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청소부

플로리스트 이야기 1

by 블루라벤더

3월 어느 날.


지금 제 꽃 냉장고에 조팝이 있습니다. 유려하게 휘어지는 가지, 몽글몽글 하얗고 화사한 꽃, 자잘한 잎들이 반복해서 겹쳐지며 주는 볼륨감, 가격이 부담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만한 소재 없습니다.




손님들 중 상당수가 예쁜 꽃 보며 일해서 좋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네. 나름 작업환경은 괜찮지요. 눈과 손발의 간극이 극단적이라는 약점이 있지만요.




'미스터 선샤인'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파란 달빛 아래 바등쪼 세 남자가 가로로 토막 내줄까 세로로 갈라 줄까 같은 심히 살벌한 농담을 하면서 걸을 때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뭐 매화였을 수도 있고요. 흩날리는 것은 분명 꽃인데 화면 효과까지 더해져서 원래 색과 질감보다 더 아름답게 빛납니다. 반짝반짝.




이 아름다운 한 장면을 위해 누군가는 작은 꽃잎들을 밤새워 빈 가지에 붙였을 거고 누군가는 촬영 시간 내내 쪼그려 앉아 나무 밑동 잡아 꽃잎 떨어지게 흔들거나 거대 선풍기 돌려 흩날리게 했을 겁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컷 소리 다음에 부리나케 달려가서 한 잎 한 잎 손으로 줍든 청소기를 돌렸든 뒷정리를 했을 것이 확실하고요.




누가 이 귀찮고 하찮은 뒷정리를 했을까요. 분명 감독이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몇 년 전 딱 이맘때쯤에 제가 속한 꽃 회사에서 메가 쇼핑몰 프런트 데스크 장식을 담당했죠. 저도 몇 번 밤샘 작업에 참여를 해서 대형 꽃 장식물의 제작과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말로 하면 이렇게 배움이라는 거창한 단어가 쓰이지만 사실은 정직원들 일하기 더 쉽게 대기하고 준비하고 어레인지하고 보조하는 게 주 임무죠. 쉽게 말해 쓸고 닦고 물통 날랐다는 말입니다. 알바가 다 그렇죠 뭐.




해맑았던 알바생은 추가 임금 받아 좋았고 그다음 날 휴가 받아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진정한 꽃 관리의 임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모르고요.




꽃이 완성되고 한 달 동안 저는 더 바빴습니다. 쳇바퀴 돌듯이 가로로 꽤 긴 매장을 동동 뛰어다니며 관리하고 짬짬이 손님을 응대하는 평상 업무 위에 관수와 관리가 더해집니다. 2리터짜리 빈 생수통 3-4개에 물을 가득 채워 미니 카트에 싣고 보통은 허락되지 않는 손님 전용 출입구를 당당히 지나 걷고 또 걸어 제가 작업했던- 정확히는 보조를 했던- 대형 작품까지 오전 한 번 오후에 또 한 번 , 하루 두 번씩 갑니다.


통통하다 못해 우람한 옹기 재질의 화기에 1미터도 넘는 길이의 꽃나무들이 반구형을 이루며 빽빽이 꽂혀 있습니다. 새롭게 돌아온 봄을 상징하고 그 화사함과 설렘을 표현하기에는 최상. 하지만 관리하는 담당자에게는 최악의 이름, 조팝 그리고 벚꽃이었습니다. 손님들은 그 꽃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간혹 이 이쁜 것들의 이름이 뭐냐며 앞치마를 두른, 땀이 아니라 불이 나는 두 발 쉬고 있던 지친 관리자에게 묻기도 하면서요.




늘 그 큰 꽃나무 주위에는 흩어져 있는 것들이 가득했고 큰 덩어리답게 6-7리터씩 주는 물을 꿀떡꿀떡 잘도 받아 마셨습니다. 그래서 매일 두 번씩 일을 해도 다음 할 일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휴일임에도 왕복 4시간 버스를 달려 물 한 번 주고 다시 돌아왔던 경험도 있고요.




그래서 제가 예쁘게 피었다가 찬란하게 흐드러진 것들을 그리 많이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필 때는 장미꽃처럼. 흩날릴 때는 벚꽃처럼. 질 땐 나팔꽃처럼 이라지만 저는 오로지 작약입니다. 지금이야 꽃잎 그 하찮은 것들이 떨어져도 쥔장이 작업 좀 했구나 하고 넘어갈 정도의 넓이가 되는 장소이지만 첫 번째 숍은 팔 뻗으면 맞은편 벽 닿을 넓이라 뭐든 티끌 하나라도 떨어지는 것들을 수용할 여유가 없었죠. 그냥 지저분해 보이고 말았으니까요.



지근지근 밟히는 잎들과 꽃가지는 청소도구보다는 장갑 낀 양손으로 싹 쓸어 쥐어 쓰레기통에 넣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300개 넘은 크고 작은 화분들은 커다란 들통에 물 가득 받아 조그만 조리로 물을 주는 게 맞는 방법이지만 냉장고 문 틈새, 드라이플라워 우수수 떨어지는 진열대 위, 조팝이 사정없이 떨어지는 프런트 데스크 위는 더 효율적인 방법이란 것이 없었습니다. 그냥 닦아내고 또 닦아냈지요.




단기 시간제 임금 노동자에서 1인 사업장의 사장이 된 지금에야 청소의 최종 병기 핸디형 미니 무선 청소기라는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덩치에 비해 소리는 크지만 해내는 일은 많습니다. 좁은 흡입구 덕분에 문틈, 화병과 화병 사이, 우수수 떨어지는 드라이플라워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되고 있습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세상 절절한 사랑고백을 철벽 같은 시크함으로 무뚝뚝하게 뱉어냈던 황 종사관처럼 이제는 말합니다.




"조팝. 예쁘다. 아주 예쁘다. "




TMI; 글을 쓰고 보니 군대 얘기만큼 고리타분한 '라테는'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 자주 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렇다고 아주 안 할 거라는 약속도 못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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