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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곤 별다방 May 22. 2024

어린이집 아침간식은 오전 9시 30분까지입니다

part 17 어린이집 오전간식을 지키기 위한 출근사투

엄마는 오전 5시에 일어났다. 아이들이 잠든 새벽 시간에 짬짬이 글을 쓰기 때문이다. 아빠를 출근시키면 씻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아빠는 오전 6시 30분에 자동차로 회사에 출근해서 식사를 한다. 삼시 세끼를 제공하며 하루 24시간 부려먹는 회사에 다니기 때문이다.


아빠 회사가 직원을 24시간 부려먹는다는 이유는 미국법인에 있는 사람들까지 아빠에게 연락을 하는데, 시차 덕분에 막 잠들려고 하는 한국시각 10시에서 11시 사이 또는 곤히 잠든 새벽 2시에서 3시가 그들의 피크타임이기 때문이다. 깜깜한 밤에 카톡이 울리고, 소리대신 led불빛으로 해둔 아빠의 휴대폰이 어두운 침실에 번쩍 거릴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어두운 곳에서 번쩍이는 불빛에 전쟁이라도 난 듯한 느낌이 들어 잠들려고 뒤척이던 둘째가 무서워하곤 했다.


첫째가 일어나기 전, 오전 8시면 딸이 좋아하는 한살림 '한우불고기구운주먹밥'을 전자레인지에 2분 30초 돌려놓았다.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놔도 입 짧은 초등학생 첫째는 먹고 싶은 반찬 한 가지와 밥만 먹고 일어나서 엄마의 정성도 시들해졌다. 밥도 세 숟가락 먹으면 많이 먹는 거다. 차라리 남이 해준 밥을 주면 덜 먹더라도 엄마 마음이 덜 상했다. 냉동삼각주먹밥을 좋아하기에 여기저기서 사다 줘도 첫째의 입에 맞는 건 한살림 '한우불고기구운주먹밥'이란다. 좋아하는 건 계속 사주기로 했다. 어차피 돌려가며 다른 걸 줘봐야 돈낭비였다.


둘째는 오늘따라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났다. 스스로 일어나는 날은 1주일에 한두 번이었다. 첫째를 등교시킬 무렵 둘째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아침으로 엄마가 먹고 있는 떠먹는 요구르트를 달라고 했다. 같이 먹고 등원준비를 했다.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고 기분 좋게 등원하는 날도 있었다.


가끔은 둘째의 기상이 늦어질 때가 있었다. 오전 9시에는 현관문을 나서야 걸어가거나 버스를 타고 오전간식이 나오는 시간 전에 어린이집에 도착할 수 있는데, 9시 20분이 되어도 이 녀석이 꿈쩍을 안 했다. 아무리 깨워도 더 자겠다고만 했다. 출근해야 하는 엄마 속은 타들어갔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회사까지 대중교통으로 가야 하는데 말이다. 카카오택시를 불러서 바로 잡히는 날은 다행이었다. 10분 내로 어린이집에 도착이 가능했다. 하지만 카카오택시도 안 잡히는 날이 있었다. 버스가 바로 오면 다행인데 지도앱을 보니 버스도 벌써 지나가고 10분 이상 대기해야 했다. 길에서 오는 택시를 잡거나 택시승강장에 대기 중인 택시가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잠에 취해 어린이집 체육복으로 갈아입혀도 쿨쿨 자는 녀석을 일단 업기로 했다. 아직 4살이라 작아서 엄마가 업어서 이동이 가능하니 다행이다. 어린이집 가방에 오늘 먹을 수저가 담긴 새 수저통을 담아두었다. 신발을 비닐에 싸서 준비했다. 안방으로 들어가 잠든 둘째를 업고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택시승강장으로 아이를 둘러업고 걸어갔다. 5분 정도 걸으니 택시승강장이 나왔다. 다행히 택시 1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정을 설명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어린이집에서 회사까지도 택시로 이동해야 했다.


"경유지(어린이집)에 들렀다가 목적지(회사)로 가주실 수 있나요?"라고 택시기사에게 부탁했다. 가끔은 경유지 들르는 걸 거부하는 택시기사도 있었다. '예스'라는 답이 나오도록 택시기사의 기분을 살피며 말해야 했다. 혹시나 거절하면 다른 택시를 잡아야 했고 10분 이상 시간이 필요했다. 출근시간 20분 전이다. 5분의 시간도 부족한 현재는 내가 약자였다.


오늘은 경유지에 들렀다 목적지로 가는 경로를 택시기사가 흔쾌히 수락했다.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어느새 잠들었던 둘째는 택시에 바르게 앉아 안전벨트까지 매고 있다. 졸려서 투정 부리는 아이의 입에 '하리보젤리'를 넣어주며 진정시켰다. 가방에 간식을 챙겨 와서 다행이었다.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택시기사에게 다음 방향을 알려주며 3분 내로 이 자리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엄마는 둘째 손을 잡고 '하나, 둘' 구령을 맞춰 뛰다시피 어린이집으로 함께 달려갔다. 둘째를 무사히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시각은 오전 9시 30분이었다.


아빠(왼쪽)와 모시모시 괴물(오른쪽), 2023, 어린이집에서 그렸어


어린이집 오전간식 메뉴로는 죽 또는 과일이 나왔다. 아침식사 대용으로 배부른 식사는 아니지만 아이들 허기를 채우기에 적당한 메뉴들로 구성되었다. 5월의 오전간식메뉴는 다음과 같다. 바나나, 참치죽, 시리얼과 우유, 채소죽, 파프리카스틱과 떠먹는 요구르트, 닭죽, 멜론, 토마토, 치즈죽, 참외와 우유, 당근수프, 사과, 두부죽, 배, 참외, 바나나, 참외, 양송이수프, 당근스틱과 떠먹는 요구르트, 양파죽, 사과, 여기까지가 5월 한 달간 먹게 되는 어린이집 오전간식이었다. 제철과일과 다양한 재료로 만든 죽이 눈에 띄었다.


세 살까지 가정보육을 하다가 어린이집에 간 첫째 딸보다 첫돌이 지나서 바로 어린이집에 간 둘째 아들이 같은 나이대 누나의 몸무게보다 훨씬 더 나가며 또래보다 빠르게 자라는 걸 보면 어린이집 식사나 간식이 부실할 거라는 생각은 많이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이들 개인 성향 차이도 있겠지만 육아와 살림에 찌들어 이유식 이후로 유아식에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던 나의 식단 때문에 첫째가 작은 건가 생각할 때도 있었다.


주변에 믿고 맡길 수 있는 시립어린이집을 알았다면 첫째도 바로 돌 지나고 어린이집에 다니고 첫째를 키우던 나도 조금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다. 무얼 위해 첫째 때 18개월까지 모유수유를 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나 싶었다. 내 뒤를 잇는 육아동지들은 문명의 이기와 주변의 도구들을 엄마와 아이의 환경에 맞춰 적절히 잘 이용하는 육아로 윤택한 삶을 즐기기를 바랄 뿐이다. 육아는 사실 아이와 엄마가 맞춰 나가는 과정이기에 힘들 수밖에 없는 시간이지만 서로를 알게 되면서 어른인 나도 돌아보게 되는 값진 시간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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