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 너머에 고양이들이 아른거린다. 지난번 비닐보다 더 큰 비닐이 앞베란다 전체를 덮었기에 고양이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고양이들 모습이 비오는 날 수채화처럼 희미하다. 왠지 신비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고양이들은 이번에도 적응한 듯 하다. 비닐이 비까지 다 막아주니 그 아래에서 편안하다. 비닐이 있든 없든 자신들이 있던 곳에 머문다. 짠하다.
페인트칠 끝나고 이번에는 남편이 베란다에 오일을 발랐다. 일 년에 한번은 기름칠을 해야 나무판이 썩지 않는다. 일단 크기가 큰 고양이 집을 치우고 바닥에 담요만 임시로 깔아주었다. 우유나 츄츄는 모든 상황에 적응했다. 나는 고양이들이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페인트칠부터 나무판 기름칠까지 고양이들에게 말해주었다. 고양이들은 죽은 애니시다 나무 옆에서 내 말을 고요히 듣고 있었다. 듣는건지 츄르를 기다리는건지는 구분이 안되지만.
비가 와도 딱히 피할 곳이 없다. 그래도 먹이는 먹어야하니 젖은 나무판에 앉아 나를 보고 있다. 얼른 베란다 페인트칠이 끝나야할텐데. 고양이들도 생애 처음 비닐 아래 살아봤을 것이다. 또 생애 처음 페인트칠하는 나무판을 어떻게 피해다녀야하는지도 배웠다. 고양이들도 배울 게 참 많다. 고양이들은 모든 새롭고 낯선 것들을 느리게, 천천히, 조금씩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