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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레미 작가 Dec 02. 2021

엄마가 우선으로 생각하는 아이의 가치관은 무엇인가요?

아이가 클 수록 후회되는 게 많았어요. 그 때 좀 더 다정하게 안아줄껄, 화내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줄껄 하고요. 처음 엄마가 되고 모르는 것 투성이에 실수도, 잘못도 당연한거라지만, 그 순간들이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걸 알았다면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사업 실패도 경험했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도 당하는 큰 일도 겪어봤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게 되던데, 어째서 아이에게 주었던 상처의 말들이나 행동은 오랜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또렷해지는 걸까요. 


10대 시절의 전 두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안녕 난 루피야 ( 안녕 난 몹시 화가난 루피야 그러니 까불지 말아줄래?)




친구들 앞에서는 대화를 주도하고, 개그감 넘치는 유쾌한 학생이었지만, 엄마 앞에서는 착하고 순종적이고 말 수가 적어서 걱정 끼치는 아이었거든요. 가만 생각해보면 엄마 속을 썩히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눈치도 빨랐죠. 이제와 생각해보니 갖고 싶은게 있다고 말해 본 적이 한번도 없더라구요.



그 덕이라 해야할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행동, 싫어하는 행동에 대해서 동물적 감각으로 빠르게 눈치를 챌 수 있어서 주변에서는 저를 좋아하고 신뢰해주었죠. 하지만 그만큼 지나치게 다른사람의 기대감을 채워주려고 노력하기도 했어요. 배우고 체험한 세상이 그렇다 보니 아이들에게도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늘 강조했던 것 같구요. 




이런 행동은 상대방이 싫어해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는 그렇게 해서는 안돼 




기준이 늘 상대방이었던 거죠. 




금쪽같은 내새끼란 프로그램이 방영 될 때였어요. 바닥에 머리를 박고 소리를 지르는 금쪽 부모님에게 오은영 박사님께서 물어보셨죠.





엄마가 우선으로 생각하는
아이의 가치관은 무엇인가요.



그때, 티비 속에 있는 엄마와 저는 같은 대답을 했어요. 




예의범절이요.





그리고 다른 패널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죠.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하더라구요.





저의 우선 순위는
아이의 행복이에요.




누군가 뒤에서 망치로 제 머리를 '쿵'하고 때려주는 것 같았어요. 처음엔, 상담을 받으러 나온 금쪽이 부모님과 나의 가치관이 같다는 것에 놀랐고, 후엔 아이의 행복을 우선순위에 둔다는 것을 스스로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놀랐던 거에요. 



그리고는 정말 영화필름이 상영되 듯이 그동안 제가 왜 아이에게 화내고, 통제하려고 했는지가 분명하고 또렷하게 다가왔죠. 제가 느낀 건 크게 두가지였어요. 



첫번째. 아이의 감정과 의견을 묵살했다


예의를 지나치게 중요시 하다보니, 아이의 감정이나 의견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숙제를 하는데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으면 예의가 없다는 생각에 화가 나요. 싫은데도 공부를 하려고 책상앞에 앉은 아이를 대견해하거나 칭찬해줄 생각은 해본 적 없었던 거에요. 우선순위가 공부하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아닌, 내 마음에 드는 얼굴을 하고 지시에 따르는 것 이었기 때문이겠죠.




두번째. 주도성을 빼앗는다.


예의는 혼자 있을 땐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분명 필요해요. 그런데 그걸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상대방에 맞춰 행동하고 의견을 정하는 경우가 많죠. 쉽게 말해 순종적이게 되는 거에요. 내 말을 잘 듣는 것이 예의바르다고 생각했던 거죠. 




아이를 키우면서 한 순간 크게 깨달음이 왔던 적은 처음이었어요. 돌아보니, 제가 받아왔던 양육의 모습이더라구요. 미안한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이 실타래 처럼 엉켜서 마음을 무겁게 누르대요. 그 때 알았어요. 



예의범절을 강요하면서 순종을 요구하고, 내가 바라는 대로 따라오기를 강요했구나 하고 말이에요. 



생각을 달리 하기 시작한 것 뿐인데도, 실제로 아이가 변한 것 처럼 느껴졌어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여전히 있었죠. 그런데 누군가에게 해를 입힐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면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것들을 허용하자고 생각했어요. 




예를들면, 세면대에 물을 받아서 거품을 내며 손을 씻는다던지, 공부하다가 갑자기 책상을 정리한다던지, 게임을 먼저 하고 숙제를 한다던지, 피곤한 날은 발만 씻고 자고 싶다던지 하는 부분은 사실 예의를 차리고 말고의 문제도 아니었던 거죠. 그저 내 말 처럼 따라주지 않는 것을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던 저의 잘못된 생각만 있었을 뿐이었어요.




아이는 사소한 것에도 정말 행복해했어요. 그 행복을 제가 허용하니, 저도 따라 행복하더군요.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말이 뭔지 조금을 알 것 같아요.




그 뒤로 자주 스스로에게 묻곤 해요

내가 우선으로 생각하는 아이의 가치관은.




파란 하늘 만큼 멋진 우리 둘째에요. 혼자 보기 아까운 잘생김을 가졌어요.




순종일까?
행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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