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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곤 별다방 Apr 25. 2024

어린이집 등원전쟁 #2

part 10 여유로운 등원길은 택시로부터 나온다

part 9 요약

아침마다 어린이집 등원전쟁은 꼬마아이의 컨디션조절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진다.


part 10 시작

등원전쟁은 집에서 뿐만 아니라 등원길에서도 나타났다. 어찌어찌한 사정으로 우리 집에서 어린이집까지는 온라인 지도 기준 어른 걸음으로 걸어서 24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팬데믹 이전에는 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많지 않았다. 아이와 이동할 때는 항상 자동차를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1년 7개월간 차 없이 둘째 아이와 출퇴근을 하다 보니 너무나 많은 에피소드가 생겨났다.


첫째를 키울 때부터, 아니 결혼 전부터 우리 부부는 각자의 차가 있었다. 지방 출장이 잦은 남편의 차와 결혼 전부터 갖고 있던 내 차가 있었다. 하지만 팬데믹은 우리 가정에 많은 흠집을 냈고, 그 이야기도 한 보따리다. 말하다 보니 할 말이 더 많아지는 건 안 비밀이라고 해두자. 오늘은 일단 둘째의 등원전쟁을 마무리해 보겠다.


‘여유로운 등원길은 택시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아이와 대중교통밖에 이용할 수 없을 때의 내 생각이었다. 자동차가 있을 때는 아이를 카시트에 태워 이동하는 것이 가장 편리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차장에 세워둔 우리 차를 언제든 끌고 나가면 우리는 어디든 닿을 수 있었다.


차에는 항상 접히는 유모차가 실려있어 아이가 낮잠에 빠져도 엄마는 아이와 어디든 다닐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여담이지만 첫째를 그렇게 키워서일까 대근육발달이 늦었다. 반대로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으로 하는 소근육발달은 빨랐다. 둘째는 반대였다.


자, 이제 우리 집에 차는 1대가 있다. 그 차를 타고 운전만 1시간 30분 하는 거리의 회사로 남편은 새벽에 출근했고, 첫째는 걸어서 초등학교에 갔다. 남은 건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둘째와 회사로 출근해야 하는 엄마의 튼튼한 두 다리뿐이다. 경단녀였던 엄마는 다행히 오전 9시보다 한 시간 늦은 오전 10시까지 출근하는 일을 구했다. 두 아이를 보내고 출근하려면 10시면 충분할 거라 계산해서였다. 하지만 아침시간은 물이 끓어 수증기로 증발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사라졌다.


대중교통이 아주 편리한 우리 집에서 어린이집까지 거리는 다음과 같았다. 아이와 실제로 걸어가면 30분 정도 걸렸다. 아이가 킥보드나 자전거를 타고 어른들 평균걸음으로 함께 걸어가면 20분이 소요되었다. 버스를 타면 대기시간 10분과 탑승시간 10분으로 총 20분이 걸려 시간으로만 본다면 걷는 것과 매한가지였다. 대기시간 없이 택시를 타면 10분 내로 도착했다.


아이는 걸어서 스스로 어린이집에 갈 수 없는 나이라서, 보호자인 엄마가 친히 어린 둘째를 모시고 어린이집에 들렀다 출근을 해야 했다. 시립어린이집은 대부분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않는데 엄마는 찬성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셔틀버스 사고, 특히 한여름에 아이를 등원시켰는데 잠든 아이는 셔틀버스에서 내리지 못하고 차는 땡볕에 문이란 문은 모두 잠겨있는 데서 사고가 나는 가슴 아픈 뉴스, 아이를 키우며 2번 이상 보았다. 운전을 하는 운전자의 마음에서 있을 수도 있지만, 마음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라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등원셔틀을 보는 엄마의 시선은 매우 따갑다.


엄마는 둘째를 낳자마자 팬데믹을 지나 경단녀가 되었지만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드디어 취업에 성공했다. 그것도 주말에 쉬는 직장이었다. 육아를 할 때 주말에 쉬는 직장은 필수였다. 하지만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지하철과 바로 앞 버스정류장이 가까운 대중교통만 보고 구한 우리 집에 살다 보니, 어린이집이 너무나 멀었다. 설상가상으로 회사는 어린이집과 반대 방향이 되었다. 살다 보니 순서가 바뀌는 일이 어디 한 두 가지일까.


