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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에 낚인 날

실패가 이끄는 곳

by allen rabbit

“아니 감독님. 감독님 같은 분이 논다는 게 말이 됩니까?! 감독님 같이 훌륭한 감독님이요! 다른 말 필요 없고 저랑 합시다! 제가 감독님에게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저랑 하시죠!”

압구정의 어느 고깃집에서 영화사 장대표가 내게 말했다. 어처구니없을 만큼 과장된 말이지만, 나는 그의 말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화로의 연탄불 열기보다 뺨에 흐르는 눈물이 더 뜨거웠다. ‘감독이 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한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 사람은 나를 알아주는구나. 나를 인정해 주는구나.’ 그날 그의 말에 북받쳤던 감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날 동시에 머리 한쪽에서는 조심하라는 빨간 신호가 마구 켜지고 있었다. ‘안돼! 넘어가면 안 돼! 언제나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인 거 잘 알잖아. 이 사람한테 뒤통수를 맞는 사람도 많이 봤잖아.’

하지만 장대표는 입질이 온 낚시감을 그냥 두지 않았다. “왜 회사 나왔다는 말씀 안 하셨어요? 빨리 저한테 말씀하셨어야죠!. 감독님 준비하시는 작품이 뭐든 제가 책임지고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작품이 없으면 우리 회사에 작품 많습니다! 고르세요!” 코는 걸렸고, 장대표가 낚싯대를 당기자 나는 풀쩍 석쇠 위로 올랐다. 돌이켜 보면 그 순간부터 내 몸은 석쇠에 지글지글 타고 있었을 거다. 나는 곧바로 자기 합리화에 들어갔고 달콤한 꿈을 꿨다. ‘알아. 이 대표가 사기꾼 기질이 있다는 거. 하지만 내가 잘하면 돼. 날 이렇게나 알아주는데! 어쩌면 내가 대표를 잘못 본 건지도 모르지. 영화판이 그렇잖아. 영화가 극장에 걸리지 않는 한 모두 잠재적 사기꾼인 거. 이게 내 마지막 기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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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준비하던 작품이 엎어진 것만 벌써 세 번째였다. 그 사이 마흔 살이 넘었고, 감독이 될 기회는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캄캄한 동굴에 나를 가뒀다. 영화는 나를 배반했고 감독이라는 절대 반지는 내 곁을 영영 떠났다. <반지의 제왕>의 순하고 착하던 스미골은 절대 반지를 손에 넣었다가 빼앗기자 사악한 골룸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감독이 될 기회를 잡았다 빼앗긴 나도 원망과 자책의 밤을 혼술로 지새우며 사악한 골룸으로 변해갔다.

그때 장대표가 내게 손을 내민 것이다. “저랑 하시죠! 제가 책임지고 감독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골룸골룸! 그의 손을 잡았고, 감독을 만들어준다는 뻔한 거짓말에 코가 걸린 채 장대표의 영화 원정대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회사의 시나리오들을 닥치는 대로 고쳐 썼다. 나는 내 회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무려 주인의식을 마구 뽐냈고, 진정으로 장대표와 이 영화사가 잘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2년 뒤, 영화를 한 편도 만들지 못한 회사는 눈 녹듯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나는 감독이 되거나 회사에서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도 못한 채 다시 어두운 동굴로 돌아가야 했다. 마흔이 넘어서 당한 이 일은 말을 하기도 창피했다. 다시 전업작가가 되기로 하고 어두운 동굴에서 나오는 데는 시간이 또 필요했다.

사람들은 왜 사기꾼에게 당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직업이 사기꾼이기 때문이다. 신발가게 주인은 신발을 팔고, 식당 주인은 음식을 팔고, 사기꾼은 사기를 치는 거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다. 나는 내가 당할 것을 분명히 시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연탄불에 올라가 지글지글 구워졌다. 하지만 회사가 사라지고 내게도 남은 것이 있었다. 닥치는 대로 시나리오를 썼던 그 과정이 고스란히 내 안에 유산으로 남은 것이다.

그렇다. 단언컨대 나는 연탄불에 스스로 뛰어 올라가면서 더 맛있어졌다. 살이 꽉 찬 전어처럼! 천지에 달콤하고 고소한 향기를 풍겼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작품을 의뢰하는 사람들에게 농담처럼 이렇게 말하고는 한다. “안 써본 게 없어요. 그래서 뭐든 쓸 수 있어요! 어떤 장르든 다요!”

그때는 비록 몰랐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랬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신발이 필요해서 신발을 사고, 배가 고파서 밥을 사 먹는 것처럼. 어쩌면 나는 영화를 다시 할 핑계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기꺼이 장 대표가 던진 미끼를 물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경고를 받아들이고 뻔한 실패를 감수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그렇게 그냥 동굴에만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때의 실패가 남긴 유산은 갖지 못했을 거다. 누구나 실패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 실패가 나를 어디로 끌고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때의 나는 실패했지만. 골룸은 맛있는 전어로 변했다. 실패는 그저 단순한 실패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슬픔이 때로는 거름이 되는 것처럼, 실패도 때로는 다시 일어서는 발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골룸골룸!


<좋은생각 202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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