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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풍경 Sep 13. 2022

안정화 기법, 그라운딩①-신체적 그라운딩

맥 바넷 그림책 '사랑 사랑 사랑' 북 리뷰


불빛이 환했어요.
밥 짓는 냄새가 났어요.
강아지가 위층 창문에서
나를 보고 반갑게 짖었어요.
맥 바넷, '사랑 사랑 사랑', 웅진주니어, 2021.







사랑이 뭘까?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 한 소년이 집을 떠나 세상으로 향합니다. 소년은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중 어부는 사랑을 물고기라고 했어요. 배우에게 사랑은 박수갈채였죠. 고양이에게 사랑은 밤이고요. 강아지에게 사랑은 고양이 뒤를 쫓는 것입니다. 목수에게 사랑은 집이었습니다.


그렇게 소년의 만남은 계속되고, 그들의 답은 매번 달랐습니다.


사랑은 씨앗, 사랑은 칼날, 사랑은 말... 아니 마부에게 사랑은 당나귀입니다. 또는 누군가에게 스포츠카. 또는 다른 이에게 도넛. 또는 도마뱀. 아니 반지. 아니 겨울의 첫눈. 그리고 여름의 단풍나무. 또 불곰. 또 조약돌. 시인의 목록. 또, 또, 또. 너무나 많은 이가 지구라는 행성에 발을 딛고 살아가기에 너무나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넘쳐났습니다. 소년은 그들과 달랐으므로 당연히 그들의 답이 소년의 것은 될 수 없었지요. 그런데도 이들은 소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넌 사랑을 몰라!"


그들에게 소년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애송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년이 답을 찾아 세상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책에는 나오지 않아요. 다만 사랑의 변두리, 주변인으로 걷고 또 걸으며 타인의 답지만 흘겨보다 소년은 청년이 되어 집으로 돌아올 뿐이었죠.


소년이 귀환하여 마주한 시각, 후각, 청각, 촉각의 내용이 바로 이 글을 여는 상단의 저 몇 줄입니다. 불빛이 환했고, 밥 짓는 냄새, 강아지의 반기는 짖는 소리! 그리고 시원하고 고슬거리고 향기로웠을 앞뜰의 흙. 떠났을 때 그대로 집은, 할머니의 품은 여전했고 이들이 보내는 메시지 역시 변치 않았습니다. 그 견고함이란! 마치 이렇게 속삭이는 듯합니다.


이대로 괜찮아
애썼어
잘하고 있어
지금 그게 너야
너로 충분해
내려라, 뿌리내리고 이제는 위로 솟아라. 스러지지 말아라.


청년은 단단히 파묻습니다. 뿌리처럼 발가락에 힘을 주어 구부리고 그를 지지해 주는 토양에, 그를 자라나게 모든 것을 빨아올리도록 퍼주고 퍼주고 또 퍼줄 그래 왔던 대지에 저 스스로를요.



나는 신발을 벗고
우리 집 앞뜰에 섰어요.
발가락을 구부려
흙에 단단히 파묻었어요.
나는 가만히 숨을 내쉬었어요.

            맥 바넷, '사랑 사랑 사랑', 웅진주니어, 2021.




트라우마 안정화 기법

그라운딩 Grounding


   그라운딩 기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트라우마 생존자, 외상후스트레스장애 PTSD환자나 물질중독장애 치료  안정화 기법으로 사용되지만, 감정의 동요나 불안을 느낄 때에도 유용합니다. 특히 침습적인 사고,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괴로울  도움이 됩니다. 영단어를 보면   있듯이, 그라운딩은 시행하는 자에게 마치 지면에 발을 단단히 딛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줍니다.


이를테면 PTSD 환자가 겪는 플래시백* 순간의 혼란은 순식간에 밀려들어와 마치 쓰나미처럼 우리를 고통의 밤바다로 휩쓸어 갑니다. 이는 현실감을 순식간에 잊을 정도의 고통이지요. 그라운딩은 이러한 혼란에 휩쓸려 가지 않도록 그를 붙들며 현실에 접촉할  있도록 돕습니다. 도움이 되지 않는 것에서 초점을 옮겨 지금-여기에 집중하게끔 하여 네가 두려워하는  위기가 사실은 지금 이곳에 닥치는  아님을, 안전감을 느끼도록 합니다.


