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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Oct 07. 2023

단편소설/장님 고양이 1.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꽃시장 방면

나는 그의 대각선 맨 끝 벤치 밑에 꼬랑지를 한 바퀴 돌려 다리 사이에 끼고 앉아 있다. 침을 발라 빳빳하게 세운 콧수염을 한껏 펼치고 그의 앞에 뽐내며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지만, 그는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어깨를 꼿꼿이 펴고, 고개를 최대한 곧추 세워 올려다본 그의 얼굴은 선글라스와 광대뼈 사이에 다크서클이 꽤 어둡다. 선글라스 안쪽으로 그의 눈빛이 보이는데 어두워서 잘 알 수가 없다. 눈물 없이 울고 있는 것도 같다.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꽃시장 방면. 맨 끝 승강장 벤치에 그가 앉아 있다. 그는 까만색 레이벤 선글라스를 끼고 정 자세로 곧게 앉아 있다. 사실 정면을 보는지 어쩐지 모르지만 시선은 항상 바로 눈앞 유리창에 붙은 터미널 1층 입점 상가 안내판에 두고 있다. 한 손에는 오래된 접이식 폴더폰이 쥐어져 있다. 이십 대 후반쯤 되었으려나? 생기를 잃어서 누렇게 바랜 얼굴, 목덜미까지 자란 까만 머리카락. 가운데 가르마로 갈라진 머리는 콧등까지 앞머리가 자꾸만 내려온다.


가끔 그는 머리를 정수리 깨로 쓸어 넘긴다. 계속 표정은 없다. 입술을 움직이거나 코를 씰룩거리지도 않는다. 숨을 쉬는지 어쩐 지도 모르겠다. 뭔가 긴장하고 있는 듯 그런 상태이다. 수염을 며칠 깎지 않았는지 턱이 거무스름하다. 길고 가느다란 손이 생기를 잃은 듯 누렇고, 그의 등은 휘어졌으며, 그의 목덜미의 잎사귀 문신은 낙엽이 되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거칠다. 그는 그렇게 우두커니 한참 동안  앉아있다.


내가 그를 이곳 터미널 승강장에서 처음 본 건 몇 년 전쯤. 여름이었는데 그 당시 그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토실토실한 얼굴로 삐딱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끊임없이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긁적이고 있었다. 옆에는 화구 가방이 있었는데 그림을 그리는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온몸에 예술가의 혼이 느껴졌다. 액정 화면을 아래에서 위로 넘기는 손가락 마디마다 진회색 가느다란 문신도 그렇고, 귀 옆에 잎사귀처럼 생긴 문신도 그렇고 여러모로 범상치가 않았다. 하기야, 한창 멋 부릴 나이 같아 보인 긴 하다.


꽤 잘생겼다. 내가 이곳 터미널에 앉아서 사람들을 지켜본 결과 저 나이 또래 중에는 제법 스타일이 훌륭한 청년이었다. 근육질 허벅지가 보이는 짧은 스포츠 쇼트 팬츠에 외발자전거를 타고 있는 신사 양반이 수놓아져 있는 긴팔티셔츠를 입고 있다. 한 여름에 긴팔 티셔츠에 짧은 쇼트 팬츠를 입은 그는 근간에 이곳을 다녀간 멋쟁이들 중에 최고인 거 같았다.


그는 얼마 후에 여자 친구가 찾아와 같이 벌떡 일어나 끌어안고 밖을 빠져나갔었다. 여자 친구도 보기 좋게 예뻤다. 오래되고 낡은 이곳 터미널에 모처럼 그들로 인해 풍기는 우윳빛 아지랑이가 가득 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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