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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Another 05화

Another - 5

by 김뇨롱

16.


"당장 자리 비우기 힘들어요. 용건만 말씀하시죠." 체이스가 자신의 손목시계를 고쳐 채우며 말하였다. "전에 우리가 바에서 잠깐 했던 이야기 기억 나나?" 포어맨이 체이스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무슨 말씀이시죠?"


"진단학과 분리 말이야. 더 일찍 진행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포어맨이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하였다. "지금 하우스 박사님과 윌슨 박사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야?"


"그거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바쁘다던 체이스가 대뜸 자리에 앉았다. "저에겐 무척 중요한 시간이거든요. 두 분 갈등과 관련 없이 진단학과가 돌아가려면 아까 이야기한대로 분리를 서두르는 게 좋을거에요."


"결국 그 진단학과 분리때문에 이 사단이 났다는건가?" 물론 그게 현재 사건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 아니, 핵심조차도 아니었지만 - 체이스는 그 이상을 말하고싶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저와 하우스의 갈등이죠. 윌슨 박사님은 그 사이에 낀 거고요."


"꽤나 골치아픈 문제군. 윌슨 박사님은 진단학과를 분리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던데."


"하우스 박사님이 타격입을 걸 생각하셔서겠죠. 그래도 아시잖아요." 체이스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지금 상태가 지속된다면 이런 상황도 반복해서 생길거에요. 그건 우리 둘이서 진단학과 똘마니일 때에도 마찬가지였어요."


"뭐, 윌슨 박사님은 자네가 어떻게든 설득해줄 수 있겠지. 그 이후에는 윌슨 박사님이 하우스 박사님을 구슬릴거고. 그렇게 생각해도 되나?"


"단적으로 말씀드리죠." 이번엔 체이스가 상체를 기울이며 말했다. "하우스 박사님 없이는 진단학과가 돌아갈지 몰라도, 윌슨 박사님 없이는 안돼요. 저에게는 윌슨 박사님을 설득하는 것만 해도 충분해요. 누가 하우스를 설득하겠어요? 윌슨 박사님이 그것 때문에 마음 쓸 필요도 없고요."


"더 이야기하면 내가 힘들어질 것 같군." 포어맨이 손사래를 쳤다. "더 나아가면 '개인사'가 될 것 같으니 나머진 알아서 해줘. 난 이사진쪽에 여론을 모아보도록 하지."




17.


체이스는 원장실을 나오자마자 서둘러 윌슨을 찾았지만 이미 그는 진단실에 없었다. 문제는 윌슨이 자신의 사무실에도, 외래진료실에도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었다. 서둘러 윌슨을 찾아다니던 체이스는 카페테리아에서 쥐죽은 듯 앉아있는 하우스를 발견했지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단지 그 옆에 윌슨이 있지 않다는 사실만이 안도감을 가져다 줄 뿐이었다. 연락도 되지 않아 몇 통이고 문자를 보내다 겨우 생각난 곳으로 체이스는 발을 옮겼다.


"여기 계셨던 거에요?"


"답답해서." 윌슨은 손에 잡은 위스키 잔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전에는 그토록 데리고 오고 싶어도 오지도 않던 모퉁이 술집을 알아서 찾은 윌슨을 보니 체이스는 이 와중에도 그가 자신의 마음에 맞춰 행동하는 것만 같아 때아닌 뿌듯함마저 느낄 지경이었다. 그런 마음도 알지 못한 채 윌슨은 고개를 한 곳에 고정하고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하우스가 이런 윌슨을 본다면 무시해버리고 말겠지만 체이스는 이런 윌슨이 익숙했다. 물론, 체이스가 윌슨과 싸웠다는 건 아니다. 다만 둘이 교류하기 시작한 초반에 윌슨이 체이스를 찾으면 대부분 이런 상태였다. 하우스와 뭔가가 잘 풀리지 않은 상태. 즉 체이스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주로 하우스에게)화가 난 상태 말이다. 그럴 때면 체이스는 윌슨과 같은 잔을 주문해 옆에 말없이 있곤 했다. 윌슨이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생기거나 자신에게 물어볼 게 생길 때까지. 그러고나면 윌슨은 서서히 풀어지곤 했다. 말을 걸거나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윌슨에게는 별로 좋은 위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이 마저도 체이스가 윌슨의 옆에서 몇 년이나 견뎌가며 알게 된 방법이었다. 누가 프린스턴-플레인스보로 암병동 과장을 '마일드하고 젠틀하고 스위트'하다고 했는가. 그럴리가, 윌슨은 알고보면 꽤나 까다롭고 섬세한 남자였다. 체이스 자신이 반할만큼.


