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동화는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정확한 책 제목은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Rattenfänger von Hameln⎦이다. 독일 하멜른 시에 쥐떼들로 골치를 앓고 있는데 낯선 남자가 나타나 쥐를 없애 주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 남자는 피리를 불어 쥐떼들을 강으로 꾀어내 모두 익사시키지만 하멜른 시장은 약속한 돈을 지급하지 않는다. 화가 난 남자는 다시 피리를 불었고 이번에는 아이들이 줄지어 남자를 따라나섰다. 마을의 아이들 130명이 남자를 따라 마을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는 내용이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삽화
이 이야기가 유명해진 데에는 그림 형제(Brüder Grimm)의 ⎡독일 설화집⎦영향이 크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설화집이 나오기 전부터도 유명한 사건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비극적인 동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30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져 버렸다.
이 미스터리한 일을 많은 사람들이 연구했고 실체를 밝히려고 애썼다.
먼저 이 사건과 관련해 남겨진 오래된 기록으로는 하멜른에서 가장 오래된 마르그리트(Marktkirche)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와 거기에 붙은 설명문이고, 또 하나는 하멜른의 교회에서 사용된 미사서 표지에 붉은 잉크로 쓰인 라틴어 시이다. 모두 13세기에 기록된 것으로 현재 실물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그 모습을 재현해 놓은 것을 교회에 가면 다시 볼 수 있을 뿐이다.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이 기록에 따르면 설화와 기록의 공통점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1228년 6월 26일에 하멜른에서 130명의 어린이가 사라졌다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한다.
그 후, 이 내용은 다시 한번 세상에 나타나는데 15세기 중반 뤼네부르크(Lüneburg)의 필사본에서다. 여기에는 13세기 기록보다 조금 더 살이 붙어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284년 성 요한과 성 바오로의 날에 하멜른에서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다. 서른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다리를 건너서 베저문으로 들어왔다. 근사한 옷차림에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특이한 모양의 은피리를 지녔는데, 남자가 피리를 불자 그 소리를 들은 아이들이 모였다. 그리고 130명의 아이들은 남자 뒤를 쫓아서 동문을 지나 처형장 쪽으로 향하더니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어머니들은 아이를 찾아 헤맸지만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이 사라진 내용에 쥐 잡이 사나이의 내용이 첨가된 것이다. 그러다 1565년 경 ⎡짐메른 백작 연대기⎦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원형이 완성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많이 변형되는데 이는 종교나 계급에 대한 풍자와 조롱이 담기게 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쥐를 쫓아내면 보수를 주기로 했지만, 시장은 악사이자 무당인 사나이에게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것은 차별이었고 사기였다. 그래서 사나이는 그에 대한 복수로 마을의 아이들을 데리고 떠났다.
그렇다면 당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길래 130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질 수 있었던 것일까? 아이들은 과연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가장 유력한 것이 자연재해설, 이주민설과 어린이 십자군설이다.
중세시대 쥐 때문에 흑사병으로 몰살당했다는 설도 있었지만, 학자들은 아이들이 동쪽으로 갔다는 대목에 주목했다. 그 당시에 독일은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골치를 썩고 있었다. 하지만 독일의 동쪽, 헝가리나 루마니아 같은 동유럽의 국가들은 ‘타타르족’의 침입으로 문제가 심각했기에 독일인의 이주를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혹시 갑자기 사라진 아이들은 이때 이주해 간 인구는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주라면 의례 온 가족이 함께 가는 것이 마땅한데 아이들만 대거 거처를 옮긴다는 건 설득력이 약해 보이기는 하다.
필자가 보기에 가장 신빙성 높아 보이는 설은 어린이 십자군설이다.
십자군 원정은 종교적 신념을 내세워 영토를 확장하고자 하는 영토 싸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십자가 모양을 달고 전쟁에 나섰고, 그리하여 그 이름은 십자군 전쟁이 됐다.
십자군 전쟁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추악하고 잔혹한 전쟁으로 불리고 있다.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약 200년간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의 전쟁이 지속되면서 예루살렘을 빼앗았다, 빼았겼다를 반복한다. 그러면서 예루살렘은 두 종교 모두에게 중요한 성지가 된다. 이 성지를 둘러싼 싸움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가자지구가 이 지역에 해당한다.)
