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감성적이었고, 현실적 이라보 다는 판타지 같은 면이 있는 아이였다, 연우는.
그 사실을 안건 사실 얼마되지 않았다.
무작정 휴학을 결정한 것도 그녀 다운 선택이었다.
점수에 맞춰 대충 결정한 대학, 학과는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다니기엔 다음 스텝에 문제가 있었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연우는 알지 못했다.
선배와 의논하거나 단짝 선미에게도 말할 생각을 못한 건지 모르겠지만 당시에 연우는 그저 앞날이 캄캄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휴학을 하고 연우가 선택한 건 딱 하나였다.
'무조건, 뭐든지 배우고 한다.'
코스타리카로 떠난 선배 언니를 보며 결심했다. 뭐든 배워보겠다고. 이 나이에, 대학생이라는 '자격'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건 모조리 해보겠다고. 한 가지 더, 도대체 코스타리카는 어디에 있는가 의문을 가지면서.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영어수업을 신청해 여름 방학 내내 참여했는데, 영어 작문 시간에 'breast'와 'chest'의 차이를 열정적으로 따져가며 교수님과 이야기하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차이인지 물어보는 연우에게 한국의 감자탕이 최애 음식인 미국인 교수님은 친절히, 단 한 번도 답답해하지 않고 설명해 주었고 뒤늦게 '유방'과 '흉부'의 차이를 깨달은 연우는 자신의 무식함과 무모함에 스스로 혀를 내둘렀다. PSAT 시험을 치르고 난 이후엔 역시 언어이해영역이 점수가 높다며 뼛속까지 문과생임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학과 게시판에 난 공고를 보고 프랑스문화원 서포터스를 지원해 서울과 부산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세상에 대학생은 많고 자신의 수많은 먼지 속의 작은 티끌처럼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도 여실히 느꼈다. 외국 따위야 쉽게 오고 갈 수 있는 또래 아이들, 유학을 당연히 준비하는 타대학생을 보며 느끼는 기분은 같은 한국인이지만 뭔가 미묘하게 다름을 느끼는 그런 보이지 않는 실선 같은 느낌이랄까.
서포터스 활동을 마치고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테솔 과정을 신청했다. 25살의 연우가 가장 어렸고 동기들은 모두 최소 스물여덟 이상부터 마흔 다섯 이하의 사람들이었다. 학교 선생님, 파고다 어학원 강사, 강남 사모님 외모의 영어 전문 강사 언니 등등 직업군도 다양했다. 주말 이틀, 두 달의 시간을 오롯이 테솔 과정에 보내고 부산에서 통학을 해야 했지만 서울로 향하는 시간은 놀이동산에서 바이킹을 탄 것처럼 두근대고 놀랍고 신나는 경험이었다. 물론 바이킹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했지만. 수업을 마친 어느 토요일 원어민 교수님을 따라 교수님의 집에서 하루 묵던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상복합아파트에 갔다. 그곳에 가기까지 한 가지만 생각했다. 지하철을 잘 타야 한다는 것, 헷갈려서 잘못 내리면 안 된다는 것. 3호선, 4호선이 아닌 오렌지 라인 같은 영어로 설명해 주는 교수님 말을 절반은 흘리고 절반은 알아들어서 겨우 도착했다. 입구부터 철저히 봉쇄된 느낌, 세상과의 구별, 편의 시설이 함께 있는 일층을 지나 높이 올라가니 두 분 교수님의 보금자리가 있었고, 약간의 건조함이 느껴지는 공간은 서울의 야경과 핀란드산 조명과 어울려 아늑함을 주었다.
짧은 영어로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요즘 공부한 원어민 표현을 호기롭게 사용했다.
"I was really pissed off."
"연우, 난 한국 학생들이 이런 표현을 사용할 때 웃음이 나요. 귀엽기도 하고."
대충 이런 내용의 말을 교수님의 의중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연우는 그저 따라서 웃었다.
왜 웃는지, 뭐가 웃긴 건지, 갑자기 왜 웃긴 사람이 된 지도 모르는 채.
스물다섯의 봄의 결심이 여름을 지나 겨울까지 이어졌고, 테솔 과정이 끝나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간 후
연우는 작은 학원의 영어 강사가 되었다. 자신이 뭘 잘하는지, 좋아하는지 아직 정확히 모르는 채로 그저
시간의 흐름에 올라탔다. 아직은 어리고 연약한 스물여섯의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