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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한 송이를 드립니다.

by 그린토마토 Feb 19. 2025

  지인들을 만나러가며 꽃을 사갔다. 나는 평소 그렇게 센스있는 사람도 아니고 선물을 살 줄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랬기에 꽃을 사겠다는 건 의도하지 않았다. 딸친구의 오케스트라 발표회에 가져갈 꽃을 사기 위해 꽃집에 들렀을 뿐이었다. 그리고 꽃집에서 꽃을 예약한 뒤 바로 지인들을 만나는 카페로 갈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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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문득 지인들을 만나는 자리에 꽃을 사들고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만으로도 설레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그래도 이럴 때 한번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꽃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 사장님, 장미 있어요?


  내가 잘 아는 꽃 이름은 장미, 백합, 안개꽃, 후레지아 정도였다. 아쉽게도 잘 아는 꽃인 장미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다른 꽃을 살펴보며 사장님에게 부탁했다.


- 잘 안 시들고 오래가는 꽃으로 포장해주세요.


  꽃집사장님도 황당했을 것이다. 잘 안 시들고 오래가는 꽃이 어딨어? 그럴거면 조화를 사야하는거지. 생화는 어쩔 수 없이 시들고 짧게 보는 건데. 그게 생화의 매력인데. 그걸 알면서도 찌질하게 이런 주문을 하는 내 모습이 씁쓸했다. 

  하지만 내게는 안 시드는게 중요했다. 오래 볼 수 있는 꽃. 애들 챙기며 바쁘게 살면 꽃을 살 일도 잘 없다. 그 돈으로 아이들 먹일 음식 사는게 더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 한번 사면 기분좋게 좀 오래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장님에게 꽃 이름을 들었는데 금새 까먹었다. 듣는 순간 메모하지 않고 그냥 흘려들으면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어쨌든 각각 포장된 세 송이의 주황색 꽃이 내 품에 들어왔다. 

 

  꽃을 안고 약속장소인 카페로 향했다. 지인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아이들 키우느라 일상에 치여사는 지인들에게 깜짝선물을 준비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잠시라도 환하게 웃을 얼굴들도 기대되었다.

  내 기대대로 소박한 꽃을 받은 지인들은 밝게 웃어주었다. 착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미소가 꽃보다 더 밝고 좋았다. 한동안 지인들의 웃는 얼굴이 오래 기억날 것 같았다. 사실 내 꽃은 안 샀다. 그런데도 내가 꽃을 받은것마냥 기분이 좋아졌다. 

  가끔은 이런 일상이 필요한 것 같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을 나누는 것, 그것에 소박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담는 것, 그리고 눈빛으로 서로에게 '너 열심히 살고 있어.' 하고 토닥여주는 것. 


  꽃 / 문태준


당신은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세요

조심스레 내려가

가만히 앉으세요

그리고

숨을 쉬세요

부드러운 둘레와

밝은 둘레와

입체적 기쁨 속에서


시집 <아침은 생각한다> 창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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