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곰과 작은 새] 리뷰
죽음을 다룬 그림책은 많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책장을 넘기시다 보면 곰이 집에 틀어박히게 된 계기는 새의 죽음이 아닌, 그의 상실을 대하는 주변의 태도라는 점이 보이실 겁니다. 네, '곰과 작은 새'는 상실을 마주하는 법에 대한 우화입니다. 작가가 어떠한 이야기를 전해주는지 함께 들어보시겠어요?
이 작품은 아름다운 동시에 애잔합니다. 모노톤의 러프한 질감으로 채워진 삽화는 상실을 마주하는 세 가지 태도-곰, 숲의 동물들, 들고양이-를 감싸며 시종일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덤덤히 이야기를 전합니다. 다행히 그 거리감 덕분에 독자들은 작은 새의 죽음 앞에 고요하게 마음이 죽어가는 곰의 뒷모습과 동굴 속을 헤매는 것 같은 어두운 톤의 삽화를 삼키다 체하는 어려움을 간신히 비껴갑니다. 서술자의 화법과 그림체의 질감이 성글지 않았다면, 저는 이 그림책을 '아름답다'라고 표현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만큼 곰이 느끼는 상실의 부피란 너무나 거대해, 저는 작가가 선택한 표현방식의 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덕분에 안도하며 서사를 뒤쫓을 수 있었답니다.
책의 시작부터 독자들은 곰의 슬픔과 맞닥뜨립니다. 작은 새의 죽음을 알리며 이야기가 시작되니까요. 곰은 작은 새를 직접 만든 나무 상자 안에 고운 꽃잎과 함께 누이고, 어디를 가든지 함께 다녔지요. 상자가 궁금한 숲 속 동물들이 묻자 곰은 상자를 열고, 그때마다 잠시 어쩔 줄 몰라하던 동물들의 반응은 같습니다.
곰아, 이제 작은 새는 돌아오지 않아.
마음이 아프겠지만 잊어야지.
나무 상자 안의 새를 보고 한결같이 어쩔 줄 몰라 한 숲 속 동물들의 반응은 '죽음'을 마주하는 생명체의 본능적 반응입니다. 생면부지 타인의 부고조차 생명의 유한함, 자신의 예정된 소멸을 환기시키는 경고가 되어 웅크리고 있는 우리의 파충류 뇌를 흔들어 깨웁니다.' 생존을 최상 가치로 여기는 인간의 파충류 뇌의 알람에 포유류 뇌는 불안함과 불쾌감의 정서반응을 일으키지요. 부정적인 정서로 인해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상황을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픈 충동을 느낍니다. 그렇게 하기 위한 신호인 것이지요, 부정적인 정서와 불쾌감이란. 물론 뒤늦게 어떻게든 인사치레를 해야 한다는 인간의 이성적 뇌의 권유에 따라 위로를 건네보지만, 사실 곰에게 한 숲 친구들의 답변 같은 내용은 위로 아닌 위로입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마음 아프겠지만 잊어"와 같은 인사말입니다. 안쓰러움과 딱함의 감정이 거짓은 아닐 것이지만, 충분한 공감 이전에 내지르고야 마는 저와 같은 흔한 위로 저변에는, 불안의 원흉을 무의식 저편으로 가능한 한 빨리 밀어두고픈 욕구가 있습니다.
곰은 튕겨내진 작은 새의 죽음과 함께 그의 집에 틀어박힙니다. 그렇게 방에 문을 잠그고 들어앉아 꾸벅꾸벅 졸며 그저 상자와 함께 있습니다. 마치 겨울잠을 자듯이. 동면으로 겨울나기처럼 오롯이 상실의 슬픔에 집중하여 머무르던 곰이 문득 일어나 창을 열었을 때는, 충분히 분노하고, 충분히 절망할 만큼 시간이 흘렀을 터입니다. 그제야 숲과 강, 하늘이 제대로 보여 발걸음 닫는 데로 걷다가 강둑에서 곰은 들고양이와 마주칩니다. 오랜 시간 여행에 동행했을 그의 너덜너덜한 배낭과 바이올린 케이스도 곁에 있었죠. 곰이 작은 새를 보내줄 준비가 이미 되었음은, 먼저 다가간 쪽이 들고양이가 아닌 곰이란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곰은 들고양이에게 바이올린 케이스 안을 보여달라고 청하고 들고양이는 곰의 나무 상자 안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이미 수없이 상실의 슬픔을 숲 속 동물들로부터 부정당한 곰이기에 망설였을 것입니다. 곰이 망설이다 연 상자 안에서 들고양이는 하나의 죽음을 마주합니다. 그러나 숲 친구들과 달리 들고양이는 바로 고개를 들거나 섣불리 정리의 말을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그저 작은 새였던 죽음을 시선으로 물끄러미 마주해주었고, 곰이 겪은 사건과 아픔을 꺼내어 언어로 펼쳐 줍니다.
넌 이 작은 새랑 정말 친했구나.
작은 새가 죽어서 몹시 외로웠지?
들고양이가 건넨 짧은 두 마디는,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값집니다. 들고양이의 작은 새를 위한 바이올린 연주는 곰에게 작은 새를 추억하고 지나간 시간들에 충분히 고마워할 틈을 마련해 주었지요. '정말로' 이제는 작별입니다. 작은 새의 존재 의미와, 상실로 인한 곰의 고독을 읽어 준 공감의 말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 한 곡만큼의 다정한 침묵이, 곰에게 새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살짝 밀어주었습니다. 이미 곰은 준비되어 있었을 터이지만요. 그래서 누군가 오랜 기간 사용한 흔적이 있는 탬버린을 내밀며 함께 가자는 들고양이에게 섣불리 이전 주인에 대해 묻지 않고, 연습하겠다며 따라나섰을 겁니다.
아마도 들고양이 역시 상실의 아픔을 겪었을 수도 있습니다. 들고양이에게도, 애도의 마지막 단계를 마무리 지을 계기가 필요했을지 모릅니다. 곰이 방에 틀어박혀 동면했듯이, 들고양이는 홀로 주인 잃은 탬버린과 함께 들판을 헤매고 다녔겠지요. 곰이 작은 새를 추억하며 바이올린 연주를 들을 때, 연주 중인 들고양이 역시 탬버린 주인과의 추억에 작별을 고했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탬버린을 곰에게 과연 줄 수 있었을까요. 결국 그림책 '곰과 작은 새'에서 상실을 제대로 마주한 것은 곰과 들고양이입니다. 곰과 들고양이는 마주 대함의 시험을 온전히 마친 후 숲을 뒤로하고 음악과 함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상실을 마주 대할 용기가 없어 서둘러 접었던 숲 속 동물 친구들은, 여전히 숲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의식 저편 너머로 '맞닥뜨림'의 순간을 유예한 채 말이지요. 어쩌면 상실을 대하는 방법은, 충분히 머물러 마주하는 것, 그것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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