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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Oct 07. 2023

단편소설/장님 고양이 3.

어둠의 어디쯤

몇 달째 토요일 오전이면 어디선가 탁탁탁 바닥 두드리는 백색 케인 소리와 함께 버스에서 내린 그가 더듬더듬 걸어와 벤치에 조용히 앉았다. 사람들과 부딪힐 때마다 계속 어수룩하게 고개를 조아리며 그는 더듬더듬 빈자리를 찾아가 앉는다. 그리고 그는 폴더폰을 꺼내 손가락 감각으로 더듬더듬 1번을 꾸욱 누르고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여기 터미널이야.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그는 단호하고 고집스러운 목소리로 한마디 통화를 하고는 폰을 접어 손안에 단단히 꼬옥 쥐고 앉았다.  

그는 내가 바로 그의 발 밑에 앉아서 자기를 올려다보는데도 눈치를 못 챘다. 내가 늘 쥐 죽은 듯 조용히 지나다니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는 아직 내가 지나가는지 어쩐지 아무 감각이 없나 보다. 여기저기 자주 부딪힌다. 그리고 자주 사람들에게 웅얼거리며 어수룩한 사과를 한다.


처음에는 여자가 승강장에 먼저 나와서 기다리다가 버스에서 내리는 그를 데리고 나갔었다. 하지만 점점 그가 먼저 와서 여자를 기다렸고, 그것도 이제는 여자가 매번 늦어 남자를 기다리게 했다. 남자를 보자마자 그를 부축해 일으키는데 여자는 매번 소리 없이 눈물을 닦았었다. 내가 그 아가씨 다리 사이를 지나쳐 위로의 스킨십을 해도 여자는 눈물을 멈추지 못한 채 그의 어깨를 감싸며 승강장을 빠져나갔다.


시력을 잃은 그가 처음으로 터미널에 나타났을 때 나는 너무 놀라 그의 무릎에 올라가 그의 눈을 핥을 뻔했다. 처음에는 선글라스도 끼지 않고 나타났었다. 천안에서 출발한 고속버스를 타고 온 그는 케인을 짚고 더듬더듬 내려와 기사 아저씨의 안내를 받으며 그 빈 벤치에 앉아서 여자를 기다렸다.


"여기서 기다리면 보호자가 온다고 했으니 다른 곳으로 가지 마시고, 조심하십시오."


기사 아저씨는 그를 벤치에 앉히며 손을 털고 사라졌다.

그는 눈두덩이가 움푹 들어간 모습으로 눈꺼풀이 반쯤 감긴 채 그 사이로 검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앉아 있었다. 얼마나 보고 싶은 게 많은지, 여기저기 눈동자를 굴려 두리번거리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나 보다. 결국 그의 색 바랜 눈동자는 어둠의 어디쯤을 찾다 포기하고 그대로 아무 곳에나 초점 없이 멈춰 있었다.  

내가 그를 보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몇 년 전부터 지켜봤던 터미널 고객이니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의 바로 옆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그의 무릎에 꼬리를 슬쩍 올려놓았다. 그가 흠칫 놀라 몸을 피했으나 이내 옆자리를 손으로 더듬더듬거렸다. 내가 야옹하며 작은 소리를 내주니 그가 내 등을 더듬거리며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그와 가까워졌고, 그가 오는 시간이 되면 그의 옆에 가까이 다가가 앉아서 그의 여자를 같이 기다렸다. 여자는 처음에는 10분 만에. 그러다가 30분 후, 1시간, 이제는 3시간이 넘어서 그를 데리러 왔다. 올 때마다 그 빛났던 여자도 점점 빛을 잃고 눈물은 더 깊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초조한 기색 하나 없이, 오로지 기다리는 일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는 듯 그렇게 우두커니 여자를 내내 기다렸다.


이제 그들의 얘기를 해야겠다. 이 얘기는 그들을 한동안 따라다니던 우윳빛 아지랑이가 해준 이야기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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