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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자연 Jha Eon Haa Apr 30. 2023

외관 - 예브게니 오네긴을 제외하고

실질과 형식이 다를 때 해결방법


법치주의는 형식(혹은 외관)에 기대어 작동한다. 실질적인 내용은 중요하 지만, 이를 모두 따져가며 일을 처리할 경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렵다. 그리고 법치주의에서는 절차적 안정성도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대로 일이 처리되는 경우가 생긴다. 외관과 실질이 일치하면 문제가 없는데, 다를 때 여러 갈등이 생긴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법학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우선 법학에서 외관이란 무엇일까?


1) 외관에 기대어 작동하는 법치주의 - 이름


법학에서는 명의, 이름을 중요한 외관으로 다룬다. 우리 모두는 이름을 갖고, 이름을 걸고 많은 일을 한다. 이름은 물건의 주인이 누구인지 결정하고, 소송에서 당사자를 판단할 때 기준이 된다. 또한 책임 소재를 가릴 때도 누구의 이름으로 그 일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이들은 앞의 효과들을 노리고 타인의 이름을 빌려서 행동하기도 한다.


사람 뿐만 아니라 회사도 '상호'라는 이름을 갖는다. 기업의 물적 요소로서 상호는 기업을 운영하려는 자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등기할 수 있다. 그리고 상호권자는 다른 사람이 상호에 부여된 사회적 신용이나 경제적 가치를 함부로 사용할 때 이를 저지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사업이 잘 되어서 브랜드에 큰 가치가 생기면 상호•상표 자체를 상품처럼 거래할 수 있으며, 해당 상행위를 가맹업이라고 한다.


2) 외관과 실질이 다를 때 해결방법


실질은 알맹이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외관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라서 중요하다. 그렇다면 실질과 외관이 일치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해결할까? 그 방법으로 다음 네 가지가 있다.


  (1) 실질을 외관보다 우선하는 방법

  (2) 외관을 실질보다 우선하는 방법

  (3) 실질을 우선하나, 외관을 믿고 행동한 제3자가 있을 때에는 외관을 우선하는 방법

  (4) 실질과 외관이 일치하는 만큼만 효력을 인정는 방법


외관과 실질이 불일치하여 분쟁이 발생했을 때, 각각의 경우에 가장 적절한 방법을 선택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로스쿨에서는 세번째 방법을 중요하게 배운다.


(1)  외관 < 실질


외관과 실질이 다를 때, 실질의 내용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① 외관으로 인해 혼동의 여지가 없을 때에는 계약의 실질에 따라 그 내용을 해석한다.


우선 실질과 다른 외관이 있더라도, 외관으로 인해 혼동의 여지가 없을 때에는 실질에 따라 문제를 해결한다. 민법의 영역에서 이를 오표시무해의 원칙이라 한다. 표시를 잘못해도 계약의 효력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법원 2003. 6. 10., 선고, 2002다59351, 판결]

부동산등기부상 건물의 표제부에 '에이(A)동'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연립주택의 임차인이 전입신고를 함에 있어 주소지를 '가동'으로 신고하였으나 주소지 대지 위에는 2개 동의 연립주택 외에는 다른 건물이 전혀 없고, 그 2개 동도 층당 세대수가 한 동은 4세대씩, 다른 동은 6세대씩으로서 크기가 달라서 외관상 혼동의 여지가 없으며, 실제 건물 외벽에는 '가동', '나동'으로 표기되어 사회생활상 그렇게 호칭되어 온 경우, 사회통념상 '가동', '나동', '에이동', '비동'은 표시 순서에 따라 각각 같은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인식될 여지가 있고, 더욱이 경매기록에서 경매목적물의 표시가 '에이동'과 '가동'으로 병기되어 있었던 이상, 경매가 진행되면서 낙찰인을 포함하여 입찰에 참가하고자 한 사람들로서도 위 임대차를 대항력 있는 임대차로 인식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는 이유로 임차인의 주민등록이 임대차의 공시방법으로 유효하다.


