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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노 Aug 03. 2024

사찰에서는정숙해야한다지만,제직장생활은우당탕탕인걸요

4화 _ 첫 출근, 큰스님에게 냅다 두 번 절하기



나는 오온이요. 무상, 고, 무아라.
모든 상은 변하며 마음 또한 그러하다. 불변하지 않는 마음이 어디 있을까.
변하는 것은 무상하다. 기쁨도 무상하고, 괴로움도 무상이다.
무상한 것에 집착할 필요가 무어겠는가.









다음날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고, 나는 직원으로서 정식으로 사찰에 출근했다. 차담실에서 다시 마주한 스님과 앞으로의 업무에 관한 간단한 미팅을 가진 후 이어지는 한 마디,


"그럼 이제 큰스님께 인사드리러 가실까요."


주지스님이 절에서 가장 높은 어른이신 줄 알았는데, 큰스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자고 말씀하시니 큰스님이 가장 어른스님이시겠군, 나는 눈치껏 이해했다.


"큰스님을 뵈면 삼배를 올리시면 됩니다."


삼배라? 고개가 절로 갸웃했다. 법당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는 건 아는데, 살아계신 스님께도 삼배를 올리는 거구나. 불교문화에 무지몽매한 나는 알겠노라고 답했다.

 요사채로 건너와 만나 뵌 큰스님께서는 대체로 표정이 없으신 분이라, 얼핏 '내가 뭐 잘못했나'같은 불안함이 생기곤 했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무서운 선생님 앞에서 괜히 마음 졸이게 되는 그런 것.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 외투를 안 입고 왔나?"


당시 나는 반팔 티셔츠를 안에 입고 얇은 외투를 걸치고 왔지만, 주지스님과의 미팅 때 외투를 벗어두곤 그냥 와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지적받을 줄 몰랐던 터라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아니요, 입고 오셨는데 날이 너무 더워 벗었습니다."


 예상외의 지적에 잔뜩 긴장하며 첫 번째 절을 올리는데, 수그린 머리 위로 큰스님의 말씀이 들렸다.


"일 배만 하세요."


 하지만 쫄보인 나는 그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냅다 두 번째 절을 시전 하였고, 뒤늦게 큰 스님의 말씀이 머릿속으로 전달되며, 어정쩡히 멈춰버리고 말았다. 차라리 넉살 좋게, "아닙니다, 큰스님, 절 받으십셔!" 했어야 했는데.


내가 절을 두 번만 하고 멍을 때리고 있자,
되레 주지스님이 당황하며, "절은... 두 번만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아, 이때 나는 예감했다. 앞으로의 직장생활이 우당탕탕이 될 것임을!




서둘러 삼배를 마친 나는 속으로, '첫날부터 바보같이 행동했네'하며 가마솥에서 찐 대형 감자처럼 앉아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절을 두 번 만하는 백치로 보셨을 테지. 첫 단추를 잘 꼈어야 했는데. 마음은 가파른 하향 곡선을 타고 내려앉았다.


주지스님께서 잔뜩 기가 죽어버린 나를 사무실로 안내해 주시고, 기도를 하기 위해 법당으로 올라가셨다. 내가 앞으로 사용하게 될 사무실의 원래 용도는 기와불사 접수처였다. 깔끔한 내부와 컴퓨터, 와이파이, 에어컨까지 갖춘 흠잡을 곳 없는 사무실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욱 특별한 것은





이런 경치를 보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특급 복지라니. 하향곡선을 타던 마음이 또 철없게 위로 솟는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일희일비하고 가볍다. 작은 실수 하나에 좌절하고, 좋은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새삼 깨닫는다. 하루에도 여러 번 롤러코스터를 타는 마음에게 나를 온전히 맡기는 것은 타당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온함을 지향해야겠다고 말이다.



 







사찰에서는 정숙해야 한다지만, 제 직장 생활은 우당탕탕 인걸요. _ 계속

생생한 우당탕탕의 근무일지가 보고 싶다면,  인스타그램 @woodangtangtang_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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