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파묻히다

플로리스트 이야기 2

by 블루라벤더

한두 달 동안 계속 찾았던 만년필을 드디어 발견했다. 샵 작업대 맨 밑 서랍 필통 안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승질내며 집을 뒤지고 또 뒤졌었다. 이젠 웬만한 집기는 집에 하나 가게에 하나씩 있다. 딱 하나씩 있는 것은 갈무리를 잘해야 한다. 잘못하면 찾고 또 찾고를 반복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동진 영화 평론가는 신중하게 고른 책이 이미 서재에 있는 줄 모르고 또 샀다는 걸 깨달았을 때 자신이 싫다 했다. 내 경우는 이것보다 더 심해서 샵 어딘가엔 있는 줄 알면서도 동일한 물품을 또 산다. 마트도 아닌데 필요한 게 뭐가 그리 많은 지..... 이 평론가의 서재-그의 왕국은 크고 넓기라도 하지. 어느 플로리스트는 꽃이라는 본질을 강조한 말이기도 했겠지만 꽃 냉장고와 가위만 있음 꽃집을 열 수 있다고 했다. 개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얘기다.



나는 플로리스트들 중에서도 포장지나 속지, 리본에 아주 인색한 편이다. 까뜨린 밀러가 원래 인공적인 부재료를 최대로 억제하는 플로리스트이기도 하고 어차피 꽃이 그 자체로 화려하니 포장은 심플하게 가도 되지 않나 하는 게 평소 생각이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양면 크래프트 120그램과 굵은 마 끈 하나로 1년 동안 모든 꽃다발과 출산 선물과 졸업시즌을 보낸 알바생은 무한대의 선택이 주어진 내 숍을 열었어도 케바케 스타일이 아니라 멀티 플레이어 포장 엔트리를 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리본이 한 50가지가 되고 포장지 종류도 그쯤 된다. 그리고 야금야금 물품은 늘어만 간다.


가위만 해도 이것저것 해서 10가지가 넘고 리본을 제외한 고정시키는 끈과 철사 종류도 많다. 하다못해 테이프도 박스테이프와 폼 고정 테이프, 투명한 것. 검은 것과 플로랄 테이프 그리고 장식용이 필요하다. 박스만 해도 그냥 수납용 박스가 있고 매장 안팎을 장식하는 나무박스도 있고 급할 때는 요긴한 종이 박스도 쟁여 두어야 한다. 거기에 바구니에, 크기 다른 쇼핑백에, 비닐 백에 무겁고 가벼운 화병들, 서로 다른 분위기의 용돈 박스 그리고 이번 어버이날엔 한 송이 포장 용기와 작은 박스들을 또 구비했다.


그리고 철 지난 너무 반짝이는 장식이 붙은 리스들. 만들어 놓은 지 오래된 드라이플라워 다발들. 드라이가 되고 있는 것들, 제작을 기다리고 있는 것들, 예전에 정리해야 하지만 이젠 미련 덩어리가 된 더 오래된 것들, 잘 될 거라 믿고 매입한 여려 용기들. 포장지들....


그리고 본격적으로 화분들을 들여오자 여유 있던 샵 초기의 모습은 사라졌다. 흙 포대. 돌 포대. 색색의 장식 스톤. 플랜트 기구. 새 화분. 빈 화분. 구석에 처박혀 있는 심어져 있던 식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오래된 화분.... 미니멀리즘은 너무 멀리 있다.



그래도 그건 없어요. 죄송하지만. 이 말을 자주 해야 한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정리와 수납에 특화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래서 해도 해도 일했다는 표시도 나지 않고 쓸고 닦아도 돌아서면 또 해야 하지만 오늘도 또 생각난 물건을 찾고 정리를 한다. 나름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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