이번엔 얼마나 걸리려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윌슨이 체이스에게 말을 걸어왔다. 당연히 두 사람이 최근 더 부쩍 가까워져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체이스는 새삼 윌슨의 반응에 놀라고 있었다. 하우스가 그의 곁에 없다는 것 만으로 윌슨은 지난 며칠사이에 급속도로 체이스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렇게 된다면 조만간 '우정'이라는 미명을 들먹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체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서 그런 말들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윌슨이 체이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답답해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체이스는 알고 있다. 대부분 윌슨의 이런 표정에는 답이 정해져 있었다. "아마 박사님은 윌슨 박사님이 자신의 편을 들어줬으면 하고 바라시는 거겠죠."


윌슨은 그 말에 슬쩍 자조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편을 들어줬어. 그렇다면 나와 제대로 이야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까지 피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이야? 나도 이젠 지쳐서..."


그 순간 윌슨의 눈시울이 붉어진 게 보였다. 체이스는 잠시 긴장했다. 이제까지 불만을 늘어놓거나 화를 내는 윌슨은 본 적 많았지만, 눈물을 보이는 윌슨은 좀처럼 보질 못했다. 기껏해야 앰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아주 가끔, 한 두 번 본 게 전부였다.


"이제 정말 어떻게 할지..." 윌슨은 잔을 잡고 고개를 떨궜다. 그럼에도 테이블에 자국을 남기는 눈물을 숨길 수는 없었다. 사람이 많지도 않은 길모퉁이 바에서 눈물 떨어지는 소리만 너무 크게 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체이스는 자연스럽게 윌슨의 등에 손을 얹은 뒤 토닥이듯 아래로 쓸어내렸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있어도 괜찮아요?" 그리고는 윌슨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괜찮다면 우리 집으로 가요. 차라리 마음 편하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윌슨은 잠시 일어서서 눈을 크게 한 번 찌푸리고는, 잔을 쥐지 않은 한 쪽 손으로 자신의 눈물을 가운데 모아 코 아래로 쓸어내렸다. 더 이상 울고 싶지 않다는 느낌의 제스처였다. "괜찮아. 난 좀 가서 쉬어야겠어." 윌슨은 그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체이스는 급하게 결제를 하고는 윌슨을 부축했다. "무리하지 말아요. 내가 운전해서 데려다줄게요."


모퉁이술집에서 윌슨의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윌슨은 아무 말이 없었다. 처음에 체이스는 윌슨이 잠든 줄 알았다. 술도 많이 마시고, 눈물도 흘렸으니 잠들기에는 무척 좋은 상황이긴 했다. 현관 열쇠가 어디 있는지는 대충 아니까 집 앞에 도착하면 그 때 깨우자고, 체이스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대뜸 옆에서 윌슨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하지만 차 좀 돌려줄 수 있겠어?”


“무슨 말씀 이세요? 지금 그 상태로는 어디로 가도 무리에요.”


“하우스의 집으로 가야겠어.” 윌슨이 말했다. 위스키의 향과 함께 조금 갈라진 음성이었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심각해 보였다. 체이스는 순간 무척이나 고민했다. 지금처럼 취한 상태의 윌슨이라면 어떻게든 자신이 구슬려서 집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맞을까? 만일 이 시점에서 체이스가 윌슨을 구슬려 윌슨의 집으로 돌려보낸다 한들 나중에 윌슨에게서 원성을 듣거나 윌슨에게서 미움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소한 오해에서 시작된 일이긴 하지만 하우스와 윌슨의 사이는 이미 금이 가고 있었고, 거기에 체이스가 뭔가 더 행동을 취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체이스는 대답 없이 볼보 세단의 코를 옆으로 틀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가장 강하게 든 명제는 사실 이것이었다. ‘하우스는 결코 윌슨의 마음을 받아줄 수 있는 위인이 못 된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었다.




