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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색 Jun 28. 2022

[오라이쌤] 못생긴 손

어느 남학생의 강점 찾기

취업시즌이 한창이던 어느 날 오후였다. 그 학생을 만난 건.


강의나 상담으로 하루에도 몇십 명씩 학생들과 대면하던 시기였고 무엇보다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심각한 지병(?) 때문에 아쉽게도 그 학생에 대해 지금 기억나는 정보는 희미하다.


확실한 건 졸업을 앞둔 취업준비생이었고 키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단단한 체구와 건강하고 수줍은 미소가 호감 가는 차분한 이미지의 평범한 남학생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학교 내에 수많은 학생들 속에 있으면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외모나 분위기에서 기억할 만한 특별한 첫인상은 아니었다.


상담받으러 온 이유는 취업하기 위해 지원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자기소개서 작성부터 막막해서 도움을 받으러 왔다고 했다.


가장 큰 어려움이 뭐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너무 평범해서 성장과정도 무난하고 장단점 작성부터 쓸 말이 없다고 했다. 덧붙이기를 자기 주변 친구들은 특이한 이력이나 경험 등을 잘만 쓰던데 자신은 무엇을 써야 할지조차 막연해서 제자리걸음 중이라 하였다.


당시 취업 스펙 3~5종 세트라고 해서 학점, 어학, 자격증, 어학연수, 인턴 경험, 공모전 수상이력 등등 자신이 준비된 인재임을 어필하고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쓸 다양한 스펙과 타이틀을 경쟁적으로 준비하는 게 취준생 사이에 만연한 분위기였다. 눈에 띄는 스펙이 없어 상대적으로 본인은 많이 뒤처져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도 많이 떨어져 있고 제 때 취업하지 못할까 시름이 크다고도 했다.


진중한 태도로 차분하게 말하는 학생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시선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학생의 손이었다. 졸업을 앞둔 취준생이니 당연히 군대를 다녀왔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많은 학생들을 만나오는 동안 그렇게 거칠고 두툼한 손은 처음이었다. 흡사 고된 건설노동자의 손처럼 보였다. 나이와 앳된 얼굴에 비해 30~40대의 손 같았다.


다른 친구들처럼 스펙을 쌓지 못한 이유가 궁금했다. 대학교 입학 직후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서 본인 학비 외에도 생활비에 보탬이 되고자 학업과 병행해 쉼 없이 일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강의 듣고 과제나 시험 준비하는 것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일해서 돈을 벌었다고 했다.


그 아이 손이 유독 거칠고 못생겨진 이유였다.


학생 신분이기에 선택이 제한된 일들 중에서도 시간 대비 임금이 비싼 일들 위주로 하였고 육체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못생긴 손이 콤플렉스라고 말했다.


그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그의 가장 큰 장점.


스스로 콤플렉스라고 한 못생긴 손은 그의 책임감과 믿음직함 그 자체였다. 그래서 투박하지만 볼수록 귀하고 훌륭한 손이었다.


어려운 대입을 성공하고 얻어낸 대학생활이니 얼마나 놀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게 많았을까? 나만 해도 공부만 했던 고3 시기에 대한 보상심리로 실컷 놀고 못 마시는 술도 마시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봤던, 지우고 싶은 흑역사와 시행착오를 겹겹이 쌓았던 시기였기에 그러지 못한 그 학생이 더더욱 안타까우면서도 대견했다.


스스로 학비뿐 아니라 가족 생활비까지 보탬이 되려고 지금까지 노력해 온 것에서 가족에 대한 헌신,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태도, 자신과 가족 주변 사람까지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책임감과 성실함, 실행력 등등 너무나 많은 장점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얻었던 고생담, 일하는 동안 마주친 다양하고 생생한 경험담, 특히 일터에서 만난 사장이나 상사, 동료로부터 얻은 인정과 좋은 평가들에 관련된 일화, 그로 인해 느끼고 배우고 성장한 것들에 대해 학생은 자기소개서 쓸 글감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갖고 타인에게 자신의 강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PR 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들을 화수분처럼 막힘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시작이었고 당연히 우리의 만남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취업성공 스토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그에게 콤플렉스가 된, 어려움 속에서 묵묵히 애써 오느라 돌보지 못하고 오롯이 흔적으로 남은, 투박하고 못생긴 손은 그의 치열한 역사를 말해주고 그가 가진 강함의 증거가 되었다. 그의 자부심이 되었다.


누군가 말했다. "역경은 거꾸로 뒤집으면 경력이 된다."라고


그 말 그대로 그는 역경을 경력으로 만들었다. 어려운 환경을 탓하고 주저앉아 원망하며 허송세월 보내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서바이벌해 온 것이다. 이제는 자랑스러운 훈장이 된 '못생긴 손'으로 앞으로 어떤 회사, 어떤 사회에 나아가더라도 몸에 밴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제 몫을 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비록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고 단지 '못생긴 손'만 선명하게 남긴 그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너무나 궁금하다. 분명 누구보다 잘 살고 있겠지만.


우연히라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부디 행복하고 건강하기만 바랄 뿐이다.


해당 상담사례를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업로드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https://youtu.be/M0JYgMzWb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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