이 직접 셜록과 함께 있으면서 견뎌내야 했을 고단함에 대해 상기했다. 그간 존의 눈시울이 슬쩍 붉어져 있었다.
“자, 이러지 말고… 들어가서…” 마이크는 존의 상태를 눈치채고 안으로 두 사람을 들이려 했다. 더 이상 병동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존이 방금 전 그의 어깨에 올렸던 손을 더욱 굳게 잡았다. 셜록의 시선이 잠시 그 손으로 옮겨갔다. “아니, 그건 어려울 것 같아. 미안해, 마이크.” 셜록은 그 둘을 바라보다 다시 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그의 표정은 많이 변해 있었다. 그건 으레 그가 아주 골치 아픈 문제를 가지고 골몰하는 것과도 조금 닮아 있었다. 요컨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마이크에겐 이야기해 주고, 나에게는 이야기해 줄 수 없다 이건가?” 셜록의 말에는 이제 노기가 서려 있었다. 그게 대체 어느 감정에서 기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이크는 자칫 잘못하다가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 될 것만 같은 기분에 숨고 싶어졌다. 존은 그보다도 더 침착해 보였다. “이제 이 일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아 줬으면 좋겠는데.”
존의 말에 셜록은 잠시 옆으로 몸을 틀더니 자신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다시 몸을 돌린 장신의 남자는 전에 없던 차가운 얼굴로 마이크를 노려보았다. 마이크는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그리고는 그 눈빛을 그대로 존에게로 옮겼다. “그래, 자네가 말해줄 수 없는 일이라면, 내가 알아내면 그만이겠지.” 셜록이 그 말을 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둔탁한 타격음이 들려왔다. 부아가 치민 존이 결국 셜록에게 한 방 먹인 것이다. 마이크는 급하게 존을 잡아끌었고, 근처 병동을 지나고 있던 레지던트 몇 명이 황급히 달려와 셜록을 부축했다. “항상 이런 식이야, 이래서 말하고 싶지 않은 거야.” 존은 쓰러진 셜록을 내려다보며 말하였다. “자네에게 나는 그냥 풀어내야 할 퍼즐에 불과한 거지. 내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그게 여기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려질지,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 그렇잖아? 그래, 마음대로 해. 그게 그 잘난 탐정님이 하시는 일이니까.” 존은 말을 마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다시 마이크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마이크는 당황했지만 그나마 사달이 난다는 게 이 정도로 그친 것에 감사했다. 블랙히스의 쓰리쿼터를 맡은 사내가 저지를 법한 사달이라면 이 정도는 애들 장난일 테니까. 셜록은 알아서 일어나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셜록…!” 순간 저 멀리서 몰리의 외침이 들려왔다. 마이크가 셜록의 상태를 살피려 했으나, 무의식 중에 그런 것인지 셜록은 그가 내미는 손을 잡지 않았다. 몰리는 금세 달려와 셜록을 부축해 일어났다. “셜록, 무슨 일이에요? 괜찮아요? 누구한테 맞은 거예요…?” 그에게서 대답이 없자, 마저 대답을 듣기 위해서 몰리는 마이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을 뿐, 차마 대답해 줄 수는 없었다. “일단 치료부터 해요… 자, 날 따라와요.” 몰리의 말에 셜록은 잠시 마이크를 노려보더니 병동 복도 너머로 사라져 갔다. 마이크는 길게 한숨을 내뺐다.
“그냥, 차라리 안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 마이크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존이 말하였다. 누가 봐도 울먹이는 음성이었다.
“웬만한 일이라면 자네에게 한 소리 했겠지만, 이번 건 어쩔 수 없겠군.” 마이크는 자리로 돌아와 존의 앞에 차를 더 따라주었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괜찮아?”
“이번 걸로 나를 미워하면 오히려 그게 좋은 일이겠지.” 금세 눈물을 거둬낸 존이 빨간 눈을 한 채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무뚝뚝한 남자 특유의 무던함도 있겠지만, 아마 전쟁에서 익힌 것도 있으리라. 이제까지 눈물을 글썽인 적은 있었지만 이토록 존이 눈물을 흘리는 걸 본 것은 마이크 자신도 처음이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몇 번의 훌쩍임과 잔기침으로 존 왓슨은 울었던 흔적을 말끔히 지워냈다.
“그래, 이제 좀 알겠어.” 마이크가 앞으로 두 손을 깍지 끼며 말하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자네가 이 문제를 가지고 ‘질병’이라고 했던 이유 말이야.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어.” 마이크는 존을 바라보았다. “상대가 ‘셜록’이라서 자네는 걱정하고 망설였던 거야.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알 수 없고 그 관계를 잃어버리거나 엇나가게 만들어버리면 어떻게 될지 알 수조차 없었을 테니까.”
존은 대답 대신 자신이 든 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네도 알겠지만 이제 나한테 남은 건 별로 없어. 젊은 시절은 아프간에 허비했고 이 도시에 돌아와서 만난 거라곤 셜록뿐이니까. 빌어먹을,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 그냥 다 잊어버릴 수 있는 방법이라도 없는 걸까. 아니면 그냥 내가 홀연히 떠나버려야 하나?”
“그에 대한 답은 자네도 알고 있잖아.” 마이크가 말하였다. “셜록이라면 얼마든지 찾아낼걸.”
“그래…그리고 그때가 되면 더 감당할 수 없어지겠지. 죽어도 나는 말 못 해. 그래서 내게는 하루하루가 지옥인 거야.”
마이크는 차마 그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안쓰러운 눈빛으로 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 한 켠에서는 은근슬쩍 셜록이 이상한 오해를 하지 말아줬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