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DSM은 놀이기구와 같다. 오랜 시간과 비용을 써가며 만든 놀이기구에 타, 평소엔 느끼지 못하는 경험을 느낀다. 놀이동산이 아니면 우리는 아파트 20층 높이에서 자유낙하하거나, 중력의 몇 배의 힘으로 이리저리 내던져질 일이, 적어도 두 번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몸을 단단하게 압박하는 안전 바가 있기 때문이다. BDSM에서는 이와 같이 안전 바의 역할을 하는 것이 BDSM에선 세이프 워드이다. 평소나 플레이엔 절대 하지 않을 단어, 구, 심지어 행동도 괜찮다. 중요한 건, 어렵게 시작된 이 롤플레이가 어이없게 중단되지 않아야 한다. 최악의 상황으로 곤두박질 쳐지기 전, 우리를 놀이기구에 묶어두는 상호 합의적 안전 바인 것이다. 그래서 평소엔 절대 하지 않을 단어나 행동으로 정한다.
그런데 어느 날 파트너가 세이프 바와 내 손을 동시에 잡고 쳐다본다. 색다른 플레이에 나는 또 다시 두려움과 고양감이 동시에 차오른다. 이 분은 항상 새로운 곳으로, 더욱 높은 곳으로 거칠게 나를 들어 올린다. 그 분의 손이 바르르 떨리며, 내 몸을 옥죄고 있던 안전 바가 벗겨진다. 그리고 그 분이 말 한다.
“우리 연애 할래요?”
그 순간 놀이기구에서 퍽하는 소리와 함께 놀이기구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관성에 우악스럽게 낚아 채진 우리는 어둠 속으로 튕겨져 나갔다.
‘모럴 센스’는 회사라는 사회적 공간에서 역전된 DS 관계, 여성 dominant (지배, 돔)와 남성 submissive (복종, 섭)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더 알려진 SM을 내새 우지 않고, DS를 먼저 보여준다. 폭력적인 장면으로 거부감이 들 수 있는 SM과 다르게 육체적 수위는 낮추고, 돔과 섭의 미묘한 심리적 관계를 표현할 수 있었다. 단어와 롤플레이에서의 역할 때문에, 돔은 일방적으로 섭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섭은 노예처럼 복종하는 관계라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계급사회가 폐지된 오늘날에 그런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건 환상에 가깝다. 오히려 섭은 시작 전에 극대화된 환상을 품고 오고, 돔은 그런 노력과 환상을 구현하기 위한 피사체이자 서비스 제공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초보 펨돔 역할의 지우 (서현 역)도 커뮤니티를 탐독하며 돔의 책임과 자질을 공부하고, 여러 기구를 준비하는 등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초보의 고충이 그 과정이 꽤 세밀하게 묘사 되어있다. 특히 사람 몸에 바로 쓸 수 없는 로프를 준비하기 위해 전 처리 하는 과정 (삶고, 잔털을 태우고, 바세린을 바르며, 로프 연습하기)을 보여주는 모습은 이 영화가 DS 관계에 어떤 자세로 다가가는 지를 반증한다. 또한 이 과정을 멜섭 역할의 지후 (이준영 역)가 요리를 준비하는 과정을 교차 편집한다. 이를 통해 DS 관계도 어느 누가 착취하거나 이용하는 것이 아닌, 어떤 형태의 애정과 같이 모두가 노력해야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이상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쉽지 않다는 것을 변바 (변태 바닐라, BDSM 성향이 없으면서 성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활동하는 사람)에게 위협당하는 혜미 (이엘 역)의 상황으로 보여준다. 더욱이 법의 테두리에 걸쳐있는 무법지대이기 때문에 이 관계의 위험성은 가중된다. 반대로 원하지 않는 애인한테 하는 아웃팅 (BDSM 성향이 있음을 고백하는 것)도 얼마나 위험하고 트라우마를 주는 지도 지후의 전 여친 하나 (김보라 역) 와의 관계로 보여준다. 그래서 하나는 지후가 섭으로서 준비한 요리를 파괴하고 이기적이라며 그를 저주한다.
