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의 이해 ①
정말로 너무 늦은 때는 결코 없어요.
치료는 가능합니다.
열쇠는 치유 과정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아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의 발달상의
필요에 맞춰 주는 것입니다.
브루스 D. 페리, 오프라 윈프리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부키, 2022, 398p.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 110년 만의 폭우... 근래 세계와 대한민국이 겪은 사건 사고들입니다. 모두 인간이 어찌할 바 없는 재난재해들이었지요. 이처럼 인간의 능력으로 통제 불가능한 재앙을 경험하게 되면 인간은 극심한 정신적 외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트라우마'와 'PTSD'라는 용어가 여러 곳에서 사용되는 요즘, 트라우마에 대해 보다 정확하고 도움 되는 정보를 전달한 후, 관련 서적 한 권을 훑어보고자 합니다.
Trauma &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트라우마는 병명이 아니라 죽음과 심각한 부상을 야기하는 생명에 대한 위협적인 사건을 뜻합니다. 이는 상처를 뜻하는 그리스어 '트라우마트 traumat'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신체적 폭행, 성폭행, 납치, 화재, 자연재해, 전쟁, 테러, 사고와 같은 것들이 트라우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트라우마 경험과 목격은 심각하고 광범위한 후유증을 일으키는데 이가 우리가 알고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즉 PTSD입니다. 결국 트라우마가 원인이고, PTSD는 이에 따른 반응, 질병이므로 엄밀히 말해 둘은 뜻이 같지 않습니다.
PTSD의 주된 증상은 재경험입니다. 주로 트라우마 사건과 연결되는 단서나 자극이 주어질 때, 원치 않고 의도치 않는데도 과거의 충격적 사건이 마치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강하게 쏟아지고 환자는 기억에 압도됩니다. 이를 플래시백 Flashback 이라고도 하며, 플래시 백 중에는 당시의 겪던 감각과 충격은 그대로 느껴지는 반면 현실감각은 사라지지요. 이는 부정적 기억이 되살아나는 이상의 문제로, 플래시백 중인 사람의 상태는 심리적 외상을 입던 시공간에 다시금 서 있는 것과 다름이 없어요. 때문에 트라우마 당시 겪은 신체 반응, 심리정서적 충격도 재현되는데 이가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되면 눈 뜨고 악몽 속에 사는 것이나 다름없겠지요. 전쟁 트라우마를 겪은 환자들은 플래시백 상태일 때 현실과 이를 구분하지 못하여 주변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재경험 증상은 평소 과거를 회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고통을 야기합니다.
플래시 백이 두려워 PTSD 환자는 자극이 되는 단서나 상황을 꺼리게 됩니다. 때문에 특정 상황이나 소리, 장소 등을 회피하거나 특정 부류의 사람이나 물건에 공포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일중독에 빠지거나 알코올이나 약물 등의 물질 남용에 빠지기도 해요. 안타깝게도 원하는 바와 달리, 단서가 되는 자극들은 피하려고 애써도 완벽히 차단되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모든 주변 환경과 우발적인 소음들, 사건까지 통제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 결국 플래시 백 상태가 언제 찾아올지 예측하기도 어렵습니다. 때문에 PTSD인 사람은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 되거나, 과민하고 초조한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PTSD 환자에게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아래와 같은 증상들이 몇 달간 지속되고 일상생활이 유지되기 어렵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PTSD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어디로 찾아가야 할까요? 치료는 정신건강의학과 병원, 국가기관, 사설 치료센터를 통해 가능합니다. 다만 사설 상담 센터를 방문하시려는 분은 상담 전문가 자격과 경력 외에도 보셔야 할 것이 있어요. 상담사로서의 경력 외에, 추가로 트라우마 치료 교육 및 훈련을 받으신 분을 찾으시라 권유합니다. 기관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시거나 직접 전화로 문의하실 수도 있겠지요. 트라우마 치료는 환자의 몸과 마음이 안전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고, 트라우마 기억을 재구성하고,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통합하는 단계 별 목표 아래 진행됩니다. 또한 신체 반응을 진정시킬 수 있도록 신체 감각 기반의 치료가 필요하고요. 그러기 위해 정신건강 분야의 종사자라 해도 치료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인지 행동 기반, 뇌신경학적 접근, PE나 EMDR 치료법 등 훈련받을 내용이 무궁무진하니, 이왕이면 준비가 잘 되신 전문가를 찾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동네 근처의 수많은 유료 사설 상담 센터의 경우는 우울이나 불안, 갈등과 진로 등 보다 광범위하고 덜 임상적인(병리적인) 증상에 특화된 경우가 더 많습니다. 사설 센터라고 해도 센터 별로 특화된 영역이 있기도 하고요. 그러니 치료기관 선택 시에 사전 조사하셔서 내게 잘 맞는 곳 찾는 수고로움이 필요하단 사실, 참고하시면 좋겠어요.
