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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저자 Oct 10. 2021

[여름호] 셋째주, 김라면 : 창가의 고양이

여름호 세번째 주제 : free(자유주제)

 정방형의 원룸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둠은 원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윤은 침대에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다. 차량 헤드라이트 불빛을 타고 버티컬의 그림자가 방 안을 잠시 들여다보고 지나갔다. 투둑. 빗소리가 들려왔다. 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즈를 처음 본 것은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었다. 윤은 익숙했던 걸음을 따라갔다. 오랜만의 움직임에 골목에 잘못들어서기도 했지만, 발걸음은 되돌아나오길 반복하며 윤을 그 골목으로 이끌었다. 빗줄기가 거세졌다. 쓰레기더미가 눈에 보였다. 그날 이후 새로이 쌓인 것들이었다. 윤은 희고 노란 쓰레기봉투 앞에 한참을 서있었다. 봉투 사이로 오물들이 빗물에 씻겨 내려왔다. 신발은 이미 물들어있었다. 윤은 우산을 내려놨다. 거칠어진 빗방울이 온몸을 할퀴었다. 따끔한 고통에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떠올랐다.



 윤에게 집은 그저 ‘공간’일 뿐이었다. 어떠한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텅 빈 공간. 사실 혐오에 가까웠다. 공포일지도. 누구도 환영해주지 않는, 적막의 공간이 윤은 싫었다. 열일곱 살. 윤이 이 작은 원룸 일층에 자리를 잡은 나이었다. 어머니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릴 때 윤을 두고 떠났다. 아버지는 아침에는 어머니를 찾으러 돌아다니고, 그림자가 윤을 돌볼 때 돌아와 술을 마셨다. 윤은 아침에는 깨진 술병을 치우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밤에는 더 깊은 어둠을 찾아 숨었다. 그래야 온전히 날을 지새울 수 있었으니까. 익숙해질 법한 공간을 벗어난 것이, 오 년전. 호시탐탐 그를 빼낼 기회만 엿보던 외할머니의 도움으로 원룸을 계약했다. 할머니는 재작년 별세하셨으니, 윤은 아주 혼자 남았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옷장 속 숨죽여 있던 윤은 그저 구급차의 소리를 따라가려고 했다. 시끄러운 소리를 따라가자. 겨우 그 이유때문에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골목을 쏘다녔다. 어느 누가 듣는다면 비웃을 말이지만, 자정을 넘긴 그 시간의 골목은 분주했다. 회식을 마친 회사원들이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발걸음 소리, 야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의 소리, 급하게 달려가는 구급차 소리, 그리고… 숨어있던 존재들이 움직이는 소리.


  구급차를 쫓다 골목에서 길을 잃은 그가 본 것은 고양이였다. 낮시간에는 볼 수 없던 고양이. 처음 본 고양이는 양말을 신은 듯 발부분만 하얀, 검은 고양이었다. 노란색 눈이 어둠 속에서 그를 한참이나 주시했다. 그는 그 섬짓한 눈빛이 좋았다. 다음날엔 그를 찾기 위해 골목으로 나갔다.


 그날 윤의 앞에 나타난 것은 다리를 절뚝거리는, 꼬리가 아주 뭉툭한 온갖색이 섞인 기묘한 고양이었다. 고양이는 그를 경계하는 듯 몇번이고 고개짓으로 주변을 살피다 절뚝이며 멀어졌다. 그렇게 며칠을 골목에서 지냈다.


 ‘양말이’, ‘카오스’, ‘달마시안(달마시안같은 점박이 무늬)’, ‘고등어’, ‘깻잎(앞머리부분만 고등어 무늬)’……. 윤은 마음 속으로 조용히 고양이들에게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천천히 골목을 사랑하게 되었다.



  분주한 골목의 삶들은 윤과 달리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동차 아래 숨어 두 눈을 끔뻑일뿐이었다. 새침하게 담장 너머로 사라지는 건 물론, 한 대 맞지나 않으면 정말 다행이었다. 낮 시간에도 잠깐 골목을 어슬렁거리다, 한 여자가 길죽하게 생긴 무언가를 고양이에게 건네주는 모습을 봤다. ‘츄르’. 고양이용 간식이었다. 윤은 당장 마트에서 간식을 구입해 손에 쥐었다. 그리고 자동차 아래의 깻잎이에게 츄르를 들이밀고 있었다.


“거, 젊은 사람이! 차 밑에서 도대체 뭐하는 거요!”


 뒤쪽에서 호통이 들려왔다. 윤은 바닥에 납작하게 붙였던 몸을 일으켰다. 가만히 눈을 내리고 멈칫거리자 욕설이 들려왔다.


“내가 진짜! 안그래도 시끄러운데, 이놈이고, 저놈이고 괭이새끼소리야!”


 남자는 한참이고 윤에게 욕설을 쏟아냈다. 윤은 어설프게 뒷걸음질치다 이내 몸을 돌려 달렸다. 한참을 달리고 달려서, 원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숨었다. 달라붙은 과거의 망령처럼 시커먼 어둠 속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덜덜 떨었다. 비속어로 점철된 말들이 귓가에 떠다녔다. 눈을 감았다. 이또한 지나갈 일이라는 사실을, 그도 알고는 있었다.



