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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Oct 07. 2023

단편소설/장님 고양이 4.

마음의 촉수

내가 얘들을 처음 만난 건 7년 전 천안 예고 잔디 운동장에서였어.

천안 예고 5월 축제였거든.

한봄인데도 날이 따뜻해서 내가 기지개 춤을 추며

얘들을 따라다녔었어.

어찌나 얘들, 빛나던지. 

         

"봤어? 그 대학생 말이야?"

"오. 진심, 오지게 잘 생겼던데, 우리 학교 선배라며?"

"회장 전종서가 공수해 온 인물이래. 갠 못하는 게 없어, 그렇지?"


천안예고 3학년 학생회장 전종서는 5월 축제 때 공개할 잔디운동장 벽화 그리기에 도움을 줄 미대생을 찾고 있었고, 학교 옆 미술학원 출신 아인을 소개받았다. 아인은 서울에서 회화과 2학년을 다니고 있었고, 시간이 조금 빠듯하기는 했지만 흔쾌히 벽화 작업을 같이 하고 싶다고 했었다.


아인은 구릿빛 얼굴에 건장한 체구, 다부진 모습으로 천안 예고 교정에 들어섰다. 그날은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이라 학생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고 미술반 학생들 몇 명과 전교회장 전종서만 아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얀 아디다스 비건 오리지널 스니커즈를 신고,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4부 반바지에 회색 후드티를 입은 아인은 다소 껄렁거리는 얼굴로 학생들에게 인사를 했다. 회장 종서와는 두 번째 만남이다. 아인은 종서 옆에 자연스레 앉으며 벽화의 컨셉에 대해 이야기했다.


"축제까지 열흘 남았어요. 미술부 친구들이 대부분 만들어가겠지만 선배가 디테일한 건 바로잡아주셨으면 해요."


회장 전종서는 스케치한 구성안을 아인에게 건넸다. 회의는 생각 외로 길어졌다. 학생들과 아인의 의견이 맞지 않아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는 돌고 돌았다.


"너무 늦었어요. 이쯤 하고 우리 각자 자기가 맡은 부분 컨셉 정해서 다시 만나요."


종서는 나갈 준비를 하며 벌떡 일어나는데 아인이 갑자기 가지 말라며 종서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같이 나가자."


아인은 스케치한 패드 화면을 넘기며 종서에게만 들리게 낮은 복화술 같은 목소리로 같이 나가자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목을 어찌나 꽉 잡았는지, 종서는 자기도 모르게 다시 의자에 앉아버렸다. 그의 단단한 팔목의 힘줄이 도드라져 보였다. 학생들이 자리를 정리하고 서로 인사를 할 때까지 아인은 종서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그녀의 마음의 촉수는 말하였다. 그가 그녀의 인생에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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