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썼던 날이 언제였을까.
학생 때야 기껏 써봤자 독후감이나 일기였을 터였다.
그도 아니면 친구들과 열심히 예쁜 스티커를 붙여가며 썼던 교환 일기.
또 밸런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 크리스마스가 되면
학교 앞 문구점에서 카드를 써서 열심히 특별한 날을 서로 축하하곤 했다.
요즘 친구들처럼 수행평가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우리 나름대로 여기저기에
줄기차게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사정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리포트를 쓰는 게 다였을 테니까.
그러다가 핸드폰이란 걸 손에 쥔 뒤론 문자를 하루에도 몇십 개씩 쓰거나
스무 살이 되어 처음으로 만든 '다음' 아이디로 들어가 메일을 열심히 썼다.
글을 쓰는 걸 싫어하지 않았던 나는 편지 쓰기 대회도 나가고, 출판사 서포터스 지원도 해서
출판되기 이전의 가제본 책들을 읽기도 했다.
지금도 공병호 선생님의 '필살기'라는 책 뒤엔 내 이름이 작게 새겨져 있다.
책에 이름이 새겨진다는 경험은 참 특별하다.
계속 무언가를 끄적이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나 할까.
열심히 써 내려가던 다이어리를 꽉 채운 겨울이 되면 뿌듯한 마음도 들었는데, 요즘말로 '다꾸'를 열심히 해놓은 다이어리를 보면 한 해를 재밌게 살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살면서 글쓰기는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간단한 스마트폰 문자부터 SNS 디렉트 메시지까지 그야말로 '쓰기'와 '읽기'의 향연이다.
그중 단언컨대 가장 어려운 글쓰기는 '자기소개 쓰기'이다.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도 아닌 '나를 소개합니다.'는 왜 이리 어려울까.
수업 시간 아이들과 '렛 미 인트로듀스 마이 셀프' 타임을 갖다 보면 으레 껏 이름, 나이, 학년, 취미, 좋아하는 음식이나 학교 과목 정도이다. 정형화된 틀이 있어야 연습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과연 위에 언급한 몇 가지로 다 얘기가 될까?
사람의 성격이란 것도 늘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경험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마냥 다정하고 배려심 있어 보이는 사람도, 다른 그룹에선 다소 냉철하고 예민한 사람일 수도 있다.
늘 착하게만 보이는 그도, 회사에선 공과 사가 분명하고 자로 잰 듯 딱 떨어지는 성격일 수도 있는 법이다.
'엄하지만 인자하신 아버지와 늘 자식을 먼저 생각하시는 어머니 아래에서 집안의 장녀/장남으로 태어나'로 시작하는 자소서 말고, 좀 더 스토리 있고, 드라마틱한 포인트를 원하는 요즘 자기소개서는 과연 어떤 시작을 원하는 걸까?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어떤 글을 쓰고 싶냐고 물어보면서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의 부를 원하냐고 물으며 그럼 자기 자신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에 '더 마인드'라는 책을 읽어보니,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언인지 찾기 전에 자신이 정말로 싫어하는 것부터 찾아보라는 구절을 읽고 꽤나 신박한 사고방식이라 생각했다.
그래, 가장 싫어하는 거 죽어도 하기 싫은 걸 알게 되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지난주를 나름 '나 자신과의 대화' 주간으로 정한 것도 그 이유다.
빌게이츠처럼 'Think Week' 까지는 아니더래도 조용히 나를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현실은 엄마와 아내, 워킹우먼으로써의 삶 속에서 줄타기를 해야 했지만 최대한 집중해 보려 노력했다.
1. 새벽같이 일하러 나가는 것.
2. 청소를 오래 하는 것.
3. 쓰레기 버리는 것.
지금까지 발견한 세 가지이다. 정말 어렵다.
오늘 브런치 동기들 카페에 '자기소개'를 쓰면서 차라리 좋아하는 것을 쭉 나열해 보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역발상으로 생각하는 게 아직 힘든 나는 익숙한 길을 선택했다.
어쩌면 이건 '부정'보다 '긍정'을 더 좋아하는 나의 성향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양면성이 있는 나이지만, 역시나 계속 나는 '밝은 곳'을 향해 가고 싶다.
어두운 밤의 어두운 마음 말고, 밝은 밤에 밝은 마음을 가지고 싶다.
평생 어느 순간이든 자기소개는 항상 쉽지 않을 거다.
나이가 더 들어서 나를 타인에게 소개하는 순간이 와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자꾸 나를 들여다보고 드러내보는 시간들 속에서 점점 진짜 나를 알아가게 될 거다.
진짜 나를 알아가는 것.
십 대나 이십 대만이 하는 게 아닌 평생 우리가 알아야 하는 1순위 사람은 바로 나다.
아직은 계속 나와의 대화 주간을 가져봐야겠다.
오늘 나를 소개해보면서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만나보았다.
다음에 자기소개서를 쓸 땐 또 어떤 나를 만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