② 외관이 명백하게 잘못되었거나 불가능할 경우 실질을 우선한다.


 예를 들어 재판절차에서 명백히 잘못된 기록일 때에는 올바른 내용에 따라 그 실질을 파악한다.


[대법원 1995. 4. 14., 선고, 95도110, 판결]

형사소송법 제56조는 “공판기일의 소송절차로서 공판조서에 기재된 것은 그 조서만으로써 증명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소송절차에 관한 사실은 공판조서에 기재된 대로 공판절차가 진행된 것으로 증명되고 다른 자료에 의한 반증은 허용되지 아니하나, 공판조서의 기재가 소송기록상 명백한 오기인 경우에는 공판조서는 그 올바른 내용에 따라 증명력을 가진다.


또 다른 예로 (외관상) 법률상 혼인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상태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된다. 그런 사실상 남편의 자녀를 임신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불가능한 경우, 친자 추정이 번복되고 실제의 혈육관계에 따라 친자관계가 설정된다. 이 때 '명백히 불가능한 경우'를 매우 좁게 해석한다.


[대법원 2019. 10. 23., 선고, 2016므2510, 전원합의체 판결]

-아내가 혼인 중 남편이 아닌 제3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인공수정으로 임신한 자녀를 출산한 경우, 출생한 자녀가 남편의 자녀로 추정되는지 여부

-혼인 중 아내가 임신하여 출산한 자녀가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진 경우에도 친생추정이 미치는지 여부


(2) 외관 > 실질


두번째 방법으로는 외관을 실질보다 우선하여 해결하는 방법이다.


① 절차적 측면이 중요하거나 현실적으로 실질적 의미를 파악할 방법이 없을 때 외관을 실질보다 우선한다.


우선 "공탁(供託)"이란 돈이나 물건을 국가기관(법원의 공탁소)에 맡김으로써 일정한 법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제도이다. 공탁은 안정성이 중시되는 집행 절차와 관련되므로, 피공탁자는 공탁서의 기재로 결정된다.


[대법원 2006. 8. 25., 선고, 2005다67476, 판결]

변제공탁의 공탁물출급청구권자는 피공탁자 또는 그 승계인이고 피공탁자는 공탁서의 기재에 의하여 형식적으로 결정되므로, 실체법상의 채권자라고 하더라도 피공탁자로 지정되어 있지 않으면 공탁물출급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


또한 이혼에서 당사자들에게 이혼의 의사가 있는지를 판단할 때 형식적으로 ㉠이혼의사를 확인하고, ㉡이혼신고가 있는지를 따져본다. 그래서 부부 중 한 사람이 상대방을 속여서 이혼하기로 합의하고 이혼신고를 하더라도 그 이혼는 유효하다. 이혼신고라는 행위가 갖는 의미가 무겁고, 진정한 이혼의사를 가려내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② 실질과 다른 외관을 토대로 상황이 많이 진전되었을 때, 그 외관을 우선한다.


나아가 외관에 기반하여 상황이 많이 진전되었을 때 그 외관은 또 하나의 실질이 되어 작동한다. 가령 타인의 토지라 하더라도, 그 토지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20년동안 평화롭게 점유하면, 그 땅은 점유한 사람의 것이 된다. 그 땅은 20년 동안이나 점유한 사람의 것처럼 여겨지며 많은 법률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민법 제245조(점유로 인한 부동산소유권의 취득기간)

①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하는 자는 등기함으로써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


또 다른 예로 범죄자가 수사 중 본인 이름 대신 타인의 이름을 사용하였다면, 이를 토대로 제기된 기소는 위법하다. 그런데 이를 간과하고 이름이 도용된 사람에 대해 형사재판이 이미 진행된 경우, 그 외관상 피고인의 지위를 인정하여 억울한 사람을 위해 공소기각의 판결을 내린다.


