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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풍경 Jul 14. 2022

아름다운 여정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 대상 수상작, 창작동화 '긴긴밤'리뷰


 노든과 아기 펭귄의 바다는 같지 않았다. 

초록색 풀들이 흔들리는 지평선이 있는 곳, 그곳이 노든의 바다였으며 

푸른 지평선이 빛나는 곳은 아기 펭귄의 바다였다. 

이토록 완전히 다르면서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라니, 

기적이었다. 





이 세상을 이루고 살아가는 다양한 개성 만점의 존재들,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바다가 있습니다. 각자의 세계가 달라 충돌하고 미워하며 그러면서도 외로워 서로에게 비벼대며 상처입는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나로 존재할 방법일지 모릅니다.


'우리'이면서도 진정한 '나'로 서기 위한 숱한 날들의 기록, 아름다운 여정을 그린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긴긴밤]입니다.

루리/ 긴긴밤/ 문학동네/ 2021.02.03.



  노든은 흰 바위 코뿔소입니다. 독립하기 전까지는 코끼리 무리에 속했던 코끼리가 아닌 코끼리이자, 특별한 코뿔소이지요. 노든의 스토리 또한 특별합니다. 노든이 성장한 후에는 스스로 코끼리 무리를 떠나 가정을 이루지만 코뿔소 사냥꾼에 의해 아내와 딸을 잃고 말거든요. 다행히 노든만은 살아남아 동물원에서 바깥세상은 전혀 모르는 동물원 토박이 코뿔소 앙가부와 우정을 키우며 탈출을 꿈꿉니다. 그러나 앙가부마저 어느 날 사냥꾼에게 죽임을 당하고, 노든은 기어이 세상의 마지막 남은 흰바위코뿔소가 되고 맙니다. 게다가 코뿔소 사냥꾼으로부터 살해당할 위험을 사전에 제거한다는 명목 하에 동물원의 인간들은 노든의 뿔을 밑동만 남기고 잘라냅니다. 노든은 모든 인간들에게 복수할 날만을, 동물원을 탈출할 순간만을 꿈꾸게 됩니다.


  꿈만 같게도 인간 세상 전쟁의 여파로 동물원이 폭격당하는 사건이 생깁니다. 그로 인해 동물원은 초토화되고 와중에 우리가 망가져 노든은 탈출할 수 있게 되죠. 포격으로부터 살아남은 수컷 펭귄 치쿠와 함께요. 코뿔소이지만 뿔이 없는 노든처럼, 치쿠 역시 한구석이 모자란 녀석입니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거든요. 게다가 짐까지 있습니다. 아무도 품지 않는 버려진 알을 자청하여 품으며 치쿠는 노든에게 '우리가' 알을 부화시키고, 키워야 하니 바다로 가야 한다고 말하지요. 노든의 복수는 치쿠의 바다를 찾는 여정 이후로 미뤄집니다. 


  그러나 펭귄에 불과한 치쿠에게는 그 여행길은 가혹했습니다. 점차 지치고 쇠약해져 치쿠가 알을 품은 채로 결국 숨을 거둔 날 밤, 기적적으로 알에서 아기 펭귄이 부화합니다. 아기 펭귄을 치쿠 대신 바다까지 인도하기 위해 노든의 복수는 다시 한번 미뤄집니다. 그리고 그날,  '긴긴밤'으로 기억되는 어느 날. 코뿔소 사냥꾼의 트럭과 우연히 마주친 노든과 아기 펭귄에게 위기가 찾아오지요. 노든의 선택을 무엇일까요. 



아기 펭귄을 데리고 도망쳤을까요? 소원하던 대로 복수를 위해 트럭으로 달려들었을까요? 

함께 하며 살아남는 길을 택했을까요, 지리멸렬할 삶을 자폭하듯 끝내는 길을 택했을까요.





훌륭하게 이별하는 방법


  이 책의 제목 '긴긴밤'은 노든이 복수를 내려놓은 밤, 죽음보다 삶을 선택한 밤입니다. 노든이 아내와 딸을 잃은 날, 유일한 친구 앙가부를 잃은 날, 단짝 펭귄 윔보가 펭귄 치쿠로부터 떠난 날, 아기 펭귄이 노든과 헤어진 날을 뜻합니다. 별빛이 반짝이는 더러운 웅덩이처럼, 모순되나 아름다운 순간들과 견뎌내야 하는 외로운 날들을 뜻하기도 하지요. 무엇보다 너무나 다른 존재들이 '우리'라고 당연히 불릴 수밖에 없도록 만든 함께 한 수많은 날들을 의미하고요. 더럽지만 서글프게 빛나고 아름다운, 우리네 삶의 매일 말입니다.


