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V&A Museum

네 번째 편지

by 아트필러

영국에 온 지 일주일 째 되는 날이다. 그간의 일들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독서도 글쓰기도 내 마음대로 되지가 않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외국에서 혼자 살아내는 것도 기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왔다면 더 즐거웠을 것 같기도 하다. 난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나 보다. 숙소에서 30여 분간 걸어서 V&A 박물관에 갔다. 지독한 길치도 버스 요금 절약이라는 생존적인 과제에 직면하면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뚜벅이로 다녔기에 만날 수 있었던 풍경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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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의 고통과 사진의 화창함은 비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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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오른쪽에 자연사 박물관이 있다. 그리고 (이틀만에 감흥이 사라져버린) 빨간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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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조각이 대형 성당 못지 않은 위엄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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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귀족의 저택에 초대받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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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gory of Sculpture

조각상을 조각하고 있는 여자 조각상이라는 점도 흥미로운데 조각가가 전혀 조각상을 보고 있지 않은 것이 가장 특이했다. 조각은 대리석이 가진 원래 모습을 발견하는 것뿐이라는 미켈란젤로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조각상은 조각가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운명론적인 메시지가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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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과일이 수놓아진 거대한 양탄자에서 익숙한 물건이 느껴졌다. 할머니의 유품으로 간직하게 된 작은 손가방의 패턴과 질감이 아주 비슷했다. 오래 전의 물건인 데다 잊은 지도 꽤 되었는데 이 카펫을 보자마자 그 가방이 떠올라서 신기했다. 이제는 다 날아가버려서 남아있지 않은 할머니의 냄새가 그 기억과 함께 스쳐 지나갔다. 왠지 모르게 서글퍼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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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udgement of Solomon

연극보다 더 연극 같은 조각. 눈빛, 몸짓, 사물 모든 게 생생하게 살아 숨 쉬다 잠시 일시정지된 것처럼 보인다.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소란스러운 대사들이 들릴 것 같았다.


오후에는 야외 정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타원형의 얕은 호수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런던의 아이들은 어른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 천진난만함과 멋대로의 자유분방함이 싫지 않았던 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나만 듣고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걸 어떤 방식으로든 잘 풀어내서 전하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 물론 한국에 가서 마음껏 먹고 싶은 걸 먹고 싶다는 소소한 생각들도 했다. 다른 언어권의 나라에서는 식당에서 메뉴판을 읽고 주문하는 것조차 의식적으로 에너지를 써야 하는 피곤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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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건물들은 천장 보는 재미가 있다.

V&A 박물관은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져서 곳곳의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그 공간 안에서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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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 박물관에 들어섰을 때, 내셔널갤러리에서 한참을 바라보고 스케치했던 램브란트의 <A man seated reading at a table in a lofty room>의 공간과 비슷한 곳을 찾았다. 미술관 그림의 데자뷔를 박물관에서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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