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나쁘라고 한 행위에 기분을 나빠한다면 내가 기분이 나쁠 뿐이다. 기분이 나쁘라고 한 행위에도 기분을 좋아한다면 상대가 기분이 나쁘다. 예전 한 탁발승이 누더기를 걸치고 걸식을 하며 탁발을 하러 다녔다.
동냥을 다니다 어느 부잣집 앞에 섰다. 그러자 부잣집 주인이 나와 누더기 행색을 하고 있는 탁발승에게 온갖 욕을 퍼부었다. 남의 음식이나 얻으러 돌아다니는 승려라고 한 참을 욕하고 부자는 고개를 들어 탁발승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탁발승은 배시시 하고 웃고 있었다. 부자는 기분이 나쁠 법한 욕을 들었음에도 웃고 있는 승려를 보고 물었다.
"지금 내가 더러운 욕지거리를 하는데, 기분이 나쁘지도 않소?!"
그러자 승려는 대답했다.
"그대가 내게 똥을 주었으나 내가 받지 않았으니, 그 똥은 누구의 손에 들려 있습니까?"
그 뒤로 그 부자는 승려를 스승으로 모셨다고 한다.
굳이 남을 깨우쳐 나의 제자로 두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주는 스트레스나 모멸감, 욕, 저주 이런 것들은 결국 내에게 와서 받느냐 마느냐로 결정된다. 남이 주기에 받는다는 일천한 마음가짐을 버리고, 누가 주더라도 받을 것만 받는 것이 좋지 않을까?
왼뺨을 맞거든 오른뺨을 대라는 말은 그냥 두대를 맞으라는 말이 아니다.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맞는 것과 내가 내어주니 상대가 때리는 것은 결국 주도권에 관한 이야기다. 겉옷을 벗어 달래도 속옷까지 벗어주라는 것도, 5리를 가달라고 부탁하면 10리를 가주라는 것도 모두 주도권을 내가 쥐는 행위이다.
요청에 응하는 것은 상대의 주도권에 내가 수동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다. 그 요구에 내가 더 큰 것을 줌으로써 그 주도권을 나에게로 갖고 오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