18.



아까 전까지만 해도 취해서 몸을 비틀거리던 윌슨은 하우스의 집으로 향하는 시간 내내 졸지 않고 바깥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체이스는 그런 윌슨이 걱정되어 당장이라도 차선을 틀고 윌슨을 설득시켜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윌슨이 어떻게 반응할 지 알 수 없기에 정처 없이 목적지로 향할 뿐이었다. 볼보 세단이 베이커가에 다다랐을 때에는 이미 주변에 가로등이 밝게 빛나는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체이스는 속으로 머리를 굴렸다. 하우스가 정말로 지금쯤 집에 와 있을까? 어쩌면 여전히 홀로 카페테리아에 남아 궁상을 떨거나 지금의 상황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기 위해 똘마니들과 수다를 떨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221호의 창문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낭패였다.



윌슨은 차를 타고 오던 내내 보이지도 않던 취기를 꺼내어 용기를 내는 데 사용하려는 것 같았다. 그는 조금 느리게 걸었지만 분명히 하우스의 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현관에 다다라서, 그는 이내 문을 두들겼다. 초인종이 있는데도 독특한 박자로 문을 두들기는 게 보였다. 체이스는 그 와중에도 이 둘 사이에 만들어진 시그널에 미묘한 씁쓸함을 느꼈다.

하우스의 현관에는 안쪽에서 바깥 상황을 볼 수 있는 캠이나 다른 장치가 없기 때문에, 문을 열어줄 것이 뻔했다. 이윽고 멀리서 부터 지팡이 짚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뒤늦게 부른 콜걸이나 피자배달부라고 생각하겠지. 문이 활짝 열렸다. 무표정이던 하우스의 표정이 금새 상기되었다. 윌슨을 보자 많이 놀란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 상기된 표정에서는 알 수 없는 반가움도 느껴졌다. 그에게 있어서는 요청에 대한 응답처럼 느껴졌을 터다. 그렇다고 그간의 일들이 모두 풀려나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무슨 일인가.” 표정과 달리 하우스는 건조하게 말했다.



“아무렇지 않게 말 하시네요.” 윌슨도 마찬가지였다. 체이스가 듣기에 그는 분명 긴장했지만, 한 편으로는 하우스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만 같았다. “그 동안 절 피해 다니셨잖아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렇고요. 이유가 대체 뭐죠?”



“일단 들어와서 말하도록 하지.” 하우스는 말을 하며 자신의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하지만 현관이 열리면서 동시에 윌슨과 함께 온 체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 하우스가 떠나갈 때 윌슨이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우스는 자신의 손발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윌슨은 제자리에 주저앉았지만, 하우스는 그럴 수 없었다. 지금은 윌슨이 자신의 마음을 가져온 상황이고, 하우스 자신은 도망가야 할 차례 이니까.



“잠깐.” 윌슨이 들어서려던 찰나 하우스가 지팡이를 세워 멈췄다. “갑자기 왜 그래요?” 윌슨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뒤의 체이스가 긴장했다는 사실 따위는 노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망할 체이스가 여기까지 따라붙었다. 하우스는 윌슨더러 체이스를 버려두고 오라는 말 조차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이 순간에 질려버렸고, 여기서 더 물러나고 싶지도 않았다. 애초에 저 성가신 벌레녀석은 윌슨의 짐이지, 자신의 것이 아니니까.



“오늘은 좀 아닌 것 같아.”



윌슨의 눈이 찌푸려졌다. “잠깐, 지금 이거 무슨 장난이죠? 차라리 이유라도 말을 해주세요.”



“그냥, 오늘은 여기서 파하자고.” 하우스는 점점 자신의 인내심이 바닥나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 공간에 체이스가 함께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난 뒤부터 그의 짜증이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었다.