[대법원 1997. 11. 28., 선고, 97도2215, 판결]

피모용자가 약식명령을 송달받고 이에 대하여 정식재판의 청구를 하여 피모용자를 상대로 심리를 하는 과정에서 성명모용 사실이 발각되고 검사가 공소장을 정정하는 등 사실상의 소송계속이 발생하고 형식상 또는 외관상 피고인의 지위를 갖게 된 경우에는 법원으로서는 피모용자에게 적법한 공소의 제기가 없었음을 밝혀주는 의미에서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2호를 유추적용하여 공소기각의 판결을 함으로써 피모용자의 불안정한 지위를 명확히 해소해 주어야 할 것이다.


(3) 외관을 믿고 행동한 제3자가 있을 때 외관을 우선하는 방법


 세 번째 방법은 원칙적으로 실질을 우선하지만, 외관을 신뢰하고 행동한 제3자가 있을 때에는 외관을 우선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①그럴듯한 외관을 ②제3자가 합당한 사정 때문에 믿은 경우에 적용된다.


① 그럴듯한 외관


 실제와 외관이 일치하지 않는 상태는 보통 허접하다. 물론 실질과 형식의 차이를 일부로 의도하고, 이 차이가 아름답거나 주제전달에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 실질과 형식이 어울릴 때, 딱 맞아 떨어질 때가 좋고 문제가 없다.


예브게니 오네긴, 푸쉬킨. 시로 쓰여진 소설. 아름다운 서사가 단정한 형식에 담긴 작품.


 그러나 그 불일치 상태를 만들어낸 사람이 각별한 공을 들인 경우, 그 외관은 사람들이 신뢰할만한 것이 된다. 그 외관을 믿어버린 자보다도 그런 외관을 만들어내고 방치한 사람의 책임이 더 크다. 세 번째 방법은 실질을 원칙적으로 우선하며, 엉터리 외관을 쉽게 믿은 경우는 보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럴듯한 외관의 경우, 이를 신뢰하여 적법한 행을 한 자를 보호한다.


[대법원 1985. 9. 10., 선고, 85도1501, 판결]

피고인이 위조한 것이라는 가계수표가 발행인의 날인이 없는 것이라면 이는 일반인이 진정으로 오신할 정도의 형식과 외관을 갖춘 수표라 할 수 없어 부수법 제5조 소정의 수표위조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


② 외관에 대한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을 경우


나아가 외관에 대해 신뢰를 하고 행동한 사람이 있을 때, 실질과 다른 외관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으면 그 신뢰는 보호받아야 한다. 따라서 실질보다 외관을 우선한다.


가령,


[대법원 1995. 1. 24., 선고, 93다32200, 판결]

인지판결이 확정되기 전의 정당한 상속인이 채무자에 대하여 소를 제기하고 승소판결까지 받았다면, 그러한 표현상속인에 대한 채무자의 변제는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로서 적법하다.


채무자는 정당한 채권자에게 변제를 해야 한다. 그런데 영수증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처럼 외관상 채권자로 보이고, 채권자로 오해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평가할 수 있을 때, 채권자처럼 보였던 사람에 대한 변제도 유효한 것으로 인정한다. 이를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라고 한다(민법 제210조).


위의 판결에서, ㄱ) 채무자가 혼외자가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ㄴ)상속인이 채무자에 대하여 소를 제기하고 나아가 재판에서 승소까지 하였다면, 채무자는 상속인이 진정한 채권자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속인에 대한 변제는 적법하고, 후에 혼외자가 인지판결을 받고(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 상속인이 실제 채권자가 아니었음이 밝혀지더라도, 채무자의 변제는 유효하다.  


공법과 관련된 예를 살펴보면, 실질적으로 공무원의 행위가 아니더라도 외관상 공무집행으로 볼 수 있으면 공무원의 행위로 인정한다.


