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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길을 잃다

by 마음돌봄

불타오르던 사랑은 언제 시드는가.

너무 오래됐다.

소위 사랑이라 부르는 설렘과 숨 막힘과 애정의 감정은.

지금 그런 감정이 든다면 그것은 질병의 징조일 것이다.

이미 유부녀이기에.








한참 글쓰기에 빠져 낼 당장이라도 책 한 권 뚝딱 써낼 것 같던 호승심은 차분해졌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글을 쓸으면 쓸수록 더 어려운 느낌이다.

글을 쓰는 방법은 매일 쓰는 것뿐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에 무작정 써왔다.


퀄리티를 자신할 수 없을 때,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은 양을 늘리는 것이다.

단 하루라도 연속으로 글을 쓰지 않으면, 그 다음날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더욱 그렇다. 어릴 적 4년 내리 다니던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었었다. 집에서 따로 피아노를 치는 것도 아니었으니 손이 굳어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스무 살이 되어 다시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봐도 잔뜩 딱딱한 손가락만 느낄 뿐이었다.








일상의 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가던 지금의 글쓰기는 다음 방향을 원하고 있다.

쓰면 쓸수록 배울 것이 많은 느낌이고, 할 일이 많아지는 느낌이다.

배움이라는 것이 꼭 학위를 이수하는 것으로만 혹은 타인에게 배우는 것으로만 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고민은 깊어진다.


자칫 배움으로만 끝날까 봐 걱정이 들기도 한다.

계속 새로운 책들을 읽어나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읽었던 책 다시 읽어보기.

쉽게 읽히는 이야기도 두 번 읽으면 내용이 다시 정리됨을 느낀다.

새롭게 눈에 띄는 부분도 보인다.

도장 깨기처럼 읽는 것 말고, 다시 찬찬히 생각해 보면 읽기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책으로 읽은 책 중 소장하고 싶은 책을 주문해 보았다.

소비 욕구와 책이 차지하는 부피감을 줄이기 위해 전자책을 읽고 있는데, 배송된 종이 책의 질감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었다.

표지도 화면과 같았고, 생각보다 두께도 있었다.

종이가 주는 편안함이란 이런 것일까.








사실 최근 <묘사의 힘>을 읽으면서 마냥 쓰기만 하는 생활에서 분석하는 과정을 갖다 보니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아직 닿지 못한 글의 세계에서 묘하게 느껴지는 부족함이 마음을 더 바쁘게 재촉했나 보다.


다시 문장을 곱씹어 보기로 했다.

김애리 작가의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를 다시 펼쳐 들었다.

좋아하는 작가라 평생 소장할 결심으로 산 책이다.

인덱스로 표시만 하는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인덱스를 표시하고, 마음에 닿는 부분은 열심히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그렸다.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처럼 그렇게 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글쓰기를 잘하는 유일한 방법은 '직접' 펜을 잡는 것이고, 글쓰기로 삶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꾸준히' 쓰는 것이라고 한다. 바로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기 계발서를 읽든, 유튜브 영상을 보며 정보를 얻든 그 어떤 활동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을 아는 것'이다.

감사일기나 모닝 페이지 쓰기, 미래 일기 쓰기 같은 다양한 방법들이 있지만 결국은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누구나 말한다.








혼자 있기가 더 어려운 세상에서 우리는 혼자 있어야 한다.

홀로 있기 외로운 인생에서 우리는 홀로 있어봐야 한다.

가끔은 미치도록 갖고 싶고, 어쩌면 눈물 나게 외로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평범한 가족 드라마 속 사람들처럼 살고 싶지만, 피할 수가 없다.

지금 아무 말 대잔치처럼 써 내려가는 이 글도 어쩌면 자기 위안의 글일지도 모른다.

인과 관계가 맞는지 그른지도 따질 수 없게 써 내려가는 글 속에서, 나는 길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김애리 작가의 책을 읽다 보니, 보지 않았던 부분이 보인다.

읽었지만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부분.

읽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은 것만 읽는 내가 이제 진짜 철저히 혼자 있어야 하는 때인가 보다.



jamie-hagan-zk8yYilGRvk-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Jamie Ha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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