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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색 Oct 30. 2023

[생각거리] 살아남은 자의 몫

빌어먹을 죄책감? 기억하기!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선한 사람들은 사악한 사람들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그 대가를 치른다. -플라톤-


선진국뽕에 젖어있던 대한민국 서울 번화가에서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1주기이다. 국가 부재로 일어난 참사에 정부, 지자체, 경찰 등 고위 공직자 포함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기본적이고 당연한 믿음마저 무너지고 있다.


핼러윈 거리 축제를 앞둔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밤 10시 15분 이태원 좁은 골목에서 압사 참사가 났다. 159명의 생때같은 목숨이 도심 한 복판에서 한 순간에 스러져갔다. 말도 안 되는 재난이 벌어졌다.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세월호 이후 대형 참사였고 더 지독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날 그곳은 여느 때와 같이, 매년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모였다. 언제나처럼 구름인파로 몸살을 앓던 이태원 골목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핼러윈 축제를 즐기는 연례행사였다. 당연한 일상이 된 거리 축제 중이었다.


이태원에서 10년간 살았다는 주민들 증언에 따르면, 그날 거리에 모였던 사람들 규모가 평균치 이하의 인파였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노마스크 행사라 언론에선 며칠 전부터 30만 명 참가 인원을 예상하며 설레발을 쳤다. 마스크를 벗고 핼로윈 분장을 맘껏 한 젊은이들이 그동안 갇혀있던 숨통을 틔우러 이태원 거리로 나올 걸 모두가 충분히 예상했다.


매년 하던 거리 축제로 몰리는 사람들과 이태원 좁은 골목들에 일어날 병목현상을 미리 알고 매년 해오던 교통 통제조차 해당 지자체 용산구청은 하지 않았다. 명백한 직무유기였음에도 참사 직후 책임을 거나 사죄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리 축제가 아니라 '주체가 없는' 시민들의 자발적 현상이라는 어이없는 말장난으로 책임회피를 시전 했다. 축제가 아닌 현상이라서 인파 관리 대책조차 마련할 의무가 없었다고 엉터리 핑계를 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나 몰라라 했다고 당당하게 자백한 꼴. 수치를 모르는 뻔뻔함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주체가 없다고?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이라는 거리에 사람들이 몰리면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사고를 예방해야 마땅한 지자체, 경찰, 소방서 그리고 정부가 그곳에 있어야 했다. 대한민국 정부(행정 및 공무 주체)가 존재하는 이유는 헌법에 명시한 것처럼 시민과 국토를 안전하게 지키고 보살피기 위함이 아닌가.


누구도 다치거나 죽고 싶어서 그곳에 간 게 아니다. 축제가 벌어지는 거리가 당연히 안전할 거라는 믿음으로 축제를 즐기러 간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마라. 무엇보다 혈기왕성한 10대, 20대 청춘들이었다. 사람 많은 곳에 놀러 나왔다고 뭐라 할게 아니라 사람들이 모일 걸 뻔히 알고도, 매년 치르는 행사에서 사고 위험 지역을 통제하고 예방하고 안전 조치를 하지 않은, 제 할 일조차 못한 책임자와 시스템이 문제였다. 예방해도 통제할 수 없는 '사고'와 결이 다른 명백한 '인재'였다.


그러한 상황들이 왜 벌어졌는지 정확한 사고 원인과 진상조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당신이 희생자들의 가족이고 지인이라는 상상만 해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애간장이 녹아내린다, 애끊는 슬픔'이라는 말을 아는가? 애는 내장이다. 내장이 녹아내리고 끊어지는 아픔을 상상할 수 있을까? 죽을 만큼 아프다는 얘기다. 자식 잃은 부모의 비통함과 고통을 겪어보지 않고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내 가족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보물 같은 자식이 서울 한 복판 거리에서 죽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에 도무지 받아 들을 수 없는 엄청난 재난의 희생자라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도대체 어쩌다 죽었는지 진실알고 싶은  당연하다. 원망할 대상을 찾기 위함이 아니다. 진상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슬픔도 분노도 가라앉고 소중한 사람의 죽음도 받아들이고 애도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났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묻으려고만 하기에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채 유가족을 비롯 한국 사회 전반에 소리 없이 분노와 절망이 뿌리내리고 있다.


거리에서 죽어간 참사 희생자들은 10대, 20대, 30대 생때같은 우리 미래의 주역들이었다. 초고령화사회로 빠르게 향해 가고 있는데 애까지 낳지 않는 절망적인 한국사회에서 더 소중한 젊은 이고 미래였다. 놀러 나가서 자처했다고 희생자들을 탓하고 조롱하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은 부디 자기 가족이라고 한 번만 생각해 보길 바란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생생한 트라우마와 죄책감으로 견디지 못하고 안타깝게 생을 등지기도 한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진상규명은 지지부진한 상태고 상처와 후유증만 깊어질 뿐이다.


참사에 관련된 수많은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자.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이나 피해 입은 모든 사람들까지 그분들의 아픔과 고통을 줄일 수 있게 도와드려야 한다. 그리고 명명백백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은 아무리 오래 걸려도 반드시 끝내야 할 것이다.