[대법원 2005. 1. 14., 선고, 2004다26805, 판결]

울산세관의 통관지원과에서 인사업무를 담당하면서 울산세관 공무원들의 공무원증 및 재직증명서 발급업무를 하는 공무원인 소외인이 울산세관의 다른 공무원의 공무원증 등을 위조하는 행위는 비록 그것이 실질적으로는 직무행위에 속하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공무원증과 재직증명서를 발급하는 행위로서 직무집행으로 보여지므로 결국 소외인의 공무원증 등 위조행위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소정의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함에 당하여 한 행위로 인정된다.


③ 표현의 법리 : 표현대리, 표현대표이사, 표현지배인 등


표현의 법리란 1)실질과 다른 외관이 존재하고, 2)그런 외관이 존재하게 된 데 과실이 있고, 3)제3자가 그 외관을 믿고 어떤 행위를 하였을 때, 그 행위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실질과 다른 외관'이란 대리인/대표자가 정당한 대리권 없이 본인을 위한 행위를 한 경우를 뜻한다.


우선 민법상 표현대리를 자세히 살펴보자.


원칙적으로 사람은 본인이 스스로 한 행동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 그런데 타인에게 특정한 권리를 수여하고(수권행위), 수권을 받은 자가(대리인) ⓐ대리권의 범위 내에서 ⓑ본인을 위한 것임을 표시 (제114조) 하고 행위 하면, 그 행위의 효력은 본인에게 미치게 된다. 이를 대리행위라 한다.


한편 대리인이 권한 없이 본인을 위한 행동을 하면 그 행위는 보통 본인에게 미치지 않는다. 그런데 본인에게 대리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잘못이 있을 수 있다. 또 권한이 없는 대리인의 행동을 믿고 법률행위를 한 상대방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본인은 대리인제도를 통해 더 많은 법률행위를 자유롭게 하는 이점을 누리므로, 해당 제도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신경써야 한다.


이에 권한이 없는 대리인을 믿은 제3자보다 본인에게 페널티를 돌리는 표현대리 법리가 작동된다. 대리인에게 정당한 권한이 있는 것 같은 외관이 존재했고, 제3자가 그 외관을 믿고 법률행위를 했고, 제3자의 신뢰에 수긍할만한 사정이 있다면, 권한 없는 대리인의 행위가 본인에게 미친다.


민법상 표현대리에는 민법 제125조, 제126조, 그리고 제129조의 표현대리 세 가지가 있다. 우선 제125조의 표현대리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대리권 수여의 표시, ㉡표시된 대리권의 범위 내에서 한 행위 ㉢상대방의 선의 • 무과실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즉 본인이 대리권 수여의 표시를 했지만 실제로 대리인에게 권한이 없을 때, 대리인이 표시된 권한 내의 행동을 했다면 본인이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제126조의 표현대리의 성립에는 ㉠기본대리권의 존재, ㉡권한을 넘은 표현대리행위의 존재, ㉢상대방의 정당한 이유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대리인이 기본대리권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그 권리의 범위를 넘은 행동을 했고, 이에 대한 상대방의 신뢰가 정당할 때, 본인이 대리인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129조의 표현대리의 성립요건으로는 ㉠대리권의 소멸, ㉡대리인이 권한 내의 행위를 할 것, ㉢상대방의 선의 • 무과실이 있다. 대리인이 대리권을 갖고 있었으나 소멸된 상태에서 이전의 권리를 행사한 경우, 상대방이 대리권 소멸에 대해 과실 없이 알지 못하였다면 본인에게 그 행위의 효력을 인정한다.


표현의 법리는 상법에서도 작동한다. 법인은 상법상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주체이지만 개념상의 존재이므로, 실질적인 법률행위는 주주가 모인 주주총회나 대표이사 같은 사람이 한다. 그런데 법인을 대표하여 행위하는 자가 대표이사나 이사와 같은 명칭을 사용하면서, 사적 이익이나 기타 다른 목적을 갖고 행동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이 역시 표현의 법리를 통해 해결한다.


