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리 딜리마 Trolley dilemma
오늘은 질문으로 글을 시작해 볼까 한다.
당신은 철로 옆에 서 있다. 철로 위에는 5명의 사람이 묶여 있고 기관차는 이쪽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다. 마침 앞에 선로를 바꿀 수 있는 레버가 당신 앞에 있다. 하지만 다른 쪽 철로에는 뚱뚱한 남자 한 명이 묶여 있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은 많이들 접해 봤을 질문일 것이다. 도덕적 딜레마 그중에 트롤리 딜레마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유실험으로 1967년 철학자 필라파 풋에 의해 옥스퍼드 리뷰지에 처음 실려 지금까지도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서 도덕적 딜레마란, 두 개 이상의 도덕적 원칙이 충돌하여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철로의 뚱뚱한 남자 문제는 지금까지도 난제이기 때문에 거론되는 것일 것이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이것만 해도 복잡한데 MIT의 철학자 주디스 자비스 톰슨에 의해 문제가 변형되면서 사람들은 더욱 곤란해지며 딜레마는 커졌다.
이번에 당신은 육교 위에서 기차선로를 내려다보고 있다. 기관차는 역시나 이쪽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고, 앞에는 다섯 명의 사람이 철로에 묶여있다. 그런데 마침 당신 옆에 기관차를 세울 정도로 뚱뚱한 몸집의 남자가 육교 난간 너머로 기관차를 바라보고 있다. 만약 당신이 그 뚱뚱한 남자를 밀어 떨어 트리면 기관차를 세울 수 있고 5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당신은 뚱뚱한 남자를 죽일 것인가?
처음의 문제에서 조금 변형된 이 문제에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첫 번째 질문에서는 조금 쉽게 결정을 했다면 두 번째 질문에서는 조금 선택이 어려웠을지 모른다. 두 번째 질문에서 죽지 않아도 될 뚱뚱한 남자를 내가 죽게 만드는 것은 살인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다른 예를 들어 보겠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염소 치기에 대한 예가 나온다. 이는 2005년 6월 미 해군 특수부대 실 SEAL 소속의 마커스 루트렐 하사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마커스 루트렐 하사와 수병 세 명이 파키스탄 국경과 가까운 아프가니스탄에서 비밀 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는 오사마 빈 라덴의 측근인 탈레반의 지도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특수부대 팀은 아프가니스탄 농부 두 명과 10대 소년 한 명이 100여 마리의 염소를 몰며 오는 것을 마주하게 된다. 미군은 이들에게 총을 겨눈 채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이들이 탈레반에 밀고를 할 경우, 작전의 실패는 물론 본인들의 목숨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사살을 하는 게 맞다는 판단이었으나, 비무장한 염소치기들은 무고한 민간인 일 수 있으니 보내 줘야 한다는 양심의 소리가 함께 갈등하는 것이었다.
본인 안전에 대한 문제이니 비무장일지라도 죽이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미군에게는 교전 수칙이 있는데 비무장 민간인을 살해하는 일은 군법회의에 회부될 범죄 행위로 판단 됐기에 그들은 목숨이 달린 최후의 순간까지 양심과 싸움을 벌였던 것이다.
만약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것이 도덕적 딜레마, 사유 실험인 것이다.
그들은 양심의 판단하에 비무장 염소치기들을 보내주었다. <정의란 무엇인가> 책에 의하면 그 염소치기들에 밀고에 의해 미군은 탈레반의 습격을 받고 동료 세 명과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왔던 미군 헬리콥터 한 대까지 격추당해 그 안의 열여섯 명이 모두 사망했다고 한다.
만약 루트렐 하사가 결과를 미리 알았다면 선택하기가 쉬웠겠지만 결과를 미리 알고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이 이야기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위에 설명한 두 개의 트롤리 딜레마 문제 역시 그렇다. 상대가 누구인지(적인지, 동료인지, 악당인지)에 따라 남자를 육교에서 밀수도 있다는 것에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 단지 남자가 기관차를 세울 정도로 뚱뚱하다는 것만 알 뿐이다. 이런 순간에 우리는 어떤 도덕적 판단을 에 최선을 다 할 수 있을까?
트롤리 딜레마는 생각보다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다.
"자기는 나하고 엄마하고 물에 빠지면 누구부터 구할 거야?"와 같은 문제다.
아파트에 불이 났다고 해보자. 한 방에는 노부부가 있고 다른 한 방에는 어린아이 한 명이 있다. 당신은 한 곳밖에 갈 시간이 없다. 누구를 구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것, 상상 조차 하고 싶지 않은 문제들인 것이다.
사람들의 선택은 갈리게 된다. 그것을 보고 공리주의인지 의무주의인지 이야기한다.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란, 결과주의로 윤리적 판단을 할 때 결과와 효과에 중점을 둔 철학적 입장을 말한다. 어떻게 해서든 기관차를 멈추게 해 다수를 살리게 한 집단이 이에 해당하는 것이다. 최대의 행복을 추구하는 철학이다. 제레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이 그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다수결로 무엇이든 정하는 일에 익숙하다. 이것도 공리주의와 같다. 소수의 의견보다는 다수가 좋은 쪽으로 결정되는 거다. 다수가 좋으면 다 좋다는 의견이다. 그것도 맞을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임으로 이해하기 쉽고 설득도 빠른 부분이 있다. 그만큼 유연하고 실용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또 사회적 효율이 높은 점은 필자가 큰 장점으로 뽑은 점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공정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간혹 다수를 위해 소수의 도덕적 직관에 반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다음으로 의무주의가 있다.
의무주의란(義務主義 Deontological), 윤리적 판단을 할 때 도덕적 의무와 규칙을 중시하는 철학적 입장을 의미한다. 이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은 의무에 부합하는지를 고려해 결정을 내리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이마누엘 칸트가 주장한 철학이다.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항상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칸트는 강조했다.
만약 사람을 돕는 일이 동정심에서 비롯된다면 도덕적 가치를 지닐 수 없다고 칸트는 말하고 있다. 온전한 의무감으로 그래야 하기 때문에 돕는 것이 도덕적 가치를 지난다고 하는데 이는 올바른 것이긴 하지만 사실 필자 기준에 동정심이라는 게 없을 수 없거니와 당연히 그래야 하기 때문에 선행을 하는 단정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은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늘은 도덕적 딜레마 중에 트롤리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트롤리 딜레마는 도덕적, 문화적, 교육적 차이에 따라 선택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이런 딜레마의 상황에 놓여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어떤 질문이냐에 따라 대답은 언제나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도덕적 사고를 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과연 나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사람인지, 의무를 중요시하는 사람인지 생각해 보고, 지금 일어나는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어려운 문제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판단하는 게 좋은 것인지 토의하고 사유할 것을 권유한다.
<참고문헌>
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 -데이비드 에드먼즈
Would You Kill the Fat Man?: The Trolley Problem and What Your Answer Tells Us about Right and Wrong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