 투둑. 잠깐 잠이 들었던가. 빗소리가 들려왔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는 너무도 경쾌해서 윤의 온몸을 덮은 어둠을 씻어내릴 것만 같았다. 아직 밤은 지나가지 않았다. 윤은 우산을 챙겨들었다. 이전보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뗐다.


 찰방찰방.


 걸음을 내딛는 곳마다 물결이 쳤다. 비는 거세게 바닥에 부딪혔다. 그 여파에 윤의 바짓단이 질척해졌다. 그는 아랑곳않고, 허리를 숙여 차 아래, 다리 아래, 골목 골목을 찾아다녔다. 캬앙! 윤이 서있던 뒷쪽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퍼졌다. 고양이다. 윤은 몸을 돌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윤의 앞으로 작은 고양이 한마리가 쏜살같이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카맣고 덩치가 큰 녀석 하나가 작은 고양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윤은 다시 등을 돌렸다. 작은 고양이를 찾아야 했다. 멀리 가지 못했을 것 같아, 주변 자동차 아래를 기웃거렸다. 커다란 고양이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윤은 골목을 헤집은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아까의 그 작은 고양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동차와 담벼락 사이, 그 좁은 틈새에서 오들오들 떠는 녀석은, 윤을 보고도 떨었다. 빗방울 때문인지 반가워서인지 두 눈을 끔뻑끔뻑거렸다.


 주머니를 뒤적이자, 언제 넣어놨는 지 모를 간식 하나가 나왔다. 여러 번 다른 고양이들에게 들이대다 얻어맞았던 기억이 떠올라 주저하다 결국, 자동차 아래 간식을 놓아두었다. 고양이는 윤이 츄르를 바닥에 짜줄때도 멀리서 입맛을 다시더니 그가 한발짝 멀어지자 마자 금세 다가와 바닥을 햝았다. 


 그리고 그에게 인사라도 하듯 두 눈을 깜박. 윤은 그를 데려가기라도 할 듯 두 손은 뻗지만, 그 순간 치즈는 고작 몇 걸음으로 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윤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나와 고양이들을 찾았다. 자연스레 윤의 시선은 자동차 아래로 향했다. 고개를 숙이고 주변을 살폈다. 늘 보던 고양이에겐 사료를 놓아주고, 처음 보는 고양이에게는 이름을 붙여줬다. 호의를 경계하던 녀석들이 그를 때리는 일은 하나 둘 줄어갔다.


 하지만 윤은, 딱 한마리만은 다시 볼 수 없었다. 비 오는 날의 치즈.


 설핏 닮은 고양이를 보기라도 하면 바닥에 납작 엎드려 고양이를 불러댔지만, 대부분 닮거나 다른 고양이였다. 배와 발목까지만 흰 샛노란 치즈고양이. 윤은 그가 정말 신경쓰였지만, 나타나지 않는 고양이를 찾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태양이 내리쬐는 어느날. 윤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창문 옆 침대에 누워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다른 날보다 강렬한 햇볕이 커튼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탓에 잠을 설쳤기때문이었다. 오늘은 잠을 자기 그른 걸까. 일찍 나가서 주변을 살필까 고민하던 중에, 창틀에 툭,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툭. 무언가가 창문을 치는 소리. 윤은 커튼을 살살 걷어냈다. 창가에 보이는 것은, 치즈. 치즈 고양이.


 그가 그토록 찾던 치즈가 그의 창문 위에 앉아 발로 창문을 툭툭 두드리고 있었다. 윤은 다급하게 선반을 뒤적였다. 줄 만한 것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제 남은 간식들을 길고양이가 보이는 족족 하나씩 준 탓이었다. 윤은 창문을 바라보며 당부했다. 가지마. 여기 있어. 여기 있으면 내가 밥을 줄게. 고양이가 알아들을 리 만무하지만, 윤은 뒤돌아보며 연신 당부를 했다.


 그리고 뛰었다. 뛰고 뛰어서 편의점에서 사료와 간식거리를 사고 다시 뛰었다. 치즈는 그의 당부를 알아들은 것 마냥 그자리 그곳에 앉아있었다. 창문을 툭 치기도 하고, 꼬리를 치켜세우기도 하고. 윤은 창문을 열었다. 치즈는 가뿐하게 창문을 넘어들어왔다. 야아옹. 긴 울음에 윤은 절로 초조해졌다. 아, 알겠어. 알겠어. 대답하며 비닐봉지를 뒤적여 작은 사료 봉지 하나를 꺼내들었다. 윗부분을 뜯기도 전에 고양이가 다가와 고개를 가져다댔다. 윤은 놀라 사료를 바닥에 쏟았다. 사료 알갱이들은 통통 튀어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치즈는 아랑곳않고 사료 알갱이 하나 하나를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윤은 깜짝 놀란 몸을 추스르고, 치즈를 가만히 바라봤다.


