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토마토 Sep 20. 2024

아파트 나무데크에 숨어살기

-식물과 거미, 말벌, 장구벌레 그리고 길고양이

   뜨거운 여름이었다. 나무들은 타들어갔다. 병인지 강렬한 햇빛인지 그 까닭도 모른 채. 동백나무 끝이 말랐고 사과나무는 아예 죽은 듯 갈색 나뭇잎들만 겨우 붙어 있었다. 허브 잎들도 말라갔고 단풍나무 끝도 조금씩 갈색이 되고 있었다. 아침마다 물을 뿌려대었지만 그것도 역부족인 것 같았다. 반면, 자라지 않기를 바라는 잡초는 무성해졌다. 마음먹은 날만 조금씩 잡초를 뽑는 것만으로는 잡초를 막을 수도 없었다. 


  일 층 아파트의 야외 나무데크에는 작은 생명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거미가 금새 줄을 만들고 조금이라도 물이 고여있는 곳에는 장구벌레가 떠다녔다. 집 가까이 사는 길고양이들을 위해 사료와 물을 떠놓으면 그 물그릇에 말벌이 입을 축이고 갔다. 말벌은 한참 물그릇 위를 돌다가 그릇 테두리에 앉았다. 그러곤 물을 몇 모금 마신 뒤 다시 날아올랐다. 



  서로 색깔이 다른 길고양이들- 몬순이, 치즈, 나비-도 틈틈이 사료를 먹거나 물을 마시고 떠나거나 아니면 아예 그늘밑에 앉아 쉬고 가기도 했다. 그리고 봄에 낳은 새끼들을 여름에 데리고 왔다. 가끔 화분에 똥을 싸서 나를 힘들게 하곤 했지만, 그리고 그 똥이 누구 아기의 똥인지도 알지 못하지만, 비닐장갑을 끼고 치웠다. 그래도 감당이 안되어 결국 고양이가 똥을 못 싸도록 화분 위에 퇴치매트를 설치했다. 하지만 고양이들에게 먹이 주는 일은 멈출 수 없었다. 나를 보면 속삭이듯 작은 울음소리를 내는 치즈의 모습은 늘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치즈가 두 발을 쭉 뻗어 집 방충망을 두드릴 때면 나는 반가운 손님인 온 듯 얼른 사료와 추르를 그릇에 담아 치즈 앞으로 내밀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