세월호참사로 어린 학생들이 수장당했을 때도 국민 모두가 커다란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여전히 그 충격과 공포, 아픔이 선명하다. 재난에 경중은 없다지만 10.29 이태원 참사가 더 끔찍하게 느껴지는 건 오갈 데 없는 바다 위도 아닌, 서울 번화가 축제 거리라는 일상 공간에서 일어난 재난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일상 공간에서까지 사고 위험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행정부나 시스템을 믿지 못한 채 스스로 안전을 도모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며 대체 정부는, 나라는 왜 존재하는가?


책임을 현장과 말단으로 떠넘기고 재난을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바꿔 말하며 면피하려는 시도에 열 올리며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는 태도로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더 큰 상처와 분노를 일으켰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이같이 황당한 재난이나 참사가 또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반복되는 재난은 분명 인재가 맞다. 알고도 대처하지 못한 것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어른들, 세상의 시스템을 믿는 아이와 젊은 청년들의 희생이 더는 없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을 먼저 살아온 어른들의 몫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그래서 지금 난 빌어먹을 죄책감을 느낀다.


처음엔 참사 속보가 오보인 줄 알았다. 그만큼 믿기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참사 소식으로 온통 세상이 뒤집어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진정되긴커녕 오히려 분노와 울분, 안타까움과 슬픔, 죄책감, 온갖 널뛰는 감정으로 괴로울 따름이다.


뉴스로 전해 들은 나도 이렇게 애통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 희생자의 부모, 가족, 친구, 지인 심지어 재난 현장 목격자와 구조를 위해 애쓴 모든 현장 인력들(경찰, 응급요원, 구조활동에 참여한 시민들 등등)의 심정은 어떨까.


엄청난 사고 후유증과 심리적 고통 속에서 아직도 몸부림치고 있으리라. 최선을 다했지만 구하지 못한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과 절망이, 애끓는 탄식이 그을음처럼 들러붙어 그들을 좀먹고 있으리라. 수면 아래 감춰지고 강제로 지우려하는 모든 시도들의 반작용으로 이 모든 아픔이 축적되고 농축되어 사회 전체 트라우마가 되고있음을 느끼고 있다.


우리 모두 이 재난을 지켜본 희생자이다. 살아남았지만 죄책감과 불안, 불신에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억하기' 뿐이다.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진상규명만이 반복되는 잘못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테니까.


한 사람에게 가해진 부당함은 모두에게 가해질 위협이다. -몽테스키외-



참사 대응에 실패하고 국정조사 위증 혐의 등으로 2023년 2월 8일 국회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액소추안이 의결됐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69일 만이었다. 그로부터 167일이 지난 7월 25일 국무위원에 대한 헌정사상 첫 탄핵 심판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의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됐다. '이 장관이 이태원 참사에 미흡하게 대응한 점이 있으나 파면에 이를 정도는 아니다'라고 판단한 것. 헌법 제34조에 따르면 국가는 모든 재난에 책임을 진다 전제(헌법)를 간과한 채 재난안전법 등(법률)을 주요 기준으로 삼아 면제부를 준 셈이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물어야 할 헌법재판소가 장관의 의무를 협소하게 해석해 면책해 줌으로써 스스로 존재 이유를 허물었다는 전문가들의 비판이 뒤따랐다. 탄핵심판에선 안전과 재난의 총괄 책임을 이 장관에게 계속 맡길 수 있는지를 헌법적으로 판단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헌재 연구관을 지낸 김선휴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이태원 참사는) 참사 대응의 가장 핵심적 문제로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계속 지목됐다”며 “그런데도 일정 부분 (의료·소방) 시스템이 작동했고 이 장관이 시스템 작동 결과를 보고받았거나 보고에 따른 원론적 지시를 했다고 해서 성실의무·기본권 보호 의무 위반에 면죄부를 준다면 과연 의무 위반이 인정되는 경우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결정으로 헌재가 파면의 허들을 매우 높게 세워둔 탓에 장관들은 의도적으로 국가 기능을 훼손하는 등 명백하고 현저한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수준이 아닌 한 헌법과 법률 위반에 대해 상당히 폭넓게 면죄부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이렇게 헌법과 국민 앞에 책임지지 않을 수 있다면 이들이 열과 성을 다해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공직자로서 직책을 수행하기를 기대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탄핵심판 기각 결정으로 이제 더 이상 행안부 장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회는 없다”며 “국민 입장에선 누구를 믿고 우리 생명과 안전, 재산을 맡길 것인지에 대한 답이 사라져 버린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절실한 시대적 당위를 구성한다”며 “사람의 생명 앞에 눈 감지 않는 정부, 국민의 안전을 자본의 뒤편에 두지 않는 정치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진상규명은 계속돼야 한다”라고 했다.

(참고한 기사 출처: “이상민 장관 면책한 헌법재판소, 존재 이유 잃었다”, 경향신문 2023.08.08)


윤석열 정부 출범 후'10.29 이태원 참사', '신림동 반지하 침수', '새만금 잼보리 사태', '청주 지하차도 참사' 등등 재난과 참사가 반복되고 심지어 점점 커지는 게 불안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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