  긴긴밤은 독자들에게 훌륭하게 이별하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자신만의 바다를 향해 떠난다고 과거로부터 단절돼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립이란 현재의 나를 바탕으로 존재의 완성을 향해 도약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노든은 코끼리로서의 삶과 인연을 거세하지 않아도 되었고, 아기 펭귄 역시 자신의 존재 절반을 지우지 않아도 되었지요. 그저 이제 훌륭한 반쪽이니 나머지 반쪽을 마저 채울 일만 남았음을, 희망을 이야기하며 시작할 수 있었어요. 노든이 아기 펭귄을 안심시키며 발걸음을 떼게 만든 위로는, 코끼리 무리가 노든의 등을 떠밀며 건네던 위로의 재현입니다. 그렇게 훌륭하게 이별하는 방법은 네게서 나에게로, 다시 나에게서 너에게로 전승됩니다. 



여기, 우리 앞에 훌륭한 한 마리의 코끼리가 있네. 
하지만 그는 코뿔소이기도 하지.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그래.

 -코끼리 무리가 노든에게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노든이 아기 펭귄에게




    눈이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코끼리에 살을 맞대고 걷고, 다리가 불편하면 다리가 튼튼한 코끼리에 기대어 살아가는 코끼리 무리의 방식은, 작품 속의 여러 동물들을 통하여 반복됩니다.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하는 만큼 남의 목숨도 소중히 여기는 코끼리의 지혜를 배워 자란 노든. 오른 눈이 보이지 않는 치쿠를 위해 늘 그의 오른쪽에 위치해 주었던 단짝 펭귄 윔보. 끝까지 알에게 온기를 나눠줌으로써 부화를 성공시킨 치쿠. 코뿔소의 뿔과 펭귄의 부리가 서로 비벼지며 반가이 재회의 인사를 나눌 날을 그리며 바다로 홀로 떠난 아기 펭귄까지. 이들 모두 제대로 함께 하고 사랑을 이어가는 법을 알아 사랑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들 중 어떤 동물도 같이 하기 위해 제 짝을 옭아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짝을 마지막 순간에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데, 온전함을 위해서는 또 다른 누군가와 만나야만 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더 넓은 세상으로 가. 
네가 떠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

-15p.




   이 작품은 언뜻 상반되는 것만 같은 자립과 공생의 방법이 어긋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그려냅니다. 노든이 온전한 코뿔소가 되기 위해서는 코끼리 무리에서 나와 코뿔소를 만나야만 했습니다. 혼자서는 코뿔소가 될 수 없었습니다. 노든이 코끼리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코끼리들이 있었기 때문이 듯, 그가 코뿔소 다워지기 위해 다른 코뿔소를 만나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기 펭귄 역시 온전히 자라나기 위해, 온전한 펭귄이 되기 위해 바다로 가야만 했지요. 바다에는 다른 펭귄이 있을 테니 말입니다. 아기 펭귄이 정작 노든의 영혼을 온전히 이해한 건, 그와 함께 있던 때가 아닌 비로소 바다 앞에 선 순간이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의 실마리를 움켜쥐고서야, 타인의 고통과 서글픔까지도 제대로 공감할 수 있게 된다는 이치를 보여주는 대목이지요. 파도가 치는 넓고 푸른 바다 앞에 서서 그제야, 아기 펭귄은 모든 것을 깨닫습니다. 





고통과 비극이 가득했으나 항상 누군가 함께였던 노든의 삶처럼, 아기 펭귄에게도 치쿠가, 노든이 함께 해왔습니다. 그리고 노든과 헤어졌지만 바다에서도 아기 펭귄은 지금까지 그랬듯, 누군가와 함께 할 것입니다. 아기 펭귄은 흰바위코뿔소 노든으로부터, 한 쪽 눈이 보이지 않는 펭귄 치쿠로부터, 평생 동물원을 벗어나지 못한 코뿔소 앙가부로부터, 노든의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코끼리 고아원의 코끼리들로부터 전달된 사랑의 표식을 둘러차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사랑의 흔적이 냄새로 표정으로 느낌으로 남아 이름조차 없는 아기 펭귄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줄 테지요.






다른 펭귄들도 노든처럼 나를 알아봐 줄까요?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 
아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너를 관찰하겠지. 
하지만 점점 너를 좋아하게 되어서 너를 눈여겨보게 되고, 
네가 가까이 있을 때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될 거고, 
네가 걸을 때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야. 
그게 바로 너야.

99p.






  한 생명체의 존재에 대한 물음, 그를 찾기 위한 떠남과 떠남의 발판이 되어 주는 '함께 함'의 가치에 대한 [긴긴밤]. 제2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성인이 읽어도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는 수작입니다. 존재에서 존재로 전달되는 사랑과 의지가 미숙한 한 존재를 넓은 세상으로 이끌기까지의 여정을 아름답게 빚어낸 이야기, 읽어보시면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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