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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노 Jul 06. 2024

사찰에서는정숙해야한다지만,제직장생활은우당탕탕인걸요

1화 마음의 안정은 고정적인 수입으로부터

 당신의 마음의 안정은 어디에 있는가. 무엇에 적을 두어야 마음에 안정이 오는가.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며, 그것이 굳이 하나뿐이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안정적인 수입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속세에 찌들어 보인다 한들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사실이니까.







  A라는 직장에 근무하며, 인생 최고의 스트레스에 직면한 때였다. 근무와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사람,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피해도 보고, 부딪혀도 보고, 도움도 요청해 봤지만, 나를 유독 괴롭히던 직원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허허실실 하던 내가 인생 첫 화병에 걸렸다. 입맛도 없고, 불면증에 시달렸으며, 직장과 그 직원의 언행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럴 때면 심장이 불편할 만큼 쿵쾅거리고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았다. 더 이상은 버틸 재간이 없었다. 스케줄 조정을 신청했지만, 회사 사정으로 수용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은 직후, 사직서를 던졌다.

 끝까지 사과 한마디 없던 그 직원과, 이렇다 할 조정 방안은 없이 그저 해왔던 대로 참고 넘어가주길 바라는 상사를 뒤로 하고 회사를 나왔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이 자유. 한가한 평일 두 시의 공원을 거닌 적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던가. 벤치에 앉아 나무 그늘이 만드는 음양의 그림과 잔잔한 호수를 보며 말 그대로 시간을 보내는 것. 여유를 즐긴다는 말이 진정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을만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오롯이 즐길 만큼 큰 그릇이 못되었다. 속이 너무 상했기 때문이다. A 직장은 나를 괴롭히던 그 직원만 빼고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의 회사였다. 어디서 이런 직장을 다시 구할 수 있을까 싶은 정도였으니, 사직서를 던지고 나왔다 하더라도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는 도리였다.

 호수를 보던 눈이 휴대폰을 꺼내 들고, 구직 사이트를 훑는다. 보면 볼수록 처참한 마음만 쌓여간다. 어째서 괴롭힘을 당한 건 나인데, 내가 그만둬야 하는가? 구직 사이트를 살피며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하는 사람이 왜 나여야 하는가? 화가 난다. 화가 나. 나를 괴롭히던 곳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그곳에 속박되어 있었다.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줄 알았던 초조함은 오히려 더욱 심해졌다. 이렇게 직장 없이 놀고만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들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의식해도, 전혀 먹히질 않고 공원에서 여유를 즐기는 것도 어째선지 허세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을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갈등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회피형에 가깝다.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그 때문에 나는 최대한 친절하려고 한다. 친절을 베풀고, 그들 또한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십사 하는 것이다. 하지만 A에서의 직장 생활에서 나의 그런 마음가짐은 그저 딱 호구로 취급하기 좋은 계기였을 뿐이다. 뭘 어떻게 행동해도, 뭐라 하지 못하는 호구.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 보니 내가 화가 나고 속상했던 것은 그 직원보다 내가 나 자신을 지키지 못함이 컸다. 부당한 일과 무례한 상황에 놓인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일에 잘 대처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마음의 수양이 필요하구나.라고 느낀 때 운명처럼 구직 사이트에서 본 공고가 바로 [**사에서 사람을 구합니다.]였다.



마음이 동했다. 시간이나 급여면에선 선뜻 좋다,라고 할 수 없었지만, 사찰이라는 특이성이 마음을 끌었다. 참고로 나에게 종교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항상 무교라고 답한다. 어릴 적엔 교회에 달란트 받으러 간 때도 있었고, 사회인이 되어서는 명동 성당 안의 서점에서 근무하기도 했었지만, 신실한 믿음을 가져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 '꼭 종교를 가져야 한 다면?'이라고 묻는다면, 고민 없이 불교라고 말했을 것이다.

 사찰은 어릴 때부터 엄마를 따라 종종 갔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불교냐, 하면, 또 아니다.) 사찰에 가면 그렇게 신기하고 재밌을 수가 없었다. 그런 마음은 그대로 자라나서, 나는 불신자가 아님에도 종종 일부러 절을 찾아가기도 하고, 불교에 관련된 미술 서적이나 전시회를 보러 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사찰에 휴식을 갖기 위해 간 것일 뿐. 그곳이 직장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나는 이력서를 보내기 전에 겸사겸사 사찰에 다녀오기로 했다. 가서 직접 내가 이곳에서 일을 할 수 있을지, 잘 해낼 수 있을지 판단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공고를 보기 전주에 근처 다른 큰 절을 보고 온 참이었다. 날이 무척 더웠기에 평소 즐겨 입는 밴드의 앨범 재킷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가려다가, '그래도 절이니까'라는 생각에 갈아입었더랬다. 내 얘기를 들은 벗은 '색도 알록달록하니 탱화 같아서 괜찮아'라고 말해주었기에, 나는 사찰에 가기로 한 날 바로 그 티셔츠를 입고 편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너른마음을 갖고 실눈을 뜨고 보면 얼핏 탱화같다.




 지도 어플에서는 버스로 45분 거리라 했지만, 시골길을 쌩쌩 달려가자 25분 만에 사찰 입구에 도착했다. 기다랗고 육중한 바위에 새겨진 사찰 이름이 멋져 보였다. 도보로 300m 정도 걸어 올라가니, 멀리 일주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사찰은 처음 보았다. 성벽처럼 쌓인 돌담과, 고개를 들어 올려야 사찰의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것에 압도되었다.

  일주문 안, 양옆으로 머리를 내민 두 마리의 용은(내 티셔츠와 비슷해 보이던)  금방이라도 닿을 것처럼 느껴졌다.

 경내로 들어가려면 꽤 높은 돌계단을 두 번이나 올라야 했다. 끝에 다다르니,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복슬한 베이지색 강아지(원래는 하얀 강아지였을 것 같다)가 눈에는 졸음이 가득하지만, 낯선 이를 경계하려는 본분을 지키기 위해 짖고 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두세 번 짖더니, 나를 위협인물로 생각하지 않은 듯 햇볕에 따끈하게 달궈진 자갈밭에 배를 깔고 누웠다.

 먼저 대웅전으로 올랐다. 문이 닫혀 있기에 앞에서 합장하며 부처님께 인사를 올리고, 보물이 있다는 언덕을 올랐다.

  보존각안에 모셔진 석조여래입상을 보기 위해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 생각했던 것보다 부처님이 상당히 가까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부처님은 시무외여원인 수인을 취하고 계셨는데, 전하는 뜻은 이와 같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모든 것을 들어주겠다.

두려워하지 마. 힘든 게 뭐야? 내가 다 들어줄게.
-
카리스마 부처님이든, 친근한 부처님이든 무엇이든 좋다.
이 뜻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듯하다.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며, 염치없지만 뭐든 다 들어주신다기에 마음속으로 거창한 소원 하나를 빌었다.

부디 마음속의 번뇌를 없애주십시오, 아니면 번뇌를 이겨 낼 힘을 주세요,라고 빌자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만 같았다.

 내려가는 길에 목탁 소리가 들렸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을 돌계단에 앉아 하염없이 스님의 불경 외는 소리를 들으며 앉아있다가 일어섰다. 그리고 얼른 집으로 향했다. 이력서를, 써야 하니까.









사찰에서는 정숙해야 한다지만, 제 직장 생활은 우당탕탕 인걸요. _ 계속

생생한 우당탕탕의 근무일지가 보고싶다면,  인스타그램 @woodangtangtang_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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