한국 트라우마 스트레스학회 KSTSS에서 보건복지부 연구개발사업 일환으로 맡아 운영하고 있는 재난 정신건강 정보 센터 페이지에 접속하시면, 트라우마 관련된 여러 정보가 이해하기 쉽도록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재난정신건강정보센터 자체가 국민들에게 연관 정보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어요.
트라우마 치료 관련 국가운영 기관으로는 스마일센터(범죄피해 트라우마 통합지원 기관), 직업트라우마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 등이 있습니다. 네이버 지도에 '트라우마' 검색어를 치기만 하셔도 권역별 센터를 확인하실 수 있어요. 사설 센터라고 해도 센터명에 '트라우마'단어를 넣어 전문성을 강조한 곳들도 함께 검색되는 건 덤입니다.
국가기관 아닌 사설이지만 몇 군데 소개해요. 아래의 기관들과 제가 직접적인 관계가 전혀 없고, 직접 방문하여 해당 전문가분께 치료받은 것도 아닙니다.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지식 및 경험과 검색 결과를 바탕으로 추렸어요. 제가 경기권에 살고 있어 서울 경기권 정보가 대부분이라 죄송합니다. 그 외 권역 기관은 제가 소개할 만큼 아는 바가 없어 그렇습니다. 아래 소개한 곳들도 다만 이런 곳이 있다는 정도만 정리한 것이니, 정리된 내용을 참고만 하여 주시고, 문의 전화 등 충분히 기관과 접촉하며 비용, 절차, 분위기를 살펴보신 후 선택하시길 권합니다.
마음사랑인지행동치료센터 인지행동치료를 기반으로 합니다. 국내 인지행동치료 분야를 이끌어 오신 대표 학자들이 계신 곳이고, 1993년 5월 창립되었습니다. 트라우마 치료에 인지행동치료 기반의 접근법은 오래전부터 행해져 왔습니다.
서울 EMDR 트라우마 센터 국내에서 안구 운동 민감 소실 및 재처리 요법 EMDR(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으로 트라우마 치료받으실 수 있는 곳입니다. 국내 트라우마 치료와 EMDR 영역에서 오래전부터 활동하신 정신과 전문의 김준기 선생님이 센터장입니다. EMDR에 대한 정리는 트라우마 치료기법을 모아 따로 포스팅할 때 정리할게요.
트라우마 치유센터 사회적 협동조합 사람마음 비영리 공인 법인입니다. 트라우마 생존자를 위한 심리서비스와 인권 옹호 활동을 위주로 합니다. 올해 개소 10주년을 맞이했어요. 단 22년 8월 현재 포화상태로 더 이상 상담 신청을 받을 수 없는 중이라고 공지가 뜹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지금 시점에서 상담 진행 가능한지는, 사무국에 통화해보시기를.
링크심리상담센터 한국 트라우마 연구 교육원 부속 센터입니다. 한국 트라우마 연구 교육원이 행동과학 기반으로 인접 학문들을 융합 연구하는 것을 방향으로 잡고 있고, 트라우마 전문 연구 기관인 만큼 인지행동치료를 비롯 트라우마에 효과가 입증된 기법의 치료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모든 것에 앞서, 뇌신경 체제의 이해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해요. 뇌의 작동 체계를 아는 것은 트라우마와 PTSD 이해를 위해 꼭 필요해요. 뇌는 반드시 순차적으로 발달합니다. 이러한 뇌의 신경 발달 체계에 대한 이해는 트라우마 치료에 있어서도 선행돼야 할 주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트라우마 치료법이 효과가 있기 위해서는 적시에, 적합한 치료기법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신경 순차적 접근법이 뇌신경 발달의 특성을 근거로 하기 때문입니다. 뇌의 아래쪽 시스템으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치료의 '순서'가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지요. 신체 기반의 치료기법의 근거 또한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미국의 트라우마 전문가 브루스 D. 페리 Bruce D. Perry 박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뇌신경학적 접근은, 여기에 정신질환이라는 꼬리표를 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환자에게 "당신이 구제불능이고 멍청하거나 나쁜 사람인 것이 아니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은, 당신이 겪은 끔찍한 사건이 뇌에 영향을 미쳐 예측되는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라고요. 이러한 접근은 트라우마 피해자와 PTSD 환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당신이 겪은 끔찍한 일에 당신의 뇌가 반응한 것이다. 당신의 현재 증상은 뇌의 작동 체계상 예견된 내용이기에 고칠 수도 있다."
희망적인 메시지네요.
위와 같은 주장을 한 페리 박사는 다윗파 진입 사건, 컬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 9.11 테러, 카트리나 허리케인과 아이티 지진 등으로 인한 트라우마 피해자들을 위해 미 정부에 정책 조언을 해왔으며 현재 FBI의 컨설턴트이기도 합니다. 그는 30여 년간 아동 정신 건강과 신경 과학 분야에서 트라우마 전문가로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는 최근 오프라 윈프리 Oprah Gaile Winfrey와 함께 트라우마 관련 서적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를 집필하였는데, 내용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음 포스팅에는 아래의 책을 함께 살펴보며 트라우마 작동 원리와 치료법에 대해 더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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