주식회사의 경우 표현대표이사의 법리가 적용된다. 상법 제395조에 따르면 회사의 허락을 받고 명칭을 사용한 자의 행위에 대하여, 그 사람이 회사를 대표할 권한이 없는 경우에도 회사는 선의의 제3자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해당 법리가 적용되려면 ㉠외관의 존재, ㉡외관 형성에 대한 회사의 귀책사유, ㉢외관에 대한 제3자의 신뢰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회사를 대표할 만한 권한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만한 명칭이 사용되어야 하고, 회사가 그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였어야 한다. 나아가 외관을 신뢰한 제3자가 무권한의 사정을 몰랐거나 중과실이 없어야 한다. 여기서 중과실이란 이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대리인이 권한이 없는 사정을 알 수 있었으며, 공평의 관점에서 제3자보호 필요성이 없는 경우를 뜻한다.


(4) 실질과 외관이 일치하는 만큼만 효력을 인정하는 방법


실질과 외관의 불일치를 해결하는 마지막 방법은, 두 가지가 일치하는 만큼만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알아보기 전에 일부 무효의 법리를 먼저 알아보자.


민법 제137조에 의하면 법률행위의 일부분이 무효인 때에는 원칙적으로 그 전부를 무효로 한다. 다만 일부분이라도 그 효력을 인정할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유효한 부분만 효력을 인정한다.


민법 제137조(법률행위의 일부무효)

법률행위의 일부분이 무효인 때에는 그 전부를 무효로 한다. 그러나 그 무효 부분이 없더라도 법률행위를 하였을 것이라고 인정될 때에는 나머지 부분은 무효가 되지 아니한다.


즉 민법에서는 법률행위의 일부가 무효더라도 그 전부를 무효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몇몇의 경우에는 형식과 외관이 일치하는 만큼 그 효력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공유자 중 1인이 자신의 공유지분보다 더 큰 지분을 매도하였을 때, 처분행위를 한 사람의 지분 범위 내에서 그 매매가 유효하다. 공유란 물건을 소유하는 방식 중 하나인데, 여러 사람이 하나의 물건 또는 부동산을 지분으로 나누어 함께 소유하는 것이다. 공유자는 자신의 지분만큼만 처분할 수 있다. 만약 그 지분을 넘어 공유물을 처분하는 경우 처분자의 지분만큼만 효력이 발생하고 나머지는 무효이다. 


[대법원 2008. 4. 24., 선고, 2008다 5073, 판결]

공유자 중 1인이 다른 공유자의 동의 없이 공유 토지 전부를 매도하여 타인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진 경우, 그 등기의 효력(=처분공유자의 공유지분 범위 내에서 유효)


3) 명의신탁의 법리 - 땅의 실제 주인과 이름표가 다를 때


외관 • 형식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소유권'의 귀속 나타낸다는 것이다. 특히 부동산은 소유물 중 큰 가치를 지닌 것인데, 부동산의 소유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고자 등기라는 체계에 이름을 남긴다. 땅의 주인과 그 땅의 등기상 명의인이 동일한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땅의 실질적 소유자와 부동산등기 상 명의자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명의신탁이라고 한다. 명의신탁이란 실질적으로 그 땅의 소유권은 신탁자가 가지면서 단지 명의만 수탁자에게 맡겨두는 것이다. 명의신탁자는 부동산을 소유하면서 명의를 남에게 맡겨둔 사람을 의미하고, 명의수탁자는 부동산명의만을 맡아둔 사람이다.


명의신탁은 일제강점기 당시 토지 및 임야조사에서, 종중 소유의 재산을 종중 명의로 사정받을 수 없어 종중원 명의로 해둔 데서 비롯되었다. 판례는 명의신탁이 민법상의 신탁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1987. 5. 12., 선고, 86다카2653, 판결]

일반적으로 명의신탁이라 함은 그 대내적 관계에서는 신탁자가 소유권을 보유하고 이를 관리 수익하면서 단지 공부상의 소유명의만을 수탁자로 하여 두는 것으로서 그 명의신탁의 대내적인 법률관계는 신탁자와 수탁자 사이에 체결된 일종의 신탁 체결에 의하여 성립되는 것이다.


