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리가!' 북리뷰
미운 일곱 살, 미운 두 살. 괜히 있는 말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12~36개월 무렵 1차 반항기를, 5세~7세 경에 2차 반항기를 맞이합니다. 엄마들은 내 아이가 왜 이러는지 못내 당황하게 되지요.
이 시기 아이와 함께 읽기 좋은 그림책 한 권 소개해요. 아이들이 무척이나 통쾌 상쾌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그림체가 마치 아이가 낙서한 듯 친근해서 더욱 편히 볼 수 있어요. 웅진 마술피리 그림책 시리즈 린 조넬 글, 케트라 마터스 그림의 [엄마, 저리 가]입니다.
사춘기 이전에도 아이들은 반항을 통해 자립을 시험합니다. 엄마 바라기인 줄 알던 자녀가 "엄마, 저리 가!"라고 소리를 지르면 그렇지 않아도 양육에 지친 엄마는 놀라고, 괘씸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이 되어보면 엄마는 저리 가라는 외침은 자립을 시도해 보려는 아이의 기합이자 '나'를 독립된 한 존재로서 인식하며 내뱉는 탄성이기도 합니다. '내가 자라나려고 자아의 몸집을 늘리는 중이니 알고 있으시라!'는.
자녀가 무난히 사회에 순응하여 순탄한 삶을 살기 바라기에 부모는 끊임없이 개입하고, 훈육합니다. 하지만 일곱 살 정도의 아동은 보육 시설 등 집단생활을 통해 또래 관계를 경험하며 나름의 힘을 행사하려는 욕구가 발현되기에 당연한 지시에도 왕왕 발끈합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또한 그렇고요. 첫 장부터 "엄마가 말했어요."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데요, 그 내용이 여느 부모라도 할 만한 것들입니다. 장난감을 치우고, tv는 그만 보고, 목욕할 시간이라는 등의. 하지만 아이라서 멋대로 할 수 없고, 제한도 해야 하는 것도 많은 크리스토퍼는 억울합니다. 그치지 않는 엄마의 목소리에 크리스토퍼는 점점 화가 치밀어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지요. 그래서 소리칩니다.
엄마, 저리 가
양육자가 내 입장이 된다면 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텐데. 반항심으로 표출되는 울분 밑에는 인정과 이해를 향한 염원이 깔려있습니다. 그 열망을 가득 담아 "엄마야, 작아져라!"라는 단순한 주문을 외치자 엄마가 마침내 작은 사람이 됩니다. 크리스토퍼는 엄마를 장난감 배에 태워 욕조 안으로 띄워 보냅니다. 사랑스러운 것은 크리스토퍼가 엄마를 비교적 안전하면서도 일상의 평이함으로부터 동떨어진 공간, 욕실 그것도 욕조 안으로 보냈다는 점입니다. 아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보내 단절을 꾀하지도, 파괴적인 상황으로 몰아넣지도 않지요. 더군다나 욕조 안에는 물이 가득 차 있습니다.
엄마야, 작아져라! 얍!
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우리는 깨끗해지고,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각종 서사에서 물은 재생과 부활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물이 지닌 그런 상징성과 힘이, 이 작품에서도 역할 바꾸기라는 마법을 가능케 하는 장치가 됩니다. 이 마법은 울분을 식히고 관계를 재조정하는 긍정의 마법이지요. 장난감 배에 탄 채 욕조 안의 바다로 잠기자마자, 순식간에 힘의 천칭은 반대 방향으로 기웁니다. 태세가 역전되어 엄마에게 목욕물은 파도가 센 바다와 같은 위협이 되고, 크리스토퍼는 큰 사람이 되어 평소 듣던 잔소리를 엄마에게 돌려줍니다. '재미있게 놀고, 얌전히 굴고, 이 닦는 것 잊지 말고, 다른 엄마들과 싸우지도 말라'라는 다그침. 크리스토퍼의 후련해 보이는 표정만큼이나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도 상황에 통쾌함을 느낍니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랄까요.
주인공이 작아진 엄마에게 다름 아닌 평상시 그가 듣던 훈계를 던지는 모습은 의미심장합니다. 일단 뻗대어 보지만 실은 아이들도 부모님이 옳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을 반영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반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거절과 부정의 표현을 통해 존재 간의 경계가 명확해지기 때문이 아닐지요. 다시 말해 자신을 독립된 존재로서 인식하고, 능력의 한계와 영역을 어림잡아 보기 위한 방법이 그것이기에 말입니다. 더불어 부모님과의 힘겨루기 과정, 감정의 소모, 협상과 양보 그리고 수긍의 과정 역시 중요한 배움의 영역이기에, 반항은 쓸모 있습니다. 가정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아이는 건강한 방법으로 부딪히고 싸워봐야 해요. 요구를 피력하고 관철하며, 욕구가 좌절되는 경험과 좌절감을 조절하는 감정의 연습을 충분히 해야 하고, 부모는 그 연습의 대상이 되어줘야 합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나'도 할 수 있고, '나'도 생각이 나름 있는데 끊임없이 어른들은 터치합니다. 내 마음대로 해보고 싶겠지요. 한편으로는 속마음이 그렇다고 온전히 모든 면에서 자립할 수 있냐 하면 그렇지 못해 답답하고 속상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자아의 그릇이 커지기 위해 이럭저럭 반항과 응석의 양방향으로 시험을 반복하는 어린이들의 복잡한 속을 살짝 보여주는 재미있는 그림책이 [엄마, 저리 가]인 것 같습니다.
엄마는 시종일관 징징대지만, 크리스토퍼는 어느새 맘이 녹아내려 약하고 작은 엄마를 '내'가 돌봐주겠다며 욕조에서 꺼내 줍니다. 떼쓰지 말고 얌전히 말하라고 다독이기까지 하죠. 회복과 재정립의 시간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이루어져 엄마는 '작다는 건 너무 힘들어'라고 고백하지요.
작다는 건 너무 힘들어.
엄마가 말했어요.
난 옛날부터 알고 있었는데.
크리스토퍼가 말했지요.
네, 맞습니다. 아이들도 아이라서 작다는 것 때문에 힘들 때가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의, 식사 도중 딸아이가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라고 토로하자 와르르 가족들 웃음보가 터지고 아이는 그 반응에 역정을 냈던 사건이 떠오릅니다. 녀석 딴에는 진지한 고백에 비웃음이 돌아왔다고 느낀 것이겠죠. 반성해 봅니다. 어리기에 끊임없이 배우고 자라나야 하며 힘이 없어서... 네, 아이들도 나름 힘겹게 산답니다. 힘겨움에 잠시 간 험상궂어지고 심술을 부릴망정,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아직 엄마는 절대적이며 사랑하는 대상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다정한 아이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아이들의 관대함에 고맙습니다. 아이의 심술 바탕에는 엄마를 향한 애정이 깔려있으니, 낙담하지도 말고 분을 내지도 말고 지혜로운 엄마가 되어보자 다짐해 봅니다.
한창 어른들에게 불만이 샘솟는 와중의 내 아이,
속 시원한 그림책 [엄마 저리 가]를 함께 읽으며 얽혀있던 감정 풀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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