“박사님. 저도 너무 지쳤어요. 정말 이 지팡이 치우지 않으시면…” 윌슨은 나름대로 고압적인 반응을 보이려 했다. 더 이상 하우스가 자신을 이유 없이 피하는 걸 견딜 수 없었다. 아니, 차라리 하우스가 체이스에 대해 욕이라도 해줬으면 했다. 그러면 윌슨은 늘 그렇듯 멍청이 자리에 올라 하우스의 욕지거리를 들으며 하하호호 웃고 그의 잔을 채워주고 그의 옆에 있을 수 있으니까.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이면서 ‘비대칭적인 관계’에 있을 수 있으니까. 체이스가 했던 말이 그의 뇌리를 잠깐 스쳤다.



“하우스 - “ 윌슨이 말하며 하우스에게 다가가자, 하우스가 재빠르게 자신의 지팡이로 윌슨의 오른쪽 다리를 타격했다. 윌슨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냅다 뒤로 고꾸라졌다. “윌슨 박사님!” 체이스가 놀라서 윌슨을 부축하려 달려왔다. 하우스는 그 둘 앞에 그대로 서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래, 왜냐고? 왜 내가 자네를 피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우스가 말했다. “빌어먹을, 윌슨. 제임스 윌슨. 내가 모를 줄 아나? 이 지겹도록 긴 시간동안, 내가 자네 속을 모를 줄 아냐고!” 윌슨은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하우스를 바라보았다. 체이스는 명백히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자네는 날 좋아하잖아. ‘사랑’하잖아? 내가 정말로 그걸 모를 줄 아나?” 순간 윌슨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그는 아픈 다리마저 붙잡고 있는 걸 놓칠 것처럼 힘이 빠져버렸다. “박사님!” 체이스가 부른 것은 윌슨이 아니라 하우스였다. 더 이상 하우스가 뭔가 말하지 않아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에 더 회복할 기미가 없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난 알고 있었지. 근데 자네가 모르는 게 있어. 그 동안 내가 왜 자네를 내 곁에 두었겠나? 그 알량한 사랑 하나 받아주지 않고 말이야. 왜냐고? 난 자네가 ‘쓸모있었’거든. 술이면 술, 밥이면 밥, 종양에 관한 의학지식은 어떻고? 아나 윌슨? 내 속마음을 정말 알고 싶나?”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체이스가 윽박질렀다. 그러나 하우스는 전혀 멈출 줄 몰랐다. 윌슨이 꾹꾹 참아온 것 처럼 하우스는 자신이 그동안 도망오며 참아온 것을 성토하듯 내지르고 있었다. “난 자네가 역겨워. 언제나 마음을 받아줄까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정말 꼴보기 싫어. 그래, 이거야. 내가 자네를 피해왔던 이유 말이야. 자네랑 그 옆의 녀석도 둘 다. 그러니까 이제 내 눈 앞에서 꺼져버려.”



하우스는 그대로 지팡이를 질질 끌어 현관문을 쾅 닫아버렸다. 주변에서 시끄럽다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지만 지금의 윌슨과 체이스에게는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다. 특히 윌슨은 아까부터 사색이 된 얼굴에다 계속해서 눈물을 흘려대는 탓에 제대로 설 수 있는 힘도 없어보였다. 체이스는 급히 윌슨을 부축해 일으켰다. “제발…박사님, 일단 여기를 떠야겠어요. 더 있다가는 안 좋은 꼴을 당할지도 모르니까…일단 자리를 떠요. 그렇게 하고 나서 실컷 울어도 상관 없어요.”



윌슨은 아무 말이 없었다. 체이스는 겨우 윌슨을 데려다 조수석에 앉혔다. 어째서인지 며칠 전 윌슨이 거나하게 취했을 때보다 더 윌슨을 차에 태우기가 힘들었다. 체이스는 착잡한 기분을 이끌고 차에 올랐다. 여전히 귀에서 왕왕거리는 이상한 울림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주변의 모든 것이 그들을 혐오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체이스는 마음을 다잡고 차에 시동을 넣기 시작했다. 당장에라도 이 장소를 벗어나지 않으면, 윌슨의 상태가 더욱 좋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체이스는 정신이 없던 통에 차의 방향을 틀면서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떠나가는 자신들을 멀리서부터 쳐다보고 있는, 221호 창문의 두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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