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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저자 Sep 29. 2021

[여름호] 첫째주, 은희 : 파랑의 고독

여름호 첫번째 주제 : 파도

속이 울렁거린다.

저 깊은 바닷속에 들어가면 거센 파도가 흔적 없이 사라져 오직 고요함만이 나를 뒤 감을 걸 알지만, 좀처럼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프리다이빙을 배우기 전, 누군가는 그 고요함이 좋아서 다이빙을 한다던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오로지 바다의 소리만 들리는 순간, 그 순간을 계속 느끼고 싶어 프리다이빙을 한다고. 처음 고요함을 느꼈을 때, 잘 이해가 안 되던 그 사람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소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찾아온 고요함은 너무나도 이상했고, 주체할 수 없던 몸의 떨림을 가라앉혔다. 차디찬 물속이 따뜻할 리도 없는데 희한하게 포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요함은 나를 옥죄여왔고, 오로지 숨을 쉬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들어찼다.

이후에도 나는 바닷속에 들어가기를 망설였다. 매번 실패하는 이퀄라이징으로 찾아오는 귀의 통증 또한 하나의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그 고요함이 두려워서였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요함이, 오직 파랑만 가득한 세상에서 혼자 남겨진 그 고독함이 두려워서.


어렸을 때부터 나는 바다를 무서워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가 무서웠고, 몰아치는 파도는 나를 삼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살아오면서 웬만하면 바다와 가까이하려 하지 않던 내가 다이빙을 배우기 시작한 건 그저 '남들도 배우니까'라는 별거 없는 이유에서였다.

친해질 수 있을 줄 알았던 바다는 꽤 어려운 존재였고, 바다에 나갈 때마다 바닷속에 들어가는 시간보다는 두둥실 파도에 몸을 맡겨 바닷속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아름다운 산호들과 물고기들이 펼쳐져있는 저 신비로운 풍경이, 어째서 내 몸을 바다에 맡기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지. 오로지 깊디깊은 파랑만이 주변을 삼켜버리는지. 속이 울렁거린다. 웃기게도 이 울렁거림이 살아있다는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다의 안과 밖이 나와 타인을 이루는 것이라면, 저 고요함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때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난 아직은 혼자가 두려운 영혼이 아닐까, 라고. 혼자라는 고독감을 온전히 즐길 수 없는 존재. 파도라는 타인과의 관계에 이리저리 휩쓸리면서도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는 그런 존재. 때론 잔잔한 파도에 위로받고 때론 거센 파도에 상처 받으면서, 파도가 건네는 울렁거림에 안도하는 그런 나약한 존재.


여전히 나는, 저 깊은 바다가 두렵다.



from.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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