둘째가 다니는 시립어린이집은 내 맘대로 들락날락할 수 없이 대기가 100명이 넘어가는 엄청난 곳이라 함부로 그만둘 수도 없었다. 여기서 나가면 다른 시립어린이집에 딱 맞게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맞벌이 부모의 일정에 크나큰 위기가 닥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알아봐도 둘째를 회사 근처의 어린이집으로 옮길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걷거나 버스를 타거나 급기야 택시를 타면서 둘째의 어린이집 등원길은 점점 전쟁이 되어갔다.


어린이집에 한 번이라도 아이를 데리고 간 적이 있는 어른이라면 공감할 내용을 살펴보자.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아이의 기분은 크게 3 분류의 날씨로 나뉜다. 맑은 날, 흐린 날, 비 오는 날이 그것이다. 날씨와 큰 상관이 없다고도 말하기 어렵다. 정말 맑은 날은 대부분 맑은 기분으로 등원을 했으니 말이다.


1. 맑은 날: 누구나 생각하는 순조로운 일정이다. 아이와 함께 여유롭고 문제없이 어린이집 등원에 20분, 회사 출근에 버스로 20분이 걸려서 아름다운 출근시간에 맞춰 회사에 도착한 엄마는 여유롭게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있다.


등원이 아주 양호한 날은 아침식사를 준비하는데 둘째가 스스로 깨어서 주방으로 걸어 나왔다. 어젯밤에 잘 잤고 아침에 일어날 때도 기분이 좋았다는 뜻이다. 엄마가 준비한 아침밥도 잘 먹었다. 누나도 잘 일어나서 초등학교에 등교했다는 알람이 엄마의 휴대폰에 울리면 아들도 아침식사가 끝나있다.


어린이집에 가기 전, 세수를 하고 얼굴에 로션도 발랐다. 어린이집 일정에 맞춰 체육복을 입거나 일상복을 입혔다. 직접 고른 양말도 신었다. 어린이집 가방에는 아이가 오늘 일용할 점심 식판에서 유용하게 쓰일 깨끗한 수저통도 들어있다.


이런 날은 날씨도 쨍하고 걷기 좋다.

“우리 오늘 어린이집에 자전거를 타고 갈까? 킥보드를 타고 갈까? “라고 엄마가 묻는다.

“자전거”라고 아이는 답했다.


아직은 페달 없이 두 발로 밀면서 굴러가는 자전거를 좋아하는 녀석이다. 그 이름은 스트라이더, 지인에게 받아서 첫째와 둘째까지 아주 잘 사용하고 있는 아이템이다. 아이와 걸어서 가면 30분이 꼬박 걸리는 어린이집인데 킥보드를 타면 네이버지도에서 도보거리로 표기하는 24분이 딱 맞는다. 어린이집 앞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엄마는 버스를 타고 회사로 출근하는 날은 엄마의 발걸음도 가볍다. 회사도 여유 있게 도착한다. 엄마는 팀장님께 웃으며 인사를 할 수 있다.


2. 흐린 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문제없는 날이다. 가끔 뛰어야 하는 일도 있고, 버스에 자리가 없어서 아이를 꼭 잡고 타야 하지만 시간 내에 회사에 출근할 수 있다. 비록 엄마는 회사에 헉헉거리며 뛰어들어가지만 말이다.


조금 덜 양호한 날은 이 시간보다 촉박해질 때가 있다. 양호한 날보다 딱 20분이 모자랐다. 그럴 때면 버스를 텄다. 집 앞 버스정류장에 어린이집에 가는 버스 시간을 살피고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하지만 바쁜 날에는 아이의 컨디션도 쏘쏘 했다. 잘 나올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어린이집 가방을 꼭 챙기고 아이를 내 어깨에 둘러메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아이가 울든지 말든지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에 맡기기만 하면 엄마의 목적은 달성된다. 사실 엄마도 회사에 늦을까 봐 조마조마하다. 다행히 시간에 맞춰 오는 버스에 타면 아이는 버스 안에서 주위를 둘러보느라 시선을 빼앗겼다.


가끔 조용한 버스 안에서 질문을 하거나 중얼중얼 떠드는 소리를 방지하기 위해 사탕과 젤리를 주머니에 넣고, 아이가 칭얼거리면 입에 하나씩 넣었다. 그럴 때는 하리보 젤리가 딱이었다. 크기도 작아서 아이의 한 입에 쏙 넣어주면 오물오물 씹느라 아이는 근심걱정을 잊었다. 고마운 하리보 젤리다. 그 질긴 젤리를 이리도 잘 먹다니 신기했다.


버스에서 내리면 아이는 정류장에서 출발하는 버스와 달리기 시합을 했다.


