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구름이 흘러간다

by 오인환

초등학교 때 까지는 세상에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왜 구름은 두둥실 떠다니고 있을까'부터 시작해서 '해가 질 때 하늘의 색깔은 왜 빨갛게 변하는가'까지 지금은 떠올리려고 미간을 찡그려야지 떠오르는 그런 기억들을 언제부터 잊고 지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언제부턴가 어른들이 하는 고민들을 채워가느라 세상에 궁금한 것들이 없어져 갔다. 오늘 빠져나갈 카드값이나 내일 신경 써야 할 일들.. 지나간 사람들.. 앞으로 해야 할 일들..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을 채우느라 사색하며 채우던 기억의 공간이 줄어들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하늘을 바라보는 일 보다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일이 일상화되고 짧은 찰나의 순간이라도 귓속에 유행가 가사를 때려 넣으며 비워져 있음을 못 견뎌하는 듯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며 차라리 게임을 하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다. 귓속으로 들어가는 것에는 '정보'를 담아야 하고 눈으로 들어오는 것에는 내용을 포함해야 하며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에는 기억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생각해보면 그런 강박들도 내가 만들어낸 규칙에 불과했다. 가사 없는 음악을 틀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유가 사치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너무나 많은 진짜 사치들을 하고 있다. 크게 지금을 목표로 하지 않았음에도 하루와 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지금이 되었다. 목표라는 것들이 얼마나 무의미한지가 느껴진다.

오늘은 비어있는 하루의 짧지 않은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기만 했다. 문뜩 번뜩이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면 이 곳에 남길 사진 한 장 찍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아까운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보내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유가 생겼다.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니 내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구름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러거 보니 저런 것들은 움직이거나 말거나 스러운 배경에 지나지 않았다. 언젠가도 내 인생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던 것들이 아니다. 내가 그것을 지켜봄으로써 그 움직임에 의미가 생겼다. 그것들이 결국 내 인생의 일부가 되었다. 스마트폰을 바라봤더면 내가 죽는 순간까지 보지 못했을 광경이었다.

생각보다 구름은 낮게 떠 있었으며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정지되어 있는 것 같아 보이는 나의 주변들도 내가 인지하던 인지하지 않던 꾸준하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퀸스타운을 가는 동안 아주 높은 산을 넘어갔던 적이 있다. 6시간을 내리 운전을 하다 보니 내가 지나가던 안개가 '구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창문을 열고 습한 공기를 들여다 마셨다. 어렸을 때는 구름의 맛이 궁금했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구름은 뭉게뭉게 아름답지도 않았고, 맛있지도 않았다. 그냥 습한 공기였을 뿐이었다.

멀리서 지켜볼 때 아름답던 구름은 실제 그 안에선 축축하고 습하고 사방이 보이지 않게 하는 안개였을 뿐이었다. 흘러가지도 않았고 멈춰있지도 않았다. 내가 그 산을 타고 내려와 마을에서 지켜본 구름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내려와 지켜본 구름은 아름다웠고 여유 있게 흘러가고 있었으며 운치 있었다. 슬쩍하고 보면 멈춰 있는 것 같았지만, 가만히 지켜보자면 분명 흘러가고 있었다. 어쩐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한 발 치 떨어져 보면 아름답기도 하고 여유 있기도 하며 운치 있다. 다만 그것의 속에서는 축축하고 눅눅하고 찜찜하며 사방이 깝깝했다. 흘러가지도 않았고 멈춰 있지도 않았다.

오늘 유리 넘어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니 불현듯 그때의 기억이 났다. 그 시절 뉴질랜드에서 흘러가던 구름은 지금 쯤 어디쯤까지 흘러가 있을까? 분명 어딘가 비로 쏟아져 내려 바다로 들어갔을 수도 있고 다시 구름이 되어 지금 내 머리 위에 있을 수도 있다. 그 수많은 작은 입자들 하나하나가 분명 스쳐 지나가고 지금은 없지만, 분명 어딘가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흘려보내던 많은 사람들도 지금은 어떤 형태로 분명 존재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스치고 지나가 지금 내 눈에 없다고 하더라도 분명 그때와 다른 형태의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던 그들도 그때는 눅눅하고 찝찝하고 축축한 어떤 것이라고 하더라도 멀리 떨어져 시간과 공간을 사이에 두고 보자니 운치 있고 아름다운 어떤 것들이 되어가는 듯하다.

가끔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야 현실로 돌아오곤 한다. 어쩌다가 지금까지 왔는지 의아할 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여온 듯하다. 출발할 때, 잠에 들어 도착지에 도착하게 된 버스의 어느 순간처럼 사라져 버린 중간의 기억들이 너무 많은 듯하다. 하나씩 어떤 것들을 포기해 나가는 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더라도 미래의 어느 날에는 지금 쥐고 있는 또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나는 무엇을 쥐고 있을까. 그리워하지 않으려면 나는 지금 그것들을 빨리 깨닫고 순간을 지키고 즐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keyword
이전 02화[생각] 모든 이혼은 성격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