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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노 Jul 13. 2024

사찰에서는정숙해야한다지만,제직장생활은우당탕탕인걸요

3화 이것은 면접인가, 스님과의 차담인가



      

세상을 살며 곤란함이 없길 바라지 말라.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하는 마음이 생길지니,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내가 사는 곳은 시골이라기엔 혁신적이고, 혁신적인 도시라기엔 목가적이다. 서울의 화려함이 번잡함으로 느껴질 때가 많던 나에게 이곳은 남들에겐 따분으로 보여도 내겐 여유인 곳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 불편한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대중교통이다.

거주지가 있는 도시 안에는 그나마 버스가 운행하고 있지만, 도시를 벗어난 외곽으로 가려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기본 배차 간격은 한 시간. 더군다나 이 버스가 언제 오는지 세월아 네월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버스 위치를 알려주는 어플이나 홈페이지를 이용해 봐도 소용없었다. 그저 그날의 운세에 맡겨야 한다. 그래서인지 이 도시에는 대부분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지만, 나는 뚜벅이. 차가 없다.

  한 번의 버스를 놓치면 그대로 지각이다. 그러니 눈에 불을 켜고 버스가 나를 지나치지 않도록 지켜봐야 한다. 더욱이 사람이 많이 타지 않는 정거장일수록, 버스는 더 쌩쌩 지나쳐버린다.


면접을 위해 고르고 고른 옷을 점검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때는 6월. 땡볕더위가 기승을 부린 날. (대체 사찰에 면접을 보러 갈 땐 어떻게 입어야 하는 거야) 머리를 싸 맨 끝에 청색 나일론 티에 반팔 정장 재킷을 걸쳤다. 정장 재킷은 예전 호텔에서 근무할 때 입으려고 샀던 것이다. 이것이 내 새로운 면접의 옷이 되다니. 세상 정말 모를 일이다.



정거장 없는 버스 정거장



버스 안내에서 사찰이름이 나오기에 하차벨을 눌렀다. 이윽고 도착 후 문이 열리고, 나는 길가 한 복 판에 우두커니 내렸다. 정거장이라곤 팻말 하나가 전부인 이곳. 절까지 이어진 길을 따라 15분 거리를 걸어야 했다. 이 길이 은근히 오르막이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숨이 차오른다. 하지만 걷는 것 하나 자신 있는 뚜벅이인 나는 용맹하게 뚜벅뚜벅 걸어간다. 이쯤 되었나 싶어 고개를 들어보면 본 게임이 시작된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일주문의 모습에 넋을 놓는다. 누구는 황량하고, 잡초가 무성하여 을씨년스럽다고 평하기도 하지만 어쩐지 내 눈엔 그저 웃자란 잡초 사이에 피어난 지조 있는 붉은 꽃만 같다.


자갈이 깔린 경내를 지나, 한 고개를 더 넘어서야 면접을 보기로 한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양 옆, 앞, 세 방향으로 뚫린 창, 밖으로는 초록의 나무, 바람과 새소리가 어우러진 면접장. 스님과의 독대.


면접이라 떨리는 것일까, 스님 앞이라 떨리는 것일까. 내 평생 스님과 대화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 처음이 면접이라니 이보다 더 떨릴 수 있을까.


-반갑습니다.

"예, 안녕하세요."

- 이력서의 자기소개를 아주 잘 봤어요. 글을 좀 쓰시는가요?

(간파당했나!)

"잘 쓰진 못하지만, 좋아하는 편입니다."


내 대답에 스님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하지만 곧바로 들어오는 훅.


"저번에 여기 돌계단에 앉아 있다 가신 법우님 맞으시죠?"

"앗.(이번엔 들킨 것인가!)네, 맞습니다."


법회 중이시라 못 보셨을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헤비메탈 티셔츠를 입은 나를 보셨다니, 낭패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스님은 싱긋 웃으며 면접을 이어갔다.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세요?

"xx 년 x월 x일입니다."

-양력인가요?

"네."

-태어난 시간은 언제인가요?

"아, 오후 x시입니다."

...


사주다! 이거 분명 사주다! 사주 볼 때 꼭 필요한 것들 아닌가!
사주면접이라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분야인데!
  어째 자신감이 훅 떨어진다.
에이, 어차피 이렇게 될 거면, 스님 제 사주 어떤가요? 물어나 볼까



-그렇군요.


스님은 이렇다 할 말 없이 다시 평범한 면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면접은 막바지에 접어들었는데 문득 이런 말씀을 하신다. 


- 어느 곳에 가나 어려움이 있지요. 그래서 사람을 볼 때 장점을 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장점을 찾고 봐주면 마음에 어려움이 조금은 가십니다.






장점을 찾고 봐준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이전 직장에서의 1년 동안의 괴로움. 그로 인해 살면서 처음 겪어 본 화병. 나를 유난히 못살게 굴던 그 직원에 대해 나는 처음엔 무관심으로 대응을 했지만, 지속되는 괴롭힘에 결국 항복하고 나 또한 그 직원의 단점, 꼬투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었다. 마음이 힘들었던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사람이 누군가를 미워할 때는 그보다 더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눈은 항상 그 사람의 잘못을 찾아야 하고, 귀로는 그의 약점을 들어야 하며, 입으로는 쉴 새 없이 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거기서 지쳐버렸다.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닌 것으로 느껴졌다. 즐겁고 보람되어야 할 내 직장이, 온통 남의 허물이나 캐야 하는 지옥으로 변했던 것이다. 나는 당연히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 대해 단점을 찾으려고 했지, 장점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그 사람의 장점을 보려고 노력을 했다면, 결과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생은 모두 해피엔딩은 아니기에.
노력했음에도 지금과 같이 괴롭힘을 이기지 못하고 회사를 관두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하다.
 내가 노력을 했더라면, 나 스스로는 달라졌을 것이다.




스님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어떤 질문을 가져야 할지도 몰랐던 내가 해답을 얻은 기분이었다.









사찰에서는 정숙해야 한다지만, 제 직장 생활은 우당탕탕 인걸요. _ 계속

생생한 우당탕탕의 근무일지가 보고 싶다면,  인스타그램 @woodangtangtang_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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