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모든 이혼은 성격차이다.

by 오인환

우연히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한 영상에서 남자가 말했다.

'단연코 모든 이혼은 성격차이이다.'

그는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주장이 황당했다. 모든 사람이 처한 상황에 대한 조금의 이해조차 필요 없다는 듯 그는 말했다. 일방적인 방식의 사고에 매우 한심해 보였다.

영상을 조금 더 지켜봤다. 남자는 다시 재차 강조했다.

'모든 이혼은 성격 차이입니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적지 않은 그의 논리를 지켜봤다. 그러다 보니, 그가 하는 말에 깊이가 느껴졌다. '아.. 그럴 수도 있구나'

' 한 남자가 도박에 빠졌다. 가족을 내 핑계 치고 도박에 미쳤다고 해보자. 남자는 밤낮으로 도박을 하러 다닌다. 여자는 남자의 도박에 질린다. 혼자 독박 육아를 감당한다. 매일매일 그녀에게는 지옥 같은 생활이다.'

이 부부의 이혼 사유는 무엇일까?

'성격차이'

법적인 유책사유는 남편에게 있을지 모르지만, 가장 문제의 근원은 여자에게도 있다. 남편은 도박을 좋아한다. 만약 부인도 도박을 좋아했다면, 그 둘은 천생연분일 것이다. 부부가 함께 도박을 즐기며 삶을 즐길 수 있다. 물론 그로 인해, 빚이 생기거나, 범죄와 연결될 수도 있다. 다만, 부부 사이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며, 이혼 사유는 아닐 것이다.

'한 여자가 바람을 피웠다. 남자에 대한 배신이다. 여자는 더군다나 뻔뻔해지기 까지 한다. 남자를 무시하며, 언제나 외박한다.'

이 부부의 이혼 사유는 무엇일까?

'성격차이'

마찬가지 법적인 유책사유는 부인에게 있다. 하지만, 부부가 서로 합의하에 이성교제를 허락한다면, 법적인 결혼이라는 제도를 이용하여 안정적인 부부생활을 하면서, 개인사를 즐길 수도 있다. 다만 그렇지 못하는 남편의 마음과 그래도 되는 아내의 마음 차이이다.

참.. 못마땅하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다.

생각해보니, 그 말이 곧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모든 잘못이 상대에게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곧 갈등이 된다. 하지만, 상대는 상대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상대의 종교가 기독교이기 때문에, 무교 집안에서는 반대를 한다. 무교 집안에서는 상대의 종교가 기독교이기 때문에 반대를 한다. 처가로 갔을 때는 남편이 죄인이고, 시집에서는 아내가 죄인이다. 그렇다면 누가 죄인일까?

죄인은 없다. 다만 차이일 뿐이다. 차이를 인정하면, 다만 차이일 뿐이지만, 그것을 죄라고 규정하는 순간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가 되어버린다. 그런 일은 인간의 역사에서도 많았다.

3세기 이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가 생애를 보낸 지역에 성지 순례 여행을 해왔다. 이 지역은 이슬람 통치자들의 영토였다. 1071년 만지케르토 전투로 동로마 제국이 쇠퇘했다. 서유럽은 교황 우르바노 2세를 중심으로 성지 회복을 명분으로 예루살렘에 군사적 원정을 단행한다. 명분은 간단하다. 지역의 믿음 차이일 뿐이다. 이것은 십자군 원정의 시작이다. 이 전쟁은 단순 지리에 대한 관점 차이로 발발했다. 성스럽다는 명분의 두 종교는 200년이 넘게 전쟁을 벌였다.

우리는 현상에 대한 과거와 미래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 왜 그들이 그리스도가 아닌지, 왜 그들이 그리스도인지. 그들이 맞는지 아닌지, 내가 맞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것에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방어기제가 발동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맞다고 정의해 온 사회는 단 한 차례도 그것이 '진리' 였던 적이 없다. 지구를 중심으로 돌던 하늘이,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한 사람이 지동설을 주장했다고 지구가 태양을 도는 우주로 바뀐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절대 규칙이라고 알고 있던 과학이나, 이미 증명됐다고 판단된 명제들 조차 시간이 지나고 나서 거짓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이성적 판단의 기초라고 정의하는 과학 조차, 이토록 유동적이다. 과연 무엇이 진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진리는 1+1이 2라고 정의 내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1은 그가 갖는 스스로의 의미를 인정하고 2는 2가 갖는 스스로의 의미를 인정하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되고 있다는 사실 하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판단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를 미워하는 이유는 그가 나와 다르다는 자기 확신 때문이다. 나의 돈을 훔친 자를 미워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는 누군가의 돈을 훔친 것일 뿐이다. 나는 누군가의 돈을 훔치지 못한다. 때문에 화가 날 뿐이다. 누군가가 나의 돈을 훔치면, 화를 낼 것이 아니라, 고소를 하거나 법적인 조치를 취하면 그만이다. 일어나는 화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은 화낼 이유가 없다. 사실 나조차, 그에게 보복할 수 있다. 다만 하지 못할 뿐이다. 하지 못하기 때문에 화가 날 뿐이다.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저주를 할 수도 있다.

다만, 그는 죄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미워할 필요 없이 내가 할 조치만 취할 뿐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에너지 소모나 감정 소모가 심한 사건들이 나의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그것들은 꾸준히 나의 감정과 에너지를 소모시키며 나를 갉아먹는다. 외부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자신이 피해보고 있다거나, 세상에 불행하거나 불리하고 돌아가고 있다고, 자기 착각의 판단을 내리는데 엄청난 에너지와 감정을 소모한다.

판단을 내려놓자. 판단은 자기가 내린 정답에 세상의 문제를 끼워 맞추는 일이다. 스스로의 정답지가 정답이라는 착오일 뿐이다. 그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들에 대해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그리고 그에 적절한 대응만 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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