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은 넣어둬 넣어둬
2023년 4월 5일
식목일.
남편의 외할머니 기일.
그리고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다.
시어머니께 왜 외할머니 기일을 아들 결혼하는 날로 정하셨냐 했더니 그날이 길일이라 하셨다.
길일이라는데 뭐 다른 이유가 있나.
남편과는 검도 도장에서 만났다.
24살이었던 그는 자차를 소유한 직장인이었는데 덩치에 맞지 않게 마티즈를 몰고 다녔다.
이유인즉슨,
유지비가 적게 들고 실용적이잖아.
뭐지? 이 남자. 경제관념 괜찮은데
당시 나의 이상형은 경제관념이 제대로 된 남자였다. 이전엔 '젊은이의 양지'(라테시절 연식이 나옵니다)의 '배용준'이나 '성시경' 스타일이었지만 여러 풍파를 겪은 후(?) 어느새 나의 생각은 남자라면 돈을 적게 벌건 많이 벌건 책임감 있고 경제관념이 투철한 사람으로 바뀌어있었다.
그런데 이 오빠 사람 괜찮네. 덩치는 산만한데 마티즈에서 나오는 모습이 뭔가 이질적이면서도 알뜰해 보였다. 늘 장난치지만 주변 사람을 웃게 해주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외모와 달리 그림을 좋아하고 섬세하게 전시회를 즐기는 모습도 맘에 들었다. 쓸 때는 과감하게 쓰고 아낄 땐 아끼는 모습도 믿음직스러웠다.
당시에 다소 이른 결혼을 결정한 나는 친한 친구가 놀랄 정도였다. 그냥 막연하게 뭔가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 때문에 28살의 신부가 되었다. 결혼 후 첫아이가 빨리 생겨서 신혼은 짧았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의 2막에서 소소한 재미도 느꼈다. 정말 멋모르고 결혼한 사람이 나였다.
시댁과 친정 양 가족이 서로 적응하느라 진통을 하기도 하고 그 사이에 낀 이 남자 덕분에 남편이 남. 편. 이구나라는 새롭고도 당연한 이치도 깨달았다. 하지만 그도 그때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진짜 남자로서 성장하는 과정이었겠지. 지금은 고부 관계에서 조율을 잘하는 믿음직한 남편이 되었으니.
그의 섬세함이 내가 요리를 할 때 옆에서 발휘되면 오 마이갓을 외치기도 했지만 이젠 서로 어떤 배려를 해야 하는지 잘 아는 15년 차 부부이기에 모든 게 댓츠 오케이다. 어차피 난 요리를 잘하지 못하고 그는 재료를 잘 다루기에 서로 잘하는 분야를 담당한다. 그리고 해준대로 먹으라는 나의 무언의 압박도 있다. 나는 당당하니까.
15주년 멋들어진 이벤트는 서로 없지만 소소한 행복을 나눈다.
평생 갈 친구이기에 재미있는 티티타카만으로 행복하다.
오히려 10년 차 이전 결혼기념일 때 아이들 맡겨놓고 나갈 생각에 여행이든 데이트든 행사가 많았던 것 같다.
이번 결혼기념일은 함께 책을 읽고 식사를 하는 것으로 퉁.
그리고 이렇게 서로 축하해 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