현대에도 부동산명의를 타인에게 맡겨두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는 보통 그 땅이 외관상 타인의 것처럼 보여야 하는 경우이다. 특히 투기, 탈세 등 불법적인 경우가 많다. 이런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부동산실명법을 만들어서 부동산소유의 외관과 실질의 차이를 해결한다.


해당 법에서는 실질과 외관이 다를 때 사용되는 위 네 가지 방법이 모두 적용된다. 이를 통해 실제의 부동산 소유관계와 등기 명의상 차이가 생긴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등기상의 명의를 신뢰하고 행위한 제3자의 신뢰를 보호한다.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 약칭: 부동산실명법 )

[시행 2020. 3. 24.] [법률 제17091호, 2020. 3. 24., 타법개정]


제1조(목적)   

이 법은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과 그 밖의 물권을 실체적 권리관계와 일치하도록 실권리자 명의(名義)로 등기하게 함으로써 ... 부동산 거래의 정상화와 부동산 가격의 안정을 도모하여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4조(명의신탁약정의 효력)  

명의신탁약정무효로 한다.

②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등기로 이루어진 부동산에 관한 물권변동무효로 한다. 다만, 부동산에 관한 물권을 취득하기 위한 계약에서 명의수탁자가 어느 한쪽 당사자가 되고 상대방 당사자는 명의신탁약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③ 제1항 및 제2항의 무효는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판례에 의하면, 명의수탁자로부터 부동산을 매수한 제3자는 선 • 악의를 불문하고 수탁자로부터 유효하게 권리 취득한다. 단 제3자가 명의수탁자의 명의신탁자에 대한 배신행위에 적극 가담한 경우 명의수탁자와 제3자 사이의 매매계약은 무효이다.


명의신탁에는 양자간 명의신탁, 3자간 명의신탁, 계약명의신탁, 그리고 상호명의신탁이 있다. 우선 양자간 명의신탁은 명의신탁자와 수탁자 간의 명의신탁이다. 3자간 명의신탁이란 부동산 매도인과 매수인이 있고, 매수인이 부동산등기를 명의수탁자 명의로 해두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계약명의신탁이란 부동산 매매계약 단부터 명의수탁자가 등장하여 계약의 당사자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각각의 명의신탁 관계를 간단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양자간 명의신탁]

명의신탁자와 수탁자의 관계에서, 명의신탁자가 부동산의 소유권을 갖는다.


[3자간 명의신탁]

-매도인과 명의신탁자 사이의 매매계약은 유효 → 명의신탁자는 매도인에 대하여 매매계약에 기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 可, 매도인을 대위하여 수탁자 명의의 등기의 말소 可

-명의신탁자는 명의수탁자에게 부당이득을 원인으로 부동산 소유권이전등기청구 ✕

-명의수탁자가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 명의수탁자는 신탁자에게 처분대금이나 보상금(처분당시 목적물의 시가 ✕)을 부당이득으로 반환    


[계약명의신탁]

<매도인이 선의인 경우>

-매도인과 명의수탁자 사이의 매매계약 유효, 이전등기 시 명의수탁자는 소유권 취득


<매도인이 악의인 경우>

-명의수탁자가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 제3자는 선•악의를 불문하고 소유권 취득(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③항)

-매도인은 부동산에 대한 매매대금을 수령하였으므로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다. 수탁자에 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


 마지막으로 상호명의신탁(부동산실명법 제2조 1호 단서 나목)이 있다. 상호명의신탁이란 부동산의 위치와 면적을 특정하여 2인 이상이 구분소유하기로 하는 약정을 하고, 등기는 구분소유자들의 공유로 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구분소유적 공유자는 대내적 관계에서는 각 특정부분을 단독소유 하나, 대외적인 관계에서는 1필의 토지 전체를 공유한다. 상호명의신탁자는 자기의 특정매수 부분만을 독점적 • 배타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나아가 특정 부분을 제3자에게 양도하고 지분에 관하여 이전등기를 할 때, 다른 구분소유자의 동의가 불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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