"자, 버스가 빠른지 둘째가 빠른지 내기해 볼까" 하면서 전속력으로 어린이집 골목까지 달리기를 했다. 1분이라도 시간을 아끼는 방법이었다. 아이는 길가에 민들레 홀씨라도 보이면 후~하고 불어야 해서 3분, 강아지풀이 보이면 꺾어서 들고 가야 하니까 3분이 어김없이 지체되기 때문이었다.


3. 비 오는 날: 아이의 투정이 극에 달했다. 버스는 이미 늦었고 택시를 타면 정시에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택시가 잘 잡히지도 않는 날이었다. 투정 부리는 아이를 달래다 보니 감정과 몸이 모두 지치는 날이다. 결국 회사에 지각하면 얼굴을 들 수도 없었다.


가장 양호하지 않은 날은 바로 비 오는 날이었다. 덜 양호한 날보다 딱 30분이 모자랐다. 비 오는 날은 엄마도 늦잠을 자기 일쑤였다. 높은 습도 때문일까, 아이들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출근시간이 빠듯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둘째가 어린이집에 도착해 있고, 이제 엄마가 버스를 타야 할 시간인데 우리는 아직도 집에 있었다. 이런 날은 카카오택시도 안 잡혔다. 혹시나 해서 나가보는 택시정류장에도 택시가 없었다.


오늘은 잠투정으로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으며 징징거리는 아이를 둘러업고 대문을 나섰다. 이런 날은 어린이집 가방을 까먹고 1층까지 내려가서 다시 올라갔다 오기도 했다. 바쁘니 더 정신이 없고 놓치는 것이 많다. 아이는 벌써 1층이 떠나가라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다.


“어린이집 안 갈 거야. 조올려.”

“알았어”


아직 어린이집에 다니는 꼬꼬마 아이라서 울면 살살 달래며 안아주는 수밖에 없다. 어찌 되었든 출근해야 하는 엄마 입장에서 반대로 생각해 번쩍 안아서 데려갈 수 있게 작은 아이라서 다행이라고나 할까. 비 오는 날 엄마의 몸에 걸치는 아이템은 4가지다. 우산, 어린이집 가방, 엄마 가방, 울며 버둥거리는 아이까지이다.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어린이집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출근해서 먹을 점심도시락을 싸던 엄마 가방까지 다른 어깨에 무겁게 걸쳐있다! 남은 한 손은 엄마 어깨에 얹혀서 우비를 입고 팔다리를 바둥거리며 울고 있는 아이의 등을 붙잡고 있다. 나도 울고 싶다. 이런 채로 빗속을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신기했다.


도심지에 있는 우리 집은 다행히 택시정류장도 가깝다. 조금만 걸어가면 택시가 항상 서있었다. 하지만 비 오는 날은 서너 대 서있던 택시도 한 대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어린 아들을 데리고 택시 가까이 가면 갑자기 손님도 안 태운 택시가 쌩~하니 저 멀리 꽁무니를 내빼 버렸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입에서 욕이 나오지만 아이 때문에 속으로 삼켰다. 내가 욕을 하면 그 택시기사가 듣는 게 아니라 내 옆의 아이가 들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럴 필요는 없다.


비 오는 날, 텅 빈 택시정류장에서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아, 답이 없다. 이 지역 택시기사가 없단다. 그렇다면 조금 더 걸어서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늦었지만 버스라도 기다렸다 타야 했다. 비가 오는 날은 버스도 택시도 사람도 모두 늦었다. 그렇게 비 오는 날 버스를 타면 버스 안의 시선도 따가웠다.


‘이렇게 비 오는 날 버스도 복잡한데 아이를 데리고 만원 버스를 탄담’

‘민폐 아니야? 앞에 앉은 내가 괜히 내가 비켜줘야 하잖아.‘


이런 소리가 등 뒤에서 아이 옆에서 마구마구 들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떤 아줌마가 자리를 양보해 주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아이와 함께 앉아서 잠시 한숨을 돌렸다. 버스로 세 정거장이 지나면 어린이집에 도착한다. 그렇게 다 젖은 옷으로 어린이집에 둘째는 도착하고, 엄마는 녹초가 되어 출근했다.


택시에서 미리 팀장님께 지각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죄송하다. 출근시간에 20분이나 늦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아침마다 나는 이런 등원전쟁을 치르고 출근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려고 하던 찰나, 쓰나미 같이 업무가 밀려온다.


코끼리코, 2023, 씽씽이, 어린이집에서 그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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