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혼자 가는 제주도
2021년 10월 08일 금요일
2021년 10월 08일 금요일. 나는 돌연, 제주도행을 결정했다.
물론 나는 INFP다. 즉흥파는 아니란 뜻.
내 내면 저 먼 깊은 곳에서 제주행을 수도 없이 고민하다가
번뜩! 내린 결정이었다.(대충 혼이 비정상이란 뜻)
다시 혼을 정상으로 만들어 말하자면,
여름이 시작되던 7월 초.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시작되면서 여름휴가를 가기엔 매우 난감한 상황이 돼버렸고(백신은 맞았지만), 몇 주만 참으면 금방 확진자 수가 줄어들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에 다음에(한국인의 풍토병 '화병'과 '다음에병')를 외치다 결국 이지경까지 와버렸다.
어차피 당장 쉬고 싶거나 어디로 훌쩍 떠나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 만약 가더라도 주말을 이용한 근교 여행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연말로 계획하고 있던 여행이 10월로 앞당겨지게 되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난 INFP다. 즉흥적으로 일을 하지는 않지. 돌다리를 수십 번 두드리고 건너지 않는 편.
하지만 INFP도 가릴 때만 가린다. 지금은 가릴 상황이 아니다.
10월 21일 목요일부터 10월 24일 일요일까지 3박 4일의 일정.
렌터카를 알아보니 주위에서 말린다.
운전하지 말라고. 위험하다고.
(누가 위험해?? 제주도가?? 제주도민이??)
그렇다. 나는 10년 (장롱) 면허 보유자. 운전 경력 11개월 차.
아직 고속도로는 나가보지 못한 도로 위의 베이비 드라이버. 마음만은 매드 맥스.
거친 제주도의 자연을 만끽하기엔 난 아직 어리다(운전 실력이).
나는 3050 규정 신호 지킴이라 위험천만한 곡예운전과 난폭운전을 하는 운전자와 마주치면 꼭 한마디를 해주고야 만다.
"운전 개떡 같이하네."
그리고 제주도에서는 그 개떡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말. (개떡무룩)
주위의 열화와 같은 성화 덕분에 운전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렌트 값이... 미쳤다.)
제주도 여행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특이하게도 제주도는 꼭 12월에, 혼자 오게 되더라.
12월의 제주는 연말이다 뭐다 크리스마스다 뭐다해서 수많은 커플들로 북적인다.
...
그러는 당신은 왜 혼자 가셨죠?
(묻지 마, 가! 팍 씨!!)
나는 여행은 혼자 가자는 주의라 지난 독도 여행도 그렇고 전에 다녔던 여행지도 대부분 거의 혼자 다녔다.
그래서 여행을 앞둔 지금도 세로토닌이 폭발 중이다.(눈에서 나오는 기쁨의 눈물)
2021년 10월 09일 토요일 한글날
항공기 예약 완료.
(항공기가 아니라 항공권이다. 넌 항공기를 예약할 수 없다.)
두 번의 제주도 여행은 미리미리 계획했던 것이라 사전에 항공기, 숙박, 장소 등 내가 원하는 곳을 선점할 수 있었다.
그. 러. 나 이번 여행은 2주 전에 갑자기 계획된 즉흥 여행이라 가려는 곳(숙소 및 기타) 모두 골고루 예약이 되지 않았다.
모두,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싹 다. 싹 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INFP다.
잉프 피는 임기응변에 약한 개복치이기 때문에 계획을 세울 땐 Plan A, Plan B, Plan C까지 세워놓는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에 닥치면 잉프피는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고 개복치처럼 요절하기 때문이다.
요절한 내 머릿속의 개복치들이여.
R.I.P
중문에 있는 호텔들을 서칭 해본다.
중문은 다양한 호텔들이 모여있고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는 멋진 곳이다.
방이 없다.
멋지고 예뻐봤자 내가 청약받지 못한다면 그곳은 그저 배 아픈 남의 집일 뿐.
대부분의 호텔은 만실이거나 1박씩만 예약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날마다 숙소를 바꿔 다닐 수도 없고.
당초 계획한 것이 수포로 돌아가자 세로토닌은 짜게 식었고, 계획 하루 만에 양젯물만 남아 버렸다.
게스트 하우스?
이번 여행엔 목표와 컨셉(콘셉트)가 있어 숙소에서만큼은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쉬고 싶었다.
내 이름은 〇〇〇. 포기가 빠른 여자지.
하지만 놀 때만큼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서칭 해본다.
404호
Not Found.
(또 이과가. 또!)
난 문과다. 이과들의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숙소가 없으면 어떠랴.
(뺏으면 되지.)
생각의 미니멀리즘화.
어차피 이번 여행도 자동차 여행이 아닌 뚜벅이 여행이니 여기저기 이동하지 말고 한 곳에서 3박 4일을 느긋하게 보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중반의 제주 여행은 뚜벅이로
7박 8일 동안 제주도를 한 바퀴를 돌았던 일주 여행이었다면(올레길을 걷는다거나 하는 그런 엄청난 도전을 하지는 않았다.)
이번 여행은 말 그대로 내면의 평화를 찾는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사라지는 인류애) 정적인 여행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숙소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행복 회로를 돌려 얻어낸 자기 합리화였다.)
그랬다.
시작부터 엉망이었다.
함덕? 애월? 김녕?
서귀포시보다는 제주시에서 묵고 싶었다. 지난번 여행에서 중문을 충분히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중문 청약에 떨어졌기 때문에 굳이 남의 집에 가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어디를 갔다 왔냐.
이 엉망인 나를 3박 4일 동안 감당한 곳은 바로,
협재 해변이 이 글을 싫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