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의 기쁨과 기쁨

by 마음돌봄

여느 때와 달리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한 작가님이 오전에 병원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글쓰기 모임에서 우리는 서로를 '작가님'이라 부르기로 했다.)

저녁을 준비해 주고 나오는 길.

남편은 알아서 먹겠다고 했지만 K-엄마는 식구들의 밥을 준비해 줘야 마음이 편한 건 어쩔 수 없다.


내심 저녁에 약속이 있는 게 썩 괜찮았다.

동네 책방이란 존재는 사람들에게 그런 것 같다.

가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곳.

그곳을 향하는 길은 설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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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은 무슨 미국 마을 같은 곳이라 버스를 잘 기다려서 타야 한다.

7시까지는 가야 하는데 미리 5분 정도 늦을 수 있다고 말해 놓은 터라 안심은 되지만 11분을 기다려야 하는 버스가 더디게 느껴진다. 그래, 내려서 열심히 걸어가면 돼. 그럼 늦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해 본다.

저녁 시간의 거리는 꽤 한산하다. 벌써 가을이 이만큼 와있는지 낙엽이 벌써 버석거린다.


버스 안에서의 풍경은 영화를 빨리 감기 한 것처럼 지나간다.

가을 저녁의 바람은 꽤 선선해서 시원하다.

아직 추운 계절은 아니라 더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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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가로질러야 책방에 도착할 수 있다.

한 번씩 아이들 빵을 많이 사고 싶을 때 오는 빵집도 아직 문을 열고 있다.

빵을 사면 서비스로 더 주시곤 한다.

과일도 더 반짝반짝해 보이고, 족발도 왠지 더 먹음직스러운 곳.

채소 가게 사장님의 번쩍이는 금붙이가 조명을 받아 반짝인다.

할머니 사장님의 화장한 얼굴과 빨간 입술도 잘 어울린다.

도시 한복판에 시장이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목, 금에 열리는 야시장까지 생동감이 느껴지는 시장에선 숨통이 트이곤 한다.


드디어 도착한 책방에선 이미 멤버 작가님들이 거의 도착해 있다.

모임 시간을 저녁을 옮기게 되어 미안하다 하셨지만, 사실 밤의 책방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다른 시간대의 만남은 또 다른 느낌을 불러오니 그 또한 좋았다.

작가님이 사 오신 건강한 샌드위치를 먹는 것도 행복한 일이었다.

배려가 넘치는 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다 괜찮다.

서로 편하게 기쁜 마음으로 만나는 게 더 중요하니까.


오늘은 새롭게 참여한 멤버 두 분까지 만나니 더 풍성하다.

이미 북토크에서 만났던 분들이라 더 친근하다.

미리 제출한 그림을 보고 각자 10분 글쓰기에 몰입한다.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책과 글쓰기'라는 매체로 만나, 저녁 시간에 글을 쓰다니.

이런 신기한 일이 있을 수가.

서로 쓴 글을 낭독하며 다양한 글이 나올 수 있음에 놀란다.

앞으로 글쓰기 모임의 향방을 정해 본다.

다음 글감을 얻을 책으로 이유리 작가의 소설집 '브로콜리 펀치'를 골랐다.


사실 이 책의 존재는 전혀 몰랐는데, 나라면 고르지 못했을 책이다.

묘사가 좋거나 아이디어가 좋은 책들을 이야기하며 골랐는데 생각보다 모르는 책이 많았다.

'모스크바의 신사'가 어떠냐고 하다가 '링컨 하이웨이'가 더 잘 읽힌다는 정보도 알게 되었고

일본 작가의 묘사가 좋은 책도 추천했지만, 이상하게 일본 작가는 안 당기는 나 때문에 그 또한 반려됐다.

(좋은 책인데 죄송),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는 책방지기 작가님이 읽고 있는 '이탈리아 기행'도 괴테의 멋진 글솜씨가 있으니 읽자고 했지만 두께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무섭긴 하지만 아이디어가 기발한 '저주 토끼'를 읽을까요 했으나, 이 역시 무서운 걸 못 보는 나 때문에 반려.(하하, 죄송합니다.)


어쨌든 서로의 추천 목록 속에서 읽고 싶은 다양한 책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이번 글쓰기 교과서 책과 다음 달 책까지 다 선정했다.

'브로콜리 펀치'는 서점에 한 권 밖에 없기 때문에, 다소 멀리 산다는 핑계로 내가 구입할 수 있었다.

이 또한 멤버 작가님들의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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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기다리는 밤의 정류장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버스 타는 걸 꽤 좋아한다.

자리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는 게 재미있다.

갇혀있는 시간을 합법적으로 책 읽기로 보낼 수 있다.

어차피 버스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한정되어 있지 않던가.

유튜브 쇼츠를 보든, 웹툰을 보든, 멍을 때리든지, 책을 읽던지.

난 책을 읽는 것을 '선택' 한다.


요즘 아이돌 팬들은 '덕통사고'라는 네 글자('덕질'과 '교통사고')로 이 경이로운 순간을 납작하게 정의하곤 하지만, 그 순간 내 안에서는 고작 한 단어로 다 담을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나는 그때 직감했다. 내 남은 평생은 오로지 이 아이를 위해 바쳐지게 되리라는 것을.
- p.42. <둥둥> -


'요즘' 작가의 글을 읽으며, 이질감을 느꼈다. 동시에 신비로움을 느꼈다.

지금 나의 덕통사고는 책과 글쓰기 혹은 책방가는 시간이다.

이 모임이 없었더라면 알지 못했을 책들.

알지 못했을 사람들.

이렇게 나의 세계가 더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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