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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Oct 07. 2023

단편소설/장님 고양이 2.

예전의 젊은 여자

그런 그가 몇 년 사이에 저렇게 처연하게 야위었다.     

나는 이 터미널 터줏대감이다.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해서 이곳에 나는 터를 잡았다. 원래는 요 앞 길 건너편 한신아파트 105동 102호 베란다 창문 밑 지하에 살았다가 이곳으로 옮겼다. 거기는 다 좋은데 102호에 사는 꼬마가 자꾸 베란다 창문에 서서 바깥으로 오줌을 싸는 통에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언젠가는 내 머리로 녀석의 뜨듯한 오줌이 떨어진 적이 있었다. 바닥이 질척거리고 지린내가 나서 그곳에 도저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둡고 지루한 아파트 지하생활을 접고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비록 나는 길고양이긴 하지만 매일 먹을 걸 챙겨주는 매표소 여직원이 있어서 배 따위는 곯지 않는다. 상가가 문을 닫고 사람들이 퇴근해서 아무도 없을 새벽 1시부터 5시까지는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주인 없는 김밥 집에서 놔두고 간 오양맛살 같은 걸 훔쳐 먹기도 하고, 더운 기가 식어가는 어묵 국물 솥 옆에서 쪽잠을 자기도 한다. 사람들이 자주 오가다 보니 터미널에 고양이 한 마리 산다고 해서 누구 하나 관심 갖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다른 녀석들에 비해 발걸음이 가볍다. 쥐 죽은 듯 조용히 다닌다는 말씀. 나는 문을 닫는 새벽에 야간 경비가 되어 쥐새끼 같은 놈들을 감시하고 광장의 비둘기에게 사바나의 사자가 된 듯 호령을 한다.

이아야옹~

나는 이곳 터미널이 참 좋다.          


한.. 세 시간이나 지났을까


그를 지켜보다 지루해져서 터미널을 한 바퀴를 돌기로 했다. 빵빵하게 채운 배낭을 멘 할머니와 중절모를 쓰고 느긋하게 뒤 따라가는 노년의 남편. 알록달록 별사탕이 가득한 우산 모양 과자 통을 쥐고 엄마 손에 끌려가는 꼬마 도련님. 바닥에 낚시 의자 하나 깔고 앉아 커다란 양은 쟁반에 삶은 옥수수와 푸른 쑥갯떡을 파는 아주머니, 그리고 도와달라는 인사말이 적힌 종이를 목에 매고 너풀너풀 빈 소매로 구걸을 하는 장애인 아저씨. 아, 맨날 길을 몰라 헤매는 아저씨와 사납쟁이 아줌마들. 터미널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고 나는 그게 재밌다. 가끔 청소 여사님들이 나를 보고 놀라서 퉁명스럽게 삿대질을 할 때면 그놈의 여편네들의 기미 낀 얼굴을 확, 긁어놓고 싶다. 뭐 화장실에서 물을 조금 핥고 조용히 지나갔을 뿐인데도 유난을 떤다.

나는 버스기사 휴게실에 들러 야옹야옹 청소 여사님들 흉을 흠씬 보다가 커피 마시는 기사 아저씨 발밑에서 종종 느긋하게 낮잠을 잔다. 아저씨의 믹스커피 향은 정말 나른하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 켁, 가래 뱉는 아저씨 소리에 잠을 깼다. 흠칫 놀라 잰걸음으로 다시 돌아와 그를 봤을 때 그는 지금은 통 볼 수 없는 오래된 폴더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음.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낮은 목소리의 그는 폴더폰을 접어서 다시 손에 쥐고 아까처럼 기도하듯 앉아 있다. 입은 꽉 다물고 미동 없이 계속 고개는 앞 유리에 붙은 안내판만 바라본 채.

한참 후에야 여자가 와서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는 넋을 놓고 있었는지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로 놀라 고개를 돌렸고, 여자는 그를 일으켜 세우고 그녀의 팔꿈치를 그에게 내어준다. 결혼식장에 딴따다단 입장하는 신랑 신부처럼, 이제야 남자는 여자의 가느다란 팔뚝을 잡고 더듬더듬 긴 벤치에서 걸어 나왔다. 늘 남자를 데리러 오는 그 예전의 젊은 여자다. 그는 벤치에서 나오자마자 주머니에서 짧게 접힌 시각장애인용 흰색 지팡이 ‘케인’을 꺼내 쭉 폈다. 탁 소리를 내며 케인이 반짝이며 길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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