 오랜만에 본 고양이는 야위어있었다. 조금 자랐고, 여전한 녹색 눈이 마주칠때마다 끔뻑였다. 나, 간택된걸까. 윤은 작은 소망을 담아 치즈에게 두 손을 뻗었다. 하지만 치즈는 지난 날에 그랬던 것처럼, 두 눈을 깜박이고는 다시 창문 밖으로 달아났다.


그 후로 고양이는 그를 종종 찾아왔다. 그 시간이 불규칙해서, 윤은 바깥으로 나가는 일을 관두었다. 다른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일은, 밤 시간 잠깐으로 족했다. 윤은 방 안에서 치즈를 기다렸다.


 어느 날에는 아침에, 또 다른 날에는 오후에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톡톡. 윤은 집 안에 사료를 쌓아뒀다. 치즈가 와서 얼마든지 먹을 수 있도록. 창문도 열어뒀다.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한밤 중에 치즈가 그를 찾는 일도 있었다. 창문 밖에서 야옹, 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창문을 열었더니, 그 아래에 얌전히 앉아 울음을 터뜨린 일도 있었다. 하지만 윤의 곁에서 머물지는 않았다. 항상 밥만 먹고 치즈는 떠났다. 그저 그것으로 되었다는 듯.


 그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시간을 줄이고, 집에 머무는 시간을 늘렸다. 조금 더 안정적인 곳에서 치즈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번듯한 직장이 필요했고, 입사하기 위해서는 멈추었던 공부가 필요했다. 그래. 하면 될거다. 윤은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며 마음을 붙잡았다.


  그가 흔들릴 때마다 치즈는 한번 씩 윤을 찾아와 그를 다독였다. 여전히 그에게 붙집히지도, 오래 머물지도 않았지만 조금더 빈번하게 그를 찾아왔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다.

 치즈가 나타나지 않은지는 벌써 보름을 넘기고 있었다. 


  윤은 집에서 치즈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양이가 매일 그를 찾아오는 것은 아니기에 하루 정도는 기다릴 수 있었다. 이틀이 되고, 삼일이 되자 윤은 걱정이 되었다. 치즈를 찾아나서야 할까? 그렇게 고민만 하다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치즈를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무겁고 세찬 비가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낮 시간임에도 하늘은 어두웠다. 아르바이트를 가야할 시간이 다가와 윤은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출발하면, 골목 여기저기를 돌아보다 편의점에 갈 수 있었다. 혹시 또 모를 일이다. 그날 밤처럼 커다란 고양이들에게 내몰려 구석에서 온몸을 떨고 있을지.


 걸음은 절로 초조해졌다. 빗소리는 그 초조함의 소리조차 묻어버리려는 듯 더욱더 거세졌다. 빨라진 걸음은 차 밑, 골목 틈을 구석구석 살펴보게끔 이끌었지만, 앞을 가린 빗줄기가 어떠한 것도 선명히 보여주지 않았다. 윤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뛰어가지 않으면 아르바이트에 늦을 참이었다.


 한 곳만 더. 제발, 한 곳만 더.


 걱정은 윤을 자꾸만 골목으로 이끌었다. 빗줄기가 옅어지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교대 시간은 이미 지나있었고, 지금 들여다보는 골목이 정말 마지막이었다. 이 일대를 몇바퀴를 돌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여기만, 여기만… 하다보니 다시 또 같은 골목을 헤매고 있었다.


 그때, 윤의 눈에 무언가 잡혔다.


 투둑. 툭. 가늘어진 비가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검은 쓰레기봉투 사이로 무언가 비어져나와있었다. 얼핏 솜뭉치같은 것이, 인형같기도 하고, 베개같기도 했다.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줄무늬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가늘고 긴 무언가가 늘어져있었다. 봉투의 아래에는, 웅덩이의 물과는 다른 또 다른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비는 그쳐갔다. 그가 쓰레기봉투를 들여다볼 기회를 주겠다는 듯이.


 [오고 계시는 거 맞죠?]


 윤의 손에 들린 휴대폰이 그를 독촉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는… 뒤돌아섰다. 아르바이트에 늦었다. 쓰레기는 나중에 확인해도 될 일이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윤은 다시 골목을 헤집었다. 비는 이미 그려있었고, 여전히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깻잎, 젖소… 다른 고양이들이 뛰어다니는 윤을 피해 도망쳤다.


  낮처럼 골목을 몇바퀴나 돌고나서야 윤은, 아까 그 자리로 돌아왔다. 쓰레기 봉투는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달. 정방형의 원룸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어둠이었지만, 새로운 두려움을 몰고 그에게 다시 돌아왔다. 빗소리가 들려왔다. 세차게 내릴 예정이라는 일기예보는 이미 확인한 상태였다. 윤은 우산을 챙겨들었다. 익숙한 걸음을 옮겼다. 다리는 그때의 그 쓰레기봉투 앞으로 다가갔다. 윤은 희고 노란 쓰레기 더미 앞에 한참을 서있었다. 쓰레기에서 나온 지저분한 물기가 그의 신발을 잠식했다. 윤은 우산을 내려놨다. 얼른 나타나서 다시 비를 피하기를 바라며. 떨어지는 빗줄기가 따가웠다. 



<끝>.



from.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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