그러면 서로의 태도만 확실해지면 이 관계는 성공하는 것일까? 이 영화에선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둘의 감정 상태에 주목한다. 두 사람 모두 감정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미안해하고, 질투하고, 고민하고, 감정을 혼란스러워한다. 이 과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대부분의 오피스 로맨스 영화가 따르는 문법을 사용한다. 한 사회에 속한 남녀가 두 사람만 아는 비밀을 공유하고, 그로 인해 서로의 마음을 오해하고, 여러 에피소드로 인해 관계로 발전시킨다. 관계가 발전된 후에는 사회적 관계 (상사와 부하)와 개인적 관계 (펨돔과 멜섭)의 선을 넘나 드며 관객들의 두근거림과 카타르시스를 자극한다. 사회적 관계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개인적 관계에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적극 활용한 신이 오피스 야외 롤플레이 신이다. 펨돔 멜섭이라는 특이한 관계를 이용해 업무 스트레스에 대한 카타르시스는 유치했지만 적절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이 장면에서 감독은 이들의 육체적 쾌락보단 감정 변화에 집중하기 위해 얼굴에 포커스를 잡아 심리적 긴장감을 높인다. 수위를 높이는 것을 원했다면 몸을 훑거나 두 사람 사이를 실루엣으로 잡는 신 등 몸에 집중하는 신이 많아야 했다. 하지만 카메라는 집요하게 지후와 지우의 얼굴을 쫓아가며 감정적 해방에 집중하며 지우의 펨돔으로의 성장에 집중한다. 이러한 구도를 잡을 땐 배우의 연기에 많은 부분 기댈 수 밖에 없는데, 이준영 배우가 무리한 설정을 연기력으로 잘 이끌어가며 서현 또한 어려웠을 욕 연기를 무난하게 이어나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지우는 지후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혼란스러워한다. 펨돔의 역할에서 벗어나 애인, 즉 연디 (연애와 DS의 합성어, DS 관계가 연인이 되는 것)로 확장하길 꿈꾼다. 이 영화 전체에서 사적 관계도 모텔에서 회사, 회사에서 일상적인 야외에서까지, 결말엔 회사 전체에까지, 공적인 경계로 확장된다. 이들의 관계가 롤플레이와 애인에서 구분되기 힘들고, 지우 자신도 구분하기 힘들다는 것을 야외 수갑 신과 뒤이은 고백에서 보여준다. 그리고 곧바로 펨돔의 역할을 잃어버리고 그 선을 넘은 대가를 치른다. 애써 롤플레이의 역할을 되찾아 보려 하지만, 이미 안전 바를 잃어버린 마음은 관성으로 튕겨져 나간 후다. 아쉽게도 결말은 갑작스럽고 작위적이다. 혜미와 후배의 사고, 그것을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 모두 아쉬운 마음이 들 뿐이다. 결국 연디로의 변화에 대한 답은 나래이션으로 회피한 채 영화는 끝난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자극적인 소재로서 BDSM을 단순히 이용하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감정과 성생활을 표현하는데 집중한 영화다. 거부감이 들 수 있는 소재를 정통 오피스 로맨스의 공식과 수위 조절로 대중에게 다가갔으며, 이를 설득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하지만 결국 영화의 주제에 자기만의 대답을 내리지 못하고 의미 없는 서사로 끝낸 점은 아쉽다. 다만, 이 문제가 정답을 내리기 민감하고 상황마다 다르기 때문에, 감독의 결정을 이해할 순 있었다.
P.S.
아래 주소는 자신의 BDSM 성향을 테스트 해볼 수 있는 사이트다. 한 번 애인과 심심풀이로 해보거나 자신의 성향이 궁금한 사람을 위해 게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