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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풍경 Aug 23. 2022

칼 로저스의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

아네테 멜레세 그림책, [키오스크] 북 리뷰

    칼 로저스 Carl Roacom Rogers는 사람중심상담(인간중심상담) Person-centered counseling 창시자입니다. 그가 주창한 사람중심상담은 '사람'의 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근간으로 합니다. 그는 내담자들에게 문제를 해결할 자원과 힘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어요.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기실현에 이른 사람을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 Fully functioning person'으로 정의했지요. 칼 로저스의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의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에 저는 적잖이 놀랐고 안심이 되었으며, 이 학자에게 고마움을 느꼈어요. 당시는 상담을 전공하기 훨씬 전이었고, 우연히 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읽게 된 책에서 알게 된 개념이었습니다. 로저스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건 더욱 후의 일이었지요.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은 완성형이 아니라 경험에 대한 개방성, 실존적인 삶에 가치 두기, 자신을 신뢰함, 자유로운 경험을 함, 창의성의 특성을 갖추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자신을 발견해 알고, 스스로를 다른 모습으로 꾸미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인정하며 상황과 경험에 대하여 열린 태도로 변화해 가는 사람이지요. 얼마 전, 그림 동화책 [키오스크]를 읽으며 주인공 올가의 변하는 모습을 통해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 개념이 떠올랐답니다. 올가의 변화가 마치 로저스가 말한 자기실현의 과정처럼 느껴졌거든요.



[키오스크]는 단편 애니로 먼저 제작되고 발표된 작품입니다. 검색창에 The Kiosk 치시면 애니메이션이 뜨기 때문에 보길 원하시면 감상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네이버에서 검색하셔도 애니 올려주신 블로거분들 계셔서 보실 수 있을 거고요.




키오스크의 의미


[키오스크] 표지


주인공 올가는 키오스크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키오스크는 올가의 일터이자, 집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일상은 항상 같습니다. 단골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올가는 훤히 알고 있어서 그들이 지나갈 때쯤 물건을 척척 내놓습니다. 그녀는 유능한 판매원이지만, 자신의 삶에 온전히 만족하지는 못합니다. 그렇게 올가는 낮에는 잡지와 생수 과자 등 그녀에게로 깃든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제공하고, 저녁이 되면 셔터를 내린 후 노을이 보이는 바닷가를 꿈꾸며 잠이 듭니다. 올가의 로망은 노을 지는 해변이에요. 그래서 가판대의 안쪽 벽면에는 올가가 잡지에서 오려낸 해변 사진이 여러 장 붙어 있지요. 





     그림책에서 키오스크가 의미하는 것은 사람들이 일상을 유지하고 기능하게 하는 사회적 역할이자, 자원 요소들인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그녀의 세상이요. 때문에 올가는 키오스크 밖으로 출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키오스크를 옷처럼 두르고 세상을 향해 난 창을 아침저녁으로 여닫습니다. 개폐 장치와 같은 역할을 키오스크 창구의 블라인드가 해줍니다. 


그녀는 늘 그 자리에 있고 변하지 않습니다. 올가는 역동적인 선택의 주체가 아니며, 키오스크와 일체가 된 거리의 일부입니다. 배경일뿐이기에 행인들은 니즈가 있을 때 올가 앞에 서지만, 올가라는 인격과 관계를 맺지는 않아요. 단지 취할 것을 취하고 떠나죠. 결국 생물체인 올가는 무생물체인 가판대와 다름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수많은 단골이 있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저마다 다릅니다. 올가는 주문이 들어오기도 전에 각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가판대 내부 물품에서 골라내어 내밀지요. 그런 점을 보면 그녀는 유능한 판매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뿐이에요. 그녀만의 가치와 의미, 이를 베푸는 것이 아니기에 올가의 가판대는 잡다한 것들을 파는 매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올가에게는 욕구가 있어요. 노을이 지는 해변이 그것이지요. 그러나 망상에 가까운 꿈에 지나지 않을 뿐, 올가는 스스로의 욕구에 솔직하지도 욕구와 자기에 일치되는 선택과 경험을 해보지도 못했죠. 그러니 올가의 욕구불만은 그녀가 그녀 답지 못하기에 당연한 것이었을 겁니다.


