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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토마토 Sep 26. 2024

너는 언제 꽃 피니?

-야외 베란다에 심은 해바라기꽃을 기다리며

  봄이면 왜 이렇게 새로 심고 싶은게 많은지. 어차피 여름에 타죽거나 겨울이 되면 관리가 안되어 죽을 걸 알면서도 나는 봄이 되면 식물을 심었다. 봄되면 모종도 사고 새 화분도 사고 영양제도 사면서 식물에 대한 기대를 했다.


  그래봤자 나는 겨울에 죽은 식물과 같은 식물을 사서 심거나(겨울에 죽은 식물에 대한 추모를 위한 행위이다.) 아니면 고추, 방울 토마토, 딸기 모종을 심었다. 해마다 심는 모종인데 어떤 해는 고추모종에 진딧물이 가득 생겨서 실패하기도 했고 어떤 해는 고추가 잘 열려서 제법 수확이 좋기도 했다. 방울 토마토도 마찬가지였다. 해마다 심는 거지만 잘 안되는 해도 있고 그 까닭은 알지 못하지만 잘되는 해도 있었다. 딸기는 작년에는 제법 열매가 열렸지만 올해는 영 시원찮다. 아주 작은 열매가 열려서 몇 개 먹는게 전부였다.


  유달리 속을 태우는 식물도 있었다. 치자꽃은 분명 4월말이나 5월에 폈는데 올해는 봉오리만 맺은 채 한참 뜸을 들였다. 봉오리 채로 못 피면 어쩌나 걱정하며 식물영양제를 꽃아주고 새로운 흙도 넣어주었다. 다행히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6월에 피었다.


  치자꽃보다 내 속을 더 태운 것은 해바라기였다.

  올해 처음 해바라기 씨를 심었다. 집에서 키우는 햄스터 먹이에 해바라기 씨가 가득하지만 한번도 심어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호기심에 해바라기 씨를 다섯 알 심었다. 그러곤 세 개가 싹을 틔웠다. 그런데 도대체 꽃을 피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키만 쭈뼛 크더니 어느날부터 나보다 더 컸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해바라기의 잎사귀들은 벌레에 먹혀 구멍이 숭숭 났고 아니면 더위에 말라버렸다. 크고 풍성한 해바라기를 기대했던 나는 뭔지 모르게 점점 불쌍해지는 해바라기가 안쓰러웠다. 물을 좀더 주거나 식물 영양제를 꽂아주거나 말라버린 잎들을 뜯어주거나 긴 키를 지탱하기 위한 막대기를 꽂아주는게 고작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해바라기 꽃봉오리가 맺혔다. 그리고 아주 더딘 시간동안 꽃이 폈다. 꽃봉오리가 맺혔고 그 다음 고개를 살짝 숙였다.



  며칠이 지난 뒤 노란 꽃이 고개를 들었다. 물론 한쪽은 아직 덜 폈다. 이게 왠일인가. 나는 내가 심은 씨앗이 싹을 틔워 꽃이 폈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해바라기 꽃이 작고 보잘 것 없어도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꽃은 빨리 필 수도 더디게 필 수도 있다. 다만 꽃이 피는 때가 다 다를 뿐이었다. 우리가 꽃이라면 우리도 빨리 필 수도 있고 더디게 필 수도 있겠지. 남이 먼저 피었다고 부러워 할 필요도 없고 내가 먼저 피었다고 뽐낼 필요도 없다. 내 꽃이 더디게 핀다고 조바심을 가지지 말고 그저 기다려야지. 다 때가 다른 것이니.
다만 그저 존재만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더디게 피워 내 속을 태운 작고 보잘것 없는 해바라기 꽃을 보며
나는 꽃 대신
벌레 먹은 잎사귀를 쓰다듬어 주었다.
애썼구나.
그리고 애쓴 나도 쓰다듬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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