전쟁 자체도 비극이지만 1212년 소년들을 십자군으로 대거 이끌고 튀니지나 제노바까지 데리고 갔다가 노예로 팔아버리는 일이 있었다.
이는 하멜른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고 유럽 전역에 걸쳐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이렇게 노예로 팔린 어린이들이 대략 3만 명 정도에 달한다는 설도 있다. 정말 비극적인 가설이 아닐 수 없다.
이념 싸움에 타의로 동원되는 것 역시 부당한 일이지만 아이들을 전쟁터라는 곳에 이끌고 가서는 노예로 팔아버리는 일을 할 수 있는 인간성들이야 말로 갈 데까지 간 상황이다.
세기에 세기를 거듭한 전쟁으로 많은 목숨들이 사라졌고, 하멜른도 황폐해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에 하층계급은 종교와 지배 계급에 강한 배심감과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고, 그들의 고통이 풍자와 조롱으로 남은 민담이 바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인 것이다.
전쟁은 끊이지 않았고 살기 힘든 것은 힘없는 하층민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쓸모없는 것은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아이들은 더욱 빨리 철이 들어야 했을 것이고 제 밥값을 해내기 위해 애를 써야 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식구의 입을 줄이기 위해 십자군이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 본다.
종교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내가 밥을 먹고, TV를 보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공습의 공포에 떨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그곳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아직도 사라지고 있을 것이다. 슬픈 현실이다.
하멜른의 곳곳에는 피리 부는 사나이와 아이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마치 그들을 기념하듯 쥐 모양의 빵이나 인형을 팔기도 하고 피리 부는 사나이의 동상이 있지만, 피리 부는 사나이와 아이들이 지나갔다는 길은 아직까지도 아이들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춤과 노래를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구시가지 피리부는 사나이 하우스와 춤과 음악이 금지된 붕겔로젠 거리(Bungelosenstraße)
안타깝게도 이런 일이 현재에도 벌어지고 있다.
북한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러시아 측으로 군인을 파병한 것이다. 이로 인해 받는 돈은 특수부대를 파병하는 대가로 최소 600억 원을 수령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만 3,000여 명으로 파악이 되고, 12월까지 총 1만여 명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로 인해 1인당 2천 달러의 대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북한의 소득 수준으로 봤을 때 상당한 수익임을 알 수 있다. 더불어 ICBM탄두의 기술 이전 등이 요구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전쟁에 대가를 바라지 않을 수는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발트해를 중심으로 한 지역 쟁탈전이 오래전부터 예견돼 왔었고, 이스라엘과 이란은 종교적 문제와 지역적, 문화적인 복잡한 요소가 작용해 언젠가 터질 시한폭탄과 같은 지역이었다.
하지만 이 전쟁으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칫 북한, 러시아의 도발에 살상무기를 지원하거나 파병을 하게 된다면 러시아-우크라이나 격전지는 남-북간의 대리전, 혹은 격전지가 될 수도 있다. 이게 얼마나 불필요한 싸움인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민족주의의 입지가 많이 작아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국가나 인종으로 모이기보다는 세대별로 구분 짓기를 더 좋아하는 시대가 됐다. 실제로 국제기구들의 힘이 커지기도 했고, 언론이나 문화가 이미 글로벌화되어 있다. 그런데 기성세대는 아직도 피리 부는 사나이가 사는 13세기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피리소리는 지금도 멀지 않은 전쟁터에서는 들리고 있다. 하지만 우린 모르는 척 살아가고 있다.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곧 우리 곁에 나타나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갈지도 모르겠다. 우매하고 욕심 많은 어느 관료들의 농락 때문에 왜 아무 죄 없는 이들이 사라져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그림 형제(Brüder Grimm)-독일의 동화작가로 야코프 그림(Jacob Grimm)과 빌헬름 그림(Wilhelm Grimm) 형제이다. 독일 민담을 수집하여 편집한 <그림동화>로 유명하다.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라푼젤>, <헨젤과 그레텔> 등 과 같은 작품이 있다.
*타타르족-유라시아에 걸쳐 거주하는 튀르크계 민족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명칭으로 이슬람교를 믿고 킵차크어파의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