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만 찾아드는 프시케의 연인, 손길과 숨결만으로 이루어진 사랑.
늦은 저녁, 병동을 나서려던 마이크 앞에 불현듯 나타난 그림자는 다름 아닌 존이었다. "깜짝이야. 어떻게 들어온 거야?" 갑자기 나타난 존을 바라보며 마이크가 가슴께에 손을 올렸다. "브라운 경비 아저씨 기억나?" 존이 문 바깥을 가리키며 말했다. "글쎄 아직도 날 기억하시더라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슬쩍 입술을 삐죽였다. 그건 그가 자신 스스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때나, 혹은 지금처럼 겸연쩍을 때 하는 행동이었다. 마이크는 그에게 손짓을 했고, 존은 그대로 문을 닫고 그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자네도 점점 더 셜록을 닮아가는 것 같아. 걸어오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니까. 그나저나... 사무실에서 이야기해야 하는 일이야?"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존은 부러 말끝을 흐렸다. 가방을 정리하다 말고 마이크가 그를 바라보았다. "혹시 오늘 좀 바빠?"
"바쁜 건 아닌데, 자네가 갑자기 무슨 일인지는 좀 궁금하네." 마이크가 말하였다. 그는 이제 가방을 잠그고 있었다. "뭐 일정이라도 있는 거 아니면..."
마이크는 그 사이 머릿속에서 옆집의 무뚝뚝한 이웃과 함께 즐기던 포커 게임 나이트가 떠올랐지만 금세 지워버렸다. "그래, 좋아. 나갈까?" 그 말에 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바츠에서 벗어나 근처의 술집으로 향했다. 스템포드는 그 사이 존에게 무슨 일인지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술 한 두 모금 들이킨 뒤에 물어보자고 마음먹었다.
"자네 혹시 심리 상담 쪽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나?"
감자튀김을 들다 말고 냅다 들어온 뜬금없는 질문에 마이크가 그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글쎄... 아니 뭐, 여자 꼬시려고 외워둔 몇 가지 심리 테스트 정도야 있지."
"농담 말고."
"엘라는 도움이 안 되는 거야?" 마이크가 말한 엘라는 존이 의가사제대한 뒤 국가에서 붙여준 무료 상담사 서비스의 선생님이었다. 존의 상태나 질문을 봐도 상태는 뻔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한 번 확인해봐야 할 것만 같았다. 존은 대답조차 없이 고개를 저었다.
"셜록에게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거야?"
그 말에 갑자기 존이 뚝 멈췄다. 그리고 이제까지 마이크가 존을 만나고부터 한 번도 본 적 없던 미묘한 표정을 지어냈다. 그건 어딘지 모르게 서글프고, 비참해 보이기도 한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금세 얼굴을 풀고는 허탈한 웃음을 지어냈다. "아니, 아니, 아니... 절대 못 해."
마이크는 그 타이밍에 집었던 감자튀김을 놓았다. 맥주를 들이켰다. 오늘따라 너무나 싸늘했다. 뭔지 몰라도 심각한 문제가 분명했다. 그래서 신장내과에 있는 자신에게 심리테스트니 뭐니 들먹인 것일 터다. 존은 고개를 숙였다. "지금 당장 이야기하는 어려워. 그냥... 자네는 나를 가장 오래 알았고, 내 상태가 어떤지 알 테니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야. 비밀유지서약 같은 걸 들이밀지 않아도 내 이야기를 비밀로 부쳐줄 테고 말이야."
"그야 그렇겠지만... 정말 전문가의 상담 같은 게 아니어도 괜찮겠어?"
"뭐, 병이라면 병이겠지." 존은 맥주잔을 좌우로 조금씩 흔들었다. "근데 가령 말이야."
'내 증상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면 그건 어떻게 치료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그래.’
존의 말은 점점 더 알아듣기 어려워졌다. 그리고 그 시점에 마이크는 작게 다짐했다. 그가 술에 취해 지껄이는 말이든, 아니면 진심으로 하는 말이든 이 문제에 자신이 관여할 수 밖에는 없을 거라고. 그렇다면 어떻게든 어떤 방법으로든 그를 도와줘야겠다고 말이다.
"그래... 존, 내가 자네 이야기를 들어볼게.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전문가로서야. 그리고... 내가 볼 때 상태가 심각해진다 싶으면 그땐 내가 아는 전문가와 함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해줘야 해."
존은 잠자코 그 말을 듣다 다시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 "얼마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