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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노 Jul 06. 2024

사찰에서는정숙해야한다지만,제직장생활은우당탕탕인걸요

2화 인연이라는 것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는 법이며,
인연이 있으면 때가 생기는 법이라.










이력서를 작성했다.


 글이라는 건 무척 어렵다. 활자 안에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눈빛, 표정, 제스처 같은 것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오로지 활자, 그리고 당신일 뿐이다. 그러니 이 안에서 요령껏 내 의지를 전달해야 하는 것인데, 거기에 더해 나를 채용하고 픈 마음까지 만들어야 하니, 쉽지 않은 일이다. 고민 끝에 나의 경력 사항을 조금 기재하고, 사찰에 방문하여 느꼈던 점을 솔직하게 적어내었다. 글은  [좋은 인연으로 다시 뵙기를 바라겠습니다]라고 마무리 지었다.



고심을 거듭한 이력서의 마무리




 그렇게 고심을 거듭하여 이력서를 완성하고 지원하기 버튼을 누르려던 차였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이야.

 지원하기 버튼이 어느새 공고마감으로 바뀌어 클릭이 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 공고 기간은 아직 하루가 더 남았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은 당일 일자로 공고가 마감되었다는 것이었으니. 이미 채용이 되어 일 마감한 것일까? 허탈한 마음이 밀려왔다. 마음을 정했는데 정작 두어야 할 곳을 잃은 것이다.


 원래의 나대로 행동하자면, "에이, 망했네"하며 이력서를 삭제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주체하지 못할 자유 속에서 하루하루 말라갔을 것이었다. 그런데 무슨 용기였을까. 공고 하단에 적힌 팩스번호가 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이력서를 전송해 버렸다. 공고가 마감되었다는데, 팩스로 이력서를 전송하는 지원자를 어이없어하실지, 용기가 가상하다고 하실지 모를 일이었다. 조금은 될 대로 돼라 하는 마음이었다. 이미 손 떠난 일었다. 팩스가 훌훌 떠나 전송되었듯.



3시간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 혹시 팩스로 이력서 보내셨나요?

"아, 예. 맞습니다."


중후한 목소리의 남성이 잠시 침묵하더니 곧이어 말했다.


- 이력서가 흐릿해서 잘 안 보이네요. 메일 주소를 보내드릴 테니 이쪽으로 보내주시겠어요?

"네, 그러겠습니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인연은 어떻게 닿은 것일까
 내가 다짜고짜 이력서를 팩스로 보낸 용기에서 온 것일까?
가만히 있다가 냅다 팩스로 받은 이력서를 무시하지 않은 마음에서 온 것일까? (게다가 글씨가 흐려서 보이지도 않은 이력서를!)

우리의 인연이 닿을 운명이었던가, 우리가 운명이었기에 인연이 닿았던가.
될 것은 가로 막아도 될 것이고, 안될 것은 무엇을 갖다 바쳐도 되지 않음이니,
그것에 집착하여, 마음 쓰고 애달파하지 말자.






- 예, 이력서 확인 했습니다. 늦어도 내일까진 연락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이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그러자 웃기게도 걱정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일하는 것엔 걱정이 없었다. 내가 절에 지원했다는 것을 들은 벗은 '아무래도 절에 가면 지원한 일 말고도, 이런저런 일들을 다 하게 될 텐데, 괜찮겠어?'라고 걱정해 주었는데, 그런 면에선 이미 각오하고 지원하였으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사찰! 절!


나는 요새 많다는 불교에 가까운 무교이지 신심이 깊은 불제자는 아니다. 이런 내가 사찰이라는 조금은 특별한 직장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사찰이 좋지만, 그곳이 직장이 된다면 어떨까? 겪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늦은 오후쯤 다시 걸려왔다.


- 예, 이력서 다 보았어요. 그럼, 어떻게. 우리 사찰에서 일해 보실 마음 있으신가요?



으아아! 이제 겪어 볼 시간이 왔다. 후퇴는 없다. 직진이다.



"네! 출근하겠습니다!"






사찰에서는 정숙해야 한다지만, 제 직장 생활은 우당탕탕 인걸요. _ 계속

생생한 우당탕탕의 근무일지가 보고싶다면,  인스타그램 @woodangtangtang_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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