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는 올 초에 치즈를 우리집에 데려온 고양이였다. 처음에는 치즈가 나비의 새끼인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갈수록 나비없이 치즈가 자주 왔기에 나비와 치즈는 서로 친척이거나 우연히 알게 된 사이라고 짐작했다. 나비나 치즈나 작년 여름이나 가을에 태어난 고양이 같았다. 둘다 덩치가 작았다. 나비는 좀 날카로워 보였고 치즈는 그보다 좀더 어려보이고 순해보였다.
올 초에 치즈는 한동안 우리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살았다. 그래서 낮에 우리는 고양이 장난감으로 치즈와 놀아주기까지 했다. 치즈는 밥을 먹고 동백나무 화분 아래에서 잠을 자거나 쉬었다. 그러곤 그 옆 사과나무에 똥을 쌌다. 한참동안 치즈의 똥을 치우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다가 나비도 치즈도 배가 불렀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배가 줄어있었다. 나비는 새끼를 돌보느라 한참 안 왔고 치즈는 새끼는 어디 뒀는지 혼자서 가볍게 왔다. 아마도 새끼들이 죽은 듯 했다.
새끼를 돌보느라 제대로 먹지 못했던 나비는 한동안 안 보였다가 삐쩍 말라서 다시 우리집에 찾아왔다. 그리고 두 마리의 새끼를 데려왔다. 내가 베란다 문을 열자 새끼들은 놀라 도망을 쳤다. 두 마리의 새끼는 둘다 눈병을 앓고 있었다. 나비도 한쪽 눈이 아파보였다.
나비는 새끼들의 젖을 뗀 무렵부터 밤낮 우리집 야외 베란다를 차지했다. 그러곤 먹이를 먹기 위해 찾아오는 치즈를 내쫓았다. 나비는 치즈만 보면 쫓아갔고 결국 치즈는 나비가 겁났는지 찾아오지 못했다. 나비는 자신의 새끼를 지키기 위해 더 독기를 품은 듯 했다.
나는 치즈를 쫓아낸 나비가 얄미워 하룻동안 먹이를 주지 않다가 새끼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나비의 마른 몸도 안쓰러워 먹이를 챙겨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나비의 새끼들은 눈병이 치유되었다. 나비도 조금씩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치즈의 집에 더이상 치즈는 못 오게 된 것이 씁쓸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낮게 속삭이듯 울던 치즈가 그리웠다. 하지만 길고양이들의 세계에 내가 너무 끼어드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았고 끼어들 방법도 알지 못했다. 나비가 그저 새끼들을 잘 키워내길 바랄 뿐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건이든 인연이 이어지는 때도 있고 또 그 인연이 원치않게 다하는 때도 있는 것 같다. 나는 그저 그 흐름에 잠시 머문 채 나비와 나비의 아기들이 먹이를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렇게 또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는건가보다. 인연이 시작된다는 것은 삶이 또 다른 삶과 함께 익어간다는 것. 나는 오늘도 아주 조금 익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