올가의 욕구는 노을이 지는 광경을 볼 수 있는 바닷가였다




뒤집힌 세상



    어느 날 아침, 그런 그녀의 세상이 "뒤집힙니다". 단어 그대로 올가와 올가가 입고 있는 키오스크가 우연한 계기로 옆으로 넘어지는 거지요. 그리고 이 순간부터 작품에 동화적 상상력이 발휘되기 시작합니다. 올가는 키오스크를 입은 채로 들어 올려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됩니다. 올가에게 이 사실은 도전이자 모험이었죠. 



 키오스크가 움직일 수 있잖아? 
이래도 되는 거였네!




그녀는 키오스크를 입은 채로 도심을 가로질러요. 산책을 시작하는 거지요. 행인들은 놀랍니다.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마주치는 행인 중에는 평소에 키오스크로 찾아오던 단골도 있습니다. "무생물이 두 발로 걸어 다니다니!"와 같은 감상을 느끼는 것 같은 인물들의 표정이 재미있어요. 사람들이 비단 동화 속 일이라서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때가 있습니다. 늘 변함없고 자기주장과 색깔이 확실치 않은 한 사람이 제 목소리를 내거나 움직이기 시작할 때, 초반에는 주변의 저항이 크기 마련입니다. 



      그녀의 산책은 더 큰 모험으로 확장됩니다. 다리 위에서 그만 강 아래로 추락하거든요. 키오스크 채로 그녀는 강물의 흐름에 떠밀려 바다까지 나아가요. 흥미로운 것은 그 모든 과정에서 올가는 절망하거나 겁을 먹거나 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그녀는 키오스크를 들어 올려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 시점부터, 모든 상황에 개방적입니다. 또한 키오스크가 있던 자리에 매대를 들어 올리자 우수수 떨어진 잔재들, 팔아야 했던 남겨진 물건들 따위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이래도 되는 거잖아?" 깨닫게 된 이후로 그녀는 '그렇게 합니다'. 이는 올가의 주체적인 경험의 선택이고 이 과정에서의 모든 맞닥뜨림에 그녀는 열린 마음가짐을 품지요.


발길 가는 데로 자유롭게 행하기,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네, 그래도 됩니다


     그림책의 양면으로 펼쳐지는 강줄기를 따라 흘러가는 올가의 분위기는 유쾌하고, 표정은 밝습니다. 떠오르시나요? '경험에 대한 개방성, 실존적인 삶에 가치 두기, 자신을 신뢰함, 자유로운 경험을 함, 창의성의 특성을 갖추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람'. 올가는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변화의 계기에 열린 마음으로 대했으며, 자신의 선택을 의심하거나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발길 닫는 데로 자유롭게 걸어 나갔지요. 산책길이 강줄기를 따라 바다로 내달리는 모험으로 변했을 때에도 오히려 긴장을 풀고 더 나아가기로 했어요. 그 결과가 무엇이었을까요?


    작품의 마지막은 빙그레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컷들로 가득합니다. 해류는 그녀를 노을이 보이는 바닷가로 밀어다 주었거든요. 이제 그녀는 해변가에서 아이스크림을 팝니다. 이전의 키오스크는 오는 이들이 요구하는 잡다한 것들을 내어주는 곳이었지만, 강과 바다를 가로질러 도착한 이곳에서 올가는 '아이스크림'을 팔기로 하고, 아이스크림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를 원하는 사람들이 올가에게로 옵니다. 오는 이마다 저들이 달라는 데로 내어주는 것과, 내게 있는 것에 대해 알고 찾아온 이에게 약간을 나누는 것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올가의 키오스크 창밖으로 저녁마다 붉은 노을이 지고, 그녀는 블라인드를 아직 내리지 않고 은은히 변해가는 하늘빛을 미소 띤 채 바라봅니다. 그녀의 것인 아이스크림을 목으로 넘기면서요. 올가는 꿈을 이뤘네요.


올가는 그녀의 키오스크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삶을 이룬다.



    그녀의 변화의 시작은 키오스크를 두른 채로도 움직일 수 있음을 인지하고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작가가 키오스크를 버리고 올가만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봐요.


키오스크가 상징하는 것이 나의 자아와 영혼 자체는 아닐지언정, 사회 속에 자리하고 어느 정도 기능하며 살기 위해 둘러야 할 기능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키오스크를 벗어나지 않고도 올가가 꿈을 실현했 듯이, 타인의 니즈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아닌 내 욕구와 선택에 의해 결정된 역할과 기능일 때 우리는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이 되어 자기실현도, 사회생활도 잘 일궈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제, 여러분에게도 이렇게 말해봅니다.


네, 그래도 됩니다



칼 로저스의의 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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