그라운딩 기법은 정신적, 신체적, 진정형의 세 유형으로 그 방법을 분류할 수 있습니다. 모두에게 세 가지 유형이 다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차가 있어 누구는 세 가지 모두 유효할 수도 있고, 어떤 분에게는 그중 한 가지만 유효할 수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신체적 그라운딩만 효과가 있습니다. 신체적 그라운딩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신체적 그라운딩

-차갑거나 따뜻한 흐르는 물에 손을 담가 보세요.

-당신의 의자를 최대한 세게 잡아보세요.

-주변의 여러 물건을 만지며 느껴보세요.

-그라운딩 물질을 주머니에 지니고 다니세요.
(트라우마 촉발 시 바로 만질 작은 물건: 돌, 반지, 실, 천 조각 등)

-위아래로 점프해 보세요.

-당신의 발바닥, 당신의 몸의 무게, 중력 등을 통해 몸을 알아차려 보세요.
 
-스트레칭하세요.

-주먹을 꽉 쥐었다 풀어 보세요.

-천천히 걸으며 발걸음에 집중하세요.
 
-들숨, 날숨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세요.
(들숨 시 긍정 단어, 진정되는 단어를 읊는다)



-재난 정신건강 정보 센터 [안전기반 치료]


여기에는 모든 오감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 향을 맡거나, 음식이나 음료로 미각을 깨우며 집중하거나, 얼음을 입에 물고 있거나, 주변의 생활 소음에 집중해 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저의 경우는 흙 향기가 나고 새소리가 들리는 숲을 걷되 아주 집중해서 그렇게 해봅니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맨발로 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가벼운 불안이 밀려올 때면 집안에서 일거리를 찾아 설거지를 하거나, 애완견의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도움을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몸을 느끼고 신체 감각에 집중해 보는 것이에요. 몸이 전해주는 정보에는 힘이 있습니다. 청년 역시 따스한 불빛으로, 밥 냄새로, 강아지의 소리로, 차고 까슬한 흙의 감촉으로 안정감을 느낍니다. 나아가 할머니의 포옹을 통하여 궁극적인 답을 얻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하찮고 사소하며, 작디작아 별것 아닌 모든 것입니다.


사랑을 찾아 헤매며 만난 수많은 이들의 답이 각기 달랐던 것은 그러고 보니 당연합니다. 이들이 저마다 정의한 '사랑'이란, 그들이 평안하기 위한 그라운딩 물질과 다름 없습니다. 할머니의 사랑이 소년을 청년되게 하고 결국 사랑의 정의에 답을 주었듯 말이지요.


떠올려보세요. 당신이 현실을 딛고 버틸 수 있도록 붙드는 작고 사소한 선물은, 무엇입니까?

그것들을 느끼게 하고, 당신에게 얽어매 주는 당신의 감각기관은 무엇인가요?






싱크대에서 세수 후에 물기 머금고 뽀오야진 참외 몇 알, 베란다 건조대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흰 드레스 셔츠, 아이가 손가락으로 흙을 폭 폭 찔러 해바라기 씨앗 심어놓은 앙증맞은 토분, 홀짝이다 남겨놓은 커피 한 모금이 바닥에 낮게 깔린 머그잔. 그 위에 머무는 오전 11시 경의 볕과 익숙한 사물들이 마루 위에 그리는 그림자. 가릉 거리는 고양이의 골골 송, 간식 달라고 떼쓰는 강아지의 짖는 소리, 베란다 창 너머 바람에 휘청이는 화단의 오래된 단풍 나뭇가지...


둘러보세요. 당신 주변에 이것들은 늘 있어왔고, 항상 곁에 있을 것입니다.


*플래시백이란 의도치 않은 자극에 의해 PTSD 환자가 트라우마 상황을 재경험하는 것으로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 이상의 증상입니다. 기억에 압도되어 현재 트라우마 사건을 마주하는 듯한 신체적 반응과 정서적 고통을 느끼며 현실감이 사라지는 정도로 몰입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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