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사색 Apr 26. 2022

우연한 만남

집비둘기 새끼 구조

공원에서 만난, 다친 집비둘기 새끼

근처 공원에 나갔다가 집비둘기 새끼를 구조했다. 평소 아침 운동 루틴으로 나간 산책 길에 공원 주변 둘레 길을 걷던 중 길 한 복판에 작은 비둘기가 주저앉아 있었다. 처음엔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람이 바로 옆을 지나가는데도 날아가기는커녕 꼼짝도 하지 않아서다.


얌전한 녀석이 신기해 사진에 담아보기도 했는데 눈만 깜빡일 뿐 가만히 있었다. 사진 찍으라고 포즈 좀 잡을 줄 아는 녀석이구나 싶었다. 겉으로 보기에 상처가 있거나 쓰러져 있는 것도 아니라 가만히 햇볕을 쐬고 있는 듯해 방해하지 않고 지나쳤다.


두 바퀴 때에도 그 자리 그대로 있는 모습을 보고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지켜보다가 가까이 다가가니 몸을 일으켜 움직이려 했다. 날개도 펴보지만 결국 날지 못한 채 절뚝거리며 조금씩 나를 피해 나무 근처로 가려 애썼다. 안타깝게도 한쪽 다리가 불편해 보였고 뒤뚱거리며 얼마 못가 다시 주저앉았다. 다친 게 분명한데 야생 비둘기를 어찌 도와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참이었다. 옆에서 공원 청소하시던 할머니가 자초지종을 들려주셨다.


까치 두세 마리가 떼로 새끼 비둘기에게 달려들어 쪼고 괴롭히길래 쫓아냈고 부상을 입은 건지 그 자리에 계속 주저앉아 있었다고 하셨다.


이대로 두면 다시 까치가 돌아와 해코지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도와주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곧장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다친 몸으로 도망가려는 녀석을 조심히 감싸 안았다. 처음엔 놀라서 작은 울음소리를 내더니 품어 안은 뒤엔 반항 어린 몸짓 한 번 없이 얌전했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의 도움을 받아 택배박스 안에 수건을 깔고 혹시라도 다친 곳이 아플까 조심스럽게 수건 위에 놓아주었다. 혹시 목마를까 싶어 구석에 물을 주고 안정할 수 있도록 감싸 안고 왔던 겉옷 그대로 덮어주었다.

구조 후 집에 택배 상자에 수건 깔고 물과 함께 넣어 둠. 편안해 보임

녀석이 쉬는 동안 서둘러 아침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가까운 동물병원에 찾아갔다. 걸어서 10분 이내 거리인데 박스 안에 있는 녀석이 놀라지 않게 최대한 조심히 가다 보니 두 배 이상 시간이 걸렸다. 땀 흘리며 찾아간 동물병원에선 수의사가 응급수술 중이었다. 차례를 기다리는 중에 간호사가 개와 고양이 위주로 치료하다 보니 조류인 비둘기 치료가 어렵다며 근처 다른 병원을 소개해 주었다. 다시 땀을 뻘뻘 흘리며 20여분 걸어서 찾아간 곳도 역시 같은 답변으로 진료를 거절했다. 다만 '충남야생동물센터' 연락처를 알려주어서 전화했더니 직접 데리러 온다는 답변을 들었다. 한시름 놓고 집으로 돌아와 땀을 씻어내고 기다렸다.


그 사이 엄마가 녀석에게 우유 등을 줬는데 물 외에는 먹지 않았다. 조용히 잠든 것처럼 움직임도 거의 없고 얌전했다. 아마도 내가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안심한 건지 편안해 보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계속 들여다봤지만 다행히 다친 다리 외에는 외상이 보이지 않았고 얌전히 쉬는 듯했다.


금방 올 줄 알았던 야생동물센터 사람들이 오후가 다 지나도록 오지 않아 재촉 연락을 고민할 즈음에서야 기다림이 끝났다. 혹시 아파할까 봐 나는 깃털 끝도 만져보지 못했는데 담당자는 곧장 맨손으로 비둘기 몸체 전체를 쥐더니 뒤집어서 다리와 배를 확인한 뒤 집비둘기라고 녀석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그러고는 갑 티슈 박스같이 작은 사이즈의 종이박스에 담아 그대로 떠나갔다. 뭔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떠나가는 봉고차-야생동물센터 이름이 페인트로 마크된-뒤꽁무니를 한참 쳐다보다 집에 돌아왔다.


부상당한 녀석을 조심성 없이 만지는 듯해 신경이 쓰이고 찝찝한 느낌이 들었으나 어쨌든 전문가들에게 인계했으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TV 동물농장에서나 봤던 야생동물센터 담당자들이 실제로 고생하시고 계신 걸 목격하고 나니 다시 한번 멀리 와주셔서 고생 많으시다고 잘 부탁드린다고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다.


녀석과 단지 반나절 같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 정든 건지 묘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맞다. 시원섭섭했다. 그 녀석이 살아서 전문센터에 인계되었으니 곧장 전문 치료와 케어를 받고 다시 야생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 잘됐다 싶어 뿌듯한 마음 한 편엔 이대로 끝이라는 게 서운했다. 어차피 야생동물이라 내가 입양해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도시에 있을 때는 비둘기가 날아오르면 수만 마리 세균이 떨어진다는 떠도는 소문을 듣고 피하기도 하고 닭둘기라며 못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비둘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바뀌었다. 무엇보다 나의 도움과 보호를 필요로 하는 존재로서 다친 녀석과의 우연한 마주침은 짧지만 신기한 인연으로 오래도록 특별한 기억이 될 듯싶다.

집비둘기야, 잘 치료받고 무사히 자연으로 돌아가길 바랄게. 건강하고 앞으로 난폭한 까치형들 조심해~
이전 10화 할까 말까 고